Classical Music/내맘대로공연리뷰

[20250430]Meet the Artist-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신영체임버홀)

MiTomoYo 2025. 5. 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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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테츨라프의 공연은 이번이 세 번째다. 세 개의 공연이 각기 다른 장르란 점도 재미있는데, 첫 번째 공연은 쉽게 접할 수 없는 무반주 리사이틀(후기: https://electromito.tistory.com/826), 두 번째 공연은 런던 필하모닉과 함께한 협주곡(후기: https://electromito.tistory.com/868) 이었다. 작년에 서울시향과 협연을 하러 한 번 더 왔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시 연주곡이 런던 필과 함께했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같기도 했고, 메인 프로그램도 딱히 끌리는 곡이 아니어서(찾아보니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5번이었다 :/) 큰 고민 없이 패스했었다. 그리고 올해도 이렇게 내한 공연을 하러 온 것을 보면 한국이 무척 좋은 기억으로 남은 모양이다. 안드라스 쉬프도 그렇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연주자가 자주 한국을 와준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 아닐까 싶다.
 
오늘은 예술의 전당도, 롯데 콘서트홀도 아닌 신영 체임버홀이란 곳에서 공연이 진행되었다. 이곳의 존재는 꽤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방문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고... 여하튼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의 내한 공연이 이곳을 포함해 (포스팅이 올라가는 시점은) 오늘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내일은 부산에서 있을 예정이다.
부산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예술의 전당 공연이 아닌 이곳의 공연을 선택한 이유는 여럿 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은 현악기 리사이틀을 하기엔 공연장이 너무 큰 편이라 음향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하단 것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물론 수익 때문에 큰 공연장을 선택하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신영 체임버홀의 위치가 퇴근하고 걸어서 20분만 걸어가면 되는 장소에 위치해 있는 것은 덤.
 
오늘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인터미션 없음)=====
Joseph Suk-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4개의 소품 op.17
Karol Szymanowski-신화 op.30 中 3곡 '판과 드라이어드들'
Johannes Brahms-바이올린 소나타 d단조 op.108
연주자와의 대화 with Christian Tetzlaff and Kiveli Dorken
(Encore) Cesar Frank-바이올린 소나타 中 4악장
==========
 
바이올린은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피아노는 키벨리 되르켄이 맡았다.
 
이번 내한 프로그램에서는 거의 동일한 구성으로 연주를 하게 된다. 정확히는 예술의 전당과 부산 모두 수크와 브람스를 1부에 시마노프스키와 프랑크를 2부에 연주한다. 즉, 신영체임버홀에서는 프랑크의 곡이 정규 프로그램에는 없었단 뜻이다. 프랑크의 소나타를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그것 때문에 예술의 전당 공연을 예매하기엔 경제적으로 부담이 돼서 말았다.
 
퇴근하고 잠깐 IFC몰을 돌아다니다가 공연장으로 갔는데,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 비해서 무대에서 가까운 자리를 하나가 하나 보여서 얼른 자리를 잡았다. 공연장의 크기가 작은 편인 데다, 무대와 객석 간의 단차도 거의 없어서 '살롱 음악회'의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공연 시작을 기다리는 중에 손을 풀고 있는 테츨라프의 바이올린 소리도 간간히 들을 수 있었다. 
공연 시작 전에 음악 칼럼니스트 한 분께서 나오셔서 간단히 오늘 공연에서 어떤 곡을 연주하는지와, 'Meet the artist' 시리즈에서 항상 있다는 아티스트와의 대화의 시간도 있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인터뷰가 있다는 것은 몰랐던지라 무척 기대가 되었다. 
 
요세프 수크의 곡은 제각기 다른 성격과 분위기를 지닌 4개의 곡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모호한 분위기를 한껏 풍기는 1곡과 3곡이 마음에 들었다. 여전히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20세기 초반의 화성이지만,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이를 연주하게 되면 묘하게 신비로운 인상을 받게 된다. 다른 악기들을 통해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데 말이다...
 
두 번째 곡인 시마노프스키의 곡은, 원래는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 마지막 곡만을 연주했다. 사실 하나의 악장만을 연주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긴 한데, 이 곡 같은 경우는 굳이 세 곡을 모두 연주할 필요가 없겠다 싶을 정도로 정신없이 왼손 트레몰로와 트릴, 인공 하모닉스들이 등장했다. 난해하면서도 무척 재미있게 느껴지는 곡이었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 몇 번 들어보긴 했는데 많은 브람스의 실내악 곡이 그렇듯 음반을 통해서 들었을 때는 크게 감흥을 느끼기가 어렵단 기억을 가지고 있던 곡이었다. 하지만 이를 실제 공연을 통해서 들으면 또 다른 인상을 주게 된다. 아마 이는 '시각'이란 자극이 더해지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곡을 연주하면서 보이는 여러 움직임과 표정을 통해서, 이들이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를 서정적인 2악장에서 가장 크게 느낄 수 있었는데, 그의 표정을 통해서 그리움과 아련한 추억 같은 감정을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었다.
 
이전 공연(특히 무반주 리사이틀)에서도 느꼈던 것처럼 곡에 따라 변화하는 바이올린의 음색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수크, 시마노프스키, 브람스의 곡이 제각기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이에 맞는 적절한 소리를 내주면서 곡에서 말하고 싶은 표현과 감정을 극대화해서 관객들에게 들려주는 듯 했고, 덕분에 1시간가량의 연주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키벨리 되르켄의 반주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다만, 독주자가 곡에서 '이야기'를 담당한다면 반주자는 곡에서 '분위기'를 담당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분위기'도 곡을 구성하는 정말 중요한 요소이지만 이것이 '이야기'를 덮어버릴 정도로 과해서는 안되는데 되르켄의 반주는 이 절묘한 선을 지키면서도, 때론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드러내는 듯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진행된 인터뷰 중에서 테츨라프는 "본인이 실내악(여기에서는 오늘처럼 듀오 연주까지 포함한 개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모든 연주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자신의 연주를 하는 것"이란 취지의 말을 했었는데 그것을 연주를 통해서 확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이어서 연주자와의 대화가 진행되었는데, 테츨라프가 피아니스트인 키벨리 되르켄도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사전에 요청을 했다고 한다. 메모를 하거나 하진 않았기에 일부 잘못된 내용이 있거나 할 수 있지만, 최대한 기억을 살려내서 써보고자 한다.
 
Q. 한국에 자주 오는데 어떤 곡들을 연주했는지 기억하는지?
A. (T)여러 곡을 연주한 기억이 나는데 특히 몇 년 전 키벨리 되르켄과 같이 내한해서 요세프 수크의 피아노 퀸텟을 연주했던 것이 기억난다.
 
Q. 이번 프로그램을 어떻게 정했는지와 작곡가에 대한 소개 등등...
A. (T)우선 프로그램은, 같이 참여하는 음악가들과 같이 상의하면서 정하게 되고, 또한 어디에서 연주하는지도 고려를 하게 된다. 이를테면 큰 공연장에서는 음량의 문제도 고려를 해야 한다. 그래서 감성적인 분위기의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이 아니라 조금 더 격하고 어두운 감성을 지닌 3번을 선택했다.
 
어쩌면 내일 있을 콘서트홀에서의 공연보다 오늘의 무대가 내게도, 여러분들에게도 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작은 공간에서는 연주자와 관객 간에 더 깊은 유대감이 형성된다. 하나의 곡을 연주하고 들으면서 같은 감성을 공유하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요세프 수크에 대해서도 언급해보고 싶다. 그의 곡들 중에서 교향곡 2번 '아스라엘'이나 피아노 퀸텟 같은 곡은 정말 환상적인 명곡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인상주의나 12음 기법 같은 혁신적인 음악적 시대에 브람스와 드보르작의 계보를 잇는 곡들을 써 내려가면서 저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K) 시마노프스키의 곡은 그리스의 신화를 모티브 삼아서 만들어진 곡인데, 마침 내게는 그리스의 혈통이 흐르고 있어서 곡에 대해서 더 깊은 공감을 할 수가 있다. 3곡 같은 경우에는 '판[각주:1]과 드라이어드[각주:2]들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데 곡에서 팬플룻(이때 테츨라프가 피리를 부는 시늉을 보여주어서 재미있었다.)을 묘사하는 부분도 등장한다.'
 
Q. 두 분에게는 지금은 세상을 떠난, 라르스 포그트란 연주자란 접점이 있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지
A. (T) 라르스 포그트는 정말 멋진 연주자였고, 우리는 서로에게 본능적으로 끌리는 무언가가 있는 관계였다. 그는 결코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 연주자였다. 이를테면 그가 연주하는 브람스의 음악은 브람스 그 자체였다.
방금 연주한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150년 전에 작곡되었던 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곡을 통해서 우리는 작곡가가 말하고자 하는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이를테면 브람스의 곡에서는 무거움과 격정적인 감정을, 내일 연주하게 될 프랑크의 소나타에서는 이와는 대조적으로(아 이게 정확한 단어가 기억이...) 행복함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시간을 초월해서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정말 멋지게 느껴지지 않나?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하고, 음악을 통해서 'entertain'만을 추구하면 안된다고도 생각한다.
 
(K) 라르스 포그트로부터 10년 정도 레슨을 받았다. 그는 내게 음악을 '틀리지 않고' 연주하는 것이 아닌, 작곡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들을 내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는 인간적인 유대감이 깊은 사람이었다.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7살 무렵에 당시 선생님과 함께 라르스 포그트의 연주회를 갔던 적이 있었다. 연주가 끝나고 선생님과 함께 라르스 포그트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피아노를 연주한다고 얘기를 하니 지금 어떤 곡을 연주하는지 그가 물어보았고,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C장조 K.545(인터뷰 때는 이 곡의 별칭인 'Sonata Facile'라고 얘기했는데 첫 소절만 들으면 바로 '아 이 곡!'이라고 알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를 연주하고 있다고 하니, 그는 '정말 멋진 곡이지만 결코 Facile(이탈리아어-쉬운)하지 않은 곡이라며 응원해 주었고, 이때 라르스 포그트가 자신을 꼬맹이가 아닌 한 명의 연주자로서 대우해주고 있다고 느꼈고 이것이 지금의 자신이 있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Q. (To. 테츨라프)특별히 그의 제자였던 키벨리 되르켄과 많은 협업을 하는 이유가 있는지?
A. (T) 그 대답은 그녀의 연주를 통해서 알 수 있을 것 같다. 대단한 연주자이다.
(이런 질문을 했던 것은 기억나는데 답변이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Q. 두 분 모두 실내악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고, 가족들[각주:3]과도 같이 연주를 하곤 하는데 이와 관련한 얘기들도 해줄 수 있는지? 혹시 서로 다투거나 하는 경우는 잘 없는지?
A. (T) 실내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연주자가 동등한 위치에서 연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역시 저 대답 외에 여러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타냐 테츨라프는 나와 7살 차이가 나는데 내가 집을 떠날 시기엔 아직 어렸었고, 처음에 동생과 같이 활동했을 때 그녀는 이제 막 연주자로서 첫 발을 내딛고 있던 중이었다. 나와의 갈등 이전에 아마 스스로와의 싸움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K) 언니와 같이 듀오 연주를 하곤 한다. 4 hands[각주:4] 연주를 할 때도 많은데 페달링 등 몇 가지 어려운 기술적 요소도 있지만, 무엇보다 서로의 케미가 잘 맞아야만 한다. 좁은 공간에서 두 명이 붙어서 연주하는데 그 사람이 싫다면 얼마나 그 상황이 싫을까! 아, 언니와 출산을 앞두고 같이 연주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는 내가 자리를 많이 비켜줘야 해서 힘들긴 했었다! ^^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떠한지?
A. (T) 정말 많은 연주 활동이 앞으로도 있겠지만, 일단 실내악 위주로 얘기하자면 멘델스존의 피아노 트리오 2번 c단조, 차이코프스키의 트리오, 스메타나의 피아노 트리오 등등 많은 곡을 연주할 계획이다.
 
아. 이건 여담이지만 통역은 다소 아쉬운 편이었다. 연주자들이 많은 얘기를 했음에도 내용이 빠지거나 한 경우가 많았다. 사실 즉석에서 많은 말을 하는만큼 중요 내용을 간단히 메모라도 했으면 이런 상황을 조금 줄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하지만... 뭐 이건 내가 모르는 분야이니깐...
 
이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앙코르 곡으로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4악장을 연주해주었다. 여러 연주자들의 음반을 통해서는 이 곡이 마냥 예쁘게 느껴지는 곡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격한 감정을 토로하는 부분도 많이 있었다. 모든 클래식 음악이 '음반'이 아닌 '공연'을 위해서 쓰여진 것을 생각해본다면, 결국 음반을 통해서 음악을 듣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보니 'Meet the artist' 신영체임버홀에서 오래 전부터 진행하고 있는 시리즈인 것 같은데,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연주자의 연주를 같이 듣고 또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다양한 생각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멋진 기획이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괜찮은 연주자의 공연에 가보면 좋을 것 같다.
 

  1. 목동의 신 [본문으로]
  2. 나무에 깃든 요정 [본문으로]
  3.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에겐 동생, 첼리스트 타냐 테츨라프가, 키벨리 되르켄에겐 언니, 피아니스트 다네 되르켄이 있다. [본문으로]
  4. 한 대의 피아노를 두 명이 연주하는 방식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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