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만 해도 이 연주회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가, 이전에 크리스티안 테츨라프를 강력히 추천했던 누나가 이번에는 엘리나 베헬레라는 핀란드의 연주자가 유럽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은데 마침 서울에 온 것 같다며 시간 되면 공연을 가보라는 추천을 해주셨고, 찾아보니 SIMF에서 며칠간 여러 실내악 곡을 연주하는 듯해서 그중 시간이 되고, 또 프로그램이 괜찮은 공연을 찾아봤는데, 딱 오늘 하루 말고는 스케줄이 맞지 않아 이 공연을 가게 되었다.
여담으로 엘리나 베헬레란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있었는데 작년 2월, 서울시향 전 상임 지휘자였던 오스모 벤스케의 퇴임 연주회 때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초판본을 협연했었던 분이었다.
팜플랫의 크기가 한 손에 잡힐 만큼 작은데, 곡 해설이나 연주자 약력 같은 내용은 QR코드를 찍으면 볼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꽤나 귀엽게 느껴지는 부분
오늘 공연의 프로그램부터.
=====<1부>=====
Zoltan Kodaly-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세레나데 op.12
(Vn. 스티븐 김, 김재원, Va. 박하양)
Erno Dohnanyi-피아노 5중주 eb단조 op.26
(Vn. 엘리나 베헬레, 스티븐 김, Va. 김상진, Vc. 아르토 노라스, Pf. 김규연)
=====<2부>=====
Bela Bartok-금관 악기를 위한 모음곡(바르톡의 여러 곡을 금관 앙상블로 편곡)(편곡. Roland Szentpail)
Franz Liszt-헝가리 광시곡 2번(편곡. Roland Szentpail)
(Trp. 발라츠 페체, 사이러스 알리아, 최인혁, Hrn. 김홍박, 라도반 블라트코비치, 리카르도 실바, 유후이 촹, Trb. 다니엘 텔레스 구티에레스, 헨릭 티센, Tb. 루카스 게르겔리)
=====<Encore>=====
Zoltan Kodaly-저녁 기도(편곡: 루카스 게르겔리)
(Trp. 발라츠 페체, 사이러스 알리아, 최인혁, Hrn. 김홍박, 라도반 블라트코비치, 리카르도 실바, 유후이 촹, Trb. 다니엘 텔레스 구티에레스, 헨릭 티센, Tb. 루카스 게르겔리)
코다이의 곡은 정말로 들어본 기억이 없는데, 첫 곡인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세레나데는 오늘 공연의 부제인 '부다페스트의 겨울'에 딱 맞는 작품이란 생각을 연주를 들으면서 했다. 일반적인 클래식 음악(?)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화성과 리듬을 통해서, 바르토크의 음악에서 가끔씩 접했던 '헝가리의 전통 음악'을 느낄 수 있었고 웅얼거리는 듯한 트릴과 트레몰로는 싸늘한 겨울 분위기를 묘사하는 것처럼 내게 다가와 재미있게 느껴졌다. 출신지와 활동 시기 때문에 코다이의 곡은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었는데, 오늘을 계기로 그의 곡을 좀 찾아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곡은 에르뇌 도흐나니의 피아노 5중주 2번으로, 오늘 공연을 예매하게 된 엘리나 베헬레가 참여하는 연주였다. 현악 4중주에 피아노가 더해진 보편적인 5중주 편성의 3악장 곡이었는데 앞서 말한 헝가리의 특색보다는, 19세기 말~20세기 초의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이 생각날 법한 화성들이 곳곳에 등장했다. 각 악장마다 감상할 포인트가 있어서 어렵게 들리지는 않는 편이었다.
오늘 공연을 예매하게 만들었던 엘리나 베헬레의 연주를 언급하고 지나가야 할 것 같다. 엘리나 베헬레는 어느 음역대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음정과 소리의 질, 감정에 지나치게 몰입하거나, 배제하지도 않는 정석적인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주었다.이 곡의 특성이 어떤 파트 하나가 존재감을 확연하게 드러내기보단 서로 긴밀하게 앙상블을 이루면서 진행되는 편이다보니, 본인의 개성을 100% 드러낼 수 없었다는 점에서 섣불리 평가를 내릴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기회가 된다면 독주자로 내한했을 때 연주를 들어보고 싶다.
베헬레의 연주에 마냥 관심을 쏟기가 어려웠던 이유가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아르토 노라스의 연주 때문이었다. 바로 직전에 말했던 것처럼 첼로의 빅 솔로가 등장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곡이 진행됨에 따라 변화하는 분위기를 첼로가 주도해서 이끌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계속해서 받았다. (아마추어지만) 현악 4 중주팀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입장에서 어떤 방향으로 연주를 하면 좋을지(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에 대한 큰 가르침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부에서는 호른 4명, 튜바 1명, 트롬본 2명, 트럼펫 3명, 도합 10명의 금관주자가 나와서 편곡된 바르토크와 리스트의 곡을 연주했다. 2부 시작 전 작은 해프닝이 있었는데 인터미션 시간이 끝나고도 연주자들이 한참을 나오지 않아서 의아했는데, 뒤늦게 한 분이 무대로 나오셔서 인터미션 중에 튜바가 넘어져서 점검을 하느라 공연이 늦어지고 있다고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안내를 해주었다.
난생처음으로 듣는 금관 앙상블이 기대가 되면서도, 한 편으로는 좌석이 너무 가까워 귀가 너무 아프면 어쩌지 다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다행히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진 않았지만 말이다. 금관주자 10명이 만들어낸 오늘의 연주는 재미있기도 했지만, 왜 수많은 실내악 편성 중에서 금관악으로만 이뤄진 편성은 적은 지에 대한 이유를 체감할 수 있기도 했던 공연이기도 했다.
계속해서 듣다 보니 왠지 음색이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약음기나 악기 교체(트럼펫->플뤼겔 혼) 등을 이용해서 극복해 보려고 시도한 듯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효과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음량 폭도 생각보다는 큰 편이 아니다 보니 다이내믹의 급격한 변화를 이용한 강렬한 포인트를 느끼기 어려웠던 점도 있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연주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일단 금관악기하면 삑사리의 여부로 연주의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은데, 상당히 오랜 시간 연주를 하면서도 감상에 방해를 하게 만들 정도로 문제가 되는 실수는 듣지 못했던 것 같았다. 또한 리스트의 곡 후반부에서는 신들린듯한 텅잉을 선보이면서 '금관악기가 저렇게 빠르게 연주할 수도 있구나!'란 것도 알 수 있었다. 여하간 쉽게 접할 수 없는 금관 앙상블 연주를 들었다는 점에서부터 진귀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앙코르 곡까지 마치고 오늘 공연에 참여했던 모든 연주자들 분들이 나와서 몇 번 커튼콜을 했는데 그 모습이 왠지 좋아 보였다.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1부/2부의 연주 편성이 너무 다른 것 등등 오늘 공연을 잘 즐길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컸지만, 꽤 만족스럽게 공연장을 나올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 리사이틀, 독주회까지는 종종 참여하는데 이상하게 실내악 공연은 최근에 가본 기억이 없어서 그런지, 오늘과 같은 공연이 좀 더 특별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실내악 공연에 좀 더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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