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al Music/내맘대로공연리뷰

2024 서울 바흐 축제-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의 바흐 미사 b단조-마사아키 스즈키

MiTomoYo 2024. 9. 12.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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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알라딘 중고매장에서도 매물(?)이 없어서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한창 스즈키 마사아키의 바흐 칸타타 시리즈 음반을 구입해서 듣곤 했다. 다른 일을 하면서 음악을 듣는 경우도 많고, 독일어를 아는 것도 아니고 워낙 많은 곡들이 있는지라 들을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바흐의 칸타타인데 그중에서도 스즈키 마사아키의 음반은 늘 좋게 들었다. 그가 바흐의 위대한 작품 중 하나인 b단조 미사를 지휘하러 한국에 온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예매를 했다. 혹시라도 공연 날에 야간 근무가 잡힐까 봐 아예 오후 반차까지 잡아두었다.

 

예매를 할 때, 가운데 그리고 최대한 무대와 가까운 좌석을 보이는 대로 찍었는데 공연을 보는 동안 모든 단원들의 표정이 생생하게 보일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서 놀랐다.

 

일단 오늘 공연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1부>=====
Johann Sebastian Bach-b단조 미사 BWV.232 (Part I)

I. Missa

=====<2부>=====

Johann Sebastian Bach-b단조 미사 BWV.232 (Part II)

II. Symbolum Nicenum

III. Sanctus

IV. Osanna, Benedictus, Agnus Dei et Dona nobis pacem

 

관현악은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 합창은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 독창자는 소프라노의 윤지, 카운터테너의 정민호, 테너의 김효종, 베이스에 안대현, 지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스즈키 마사아키가 맡았다.

 

바흐의 B단조 미사는 바흐의 위대한 걸작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만 감상하기엔 결코 쉬운 곡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종교를 주제로 한 다른 걸작들인 수난곡의 경우, 그래도 '이야기'가 있는 곡이다 보니 나름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 반면에 B단조 미사의 경우에는 그러한 요소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몇 번을 들어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곡의 길이도 합치면 2시간 정도로 길다 보니 공연을 잘 들을 수 있을까? 란 걱정도 들었다.

 

단원들이 나오고 튜닝을 마친 뒤 스즈키 마사아키가 무대 위에 등장했다. 체구는 크지 않았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우라 같은 것이 느껴졌다. 본격적인 공연 시작. 노래의 가사가 라틴어로 되어 있다 보니 합창석 뒤 스크린을 통해서 가사와 번역을 같이 보여줬는데 초반부에 등장한 텍스트가 'Kyrie eleison', 'Christe eleison', 'Kyrie eleison' 뿐이었단 것이, 그리고 이 6개의 단어로만 20분 가까이 곡이 진행이 되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당연히 이후에는 좀 더 많은 양의 가사가 등장하긴 했지만 가사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가 워낙 느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선은 가사가 아닌 무대로 옮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대에서 벌어지는 모습들을 보는 것은, 이 곡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생각보다 훨씬 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곡에 따라서, 특히 오케스트라의 편성이 크게 바뀌곤 했는데 처음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이러한 편성의 변화가 텍스트의 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했다. 이를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은 14곡(번역 텍스트: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저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수난하고 묻히셨으며)과 15곡(번역 텍스트: 성서 말씀대로 사흗날에 부활하시어...(중략))간의 대조로 예수의 수난을 말하는 14곡에서는 합창을 제외하면, 작은 편성(트라베르소 2, 바이올린 2, 비올라, 콘티누오)에 화성을 채워 곡을 한층 어둡게 만드는 역할을 하다가, 15곡으로 넘어가면 모든 오케스트라가 전부 등장하여 예수의 부활을 축복하는 부분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곡은 한 악기가 솔리스트가 되어서 해당 곡 전체를 이끄는 부분도 있었는데 이때는 해당 연주자가 서서 연주를 했다. 여러 곡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8곡(번역 텍스트: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신 주님...(중략))으로 이때 노래를 부르는 카운터 테너는 무대를 기준으로 왼쪽, 솔로 악기인 오보에 다모레 주자는 오른편에 위치하여 마치 인간의 호소를 주님(오보에 다모레)이 응답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특히 내가 앉았던 좌석이 공간감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자리였는지 이렇게 무대 양쪽에서 연주하고 응답하는 효과가 크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바로크 곡에서는 관현악법이 그리 중요한 요소는 아니며, 다소 단조롭게 들릴 수 있는 소리를 단체 재량껏 특수악기를 추가하거나 통주저음의 즉흥성 등을 통해서 채워나간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 공연을 통해서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지금껏 오케스트라 얘기를 좀 해봤으니 합창에 대한 얘기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그동안 무대에서 다소 먼 자리에서, 예술의 전당 합창석을 전부 채우는 큰 규모의 합창만 들어오다가, 가까운 자리에서 소규모 합창을 들어보니 느낌이 확연히 다른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지금껏 들었던 합창의 경우 소리가 하나의 덩어리의 형태로 뭉쳐서 들려왔는데 오늘 같은 경우, 어떤 부분에서는 '아 이거 저 단원이 내고 있는 소리구나!'를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소리가 명확하게 분리가 되어서 들렸다. 역시 바흐의 곡답게 푸가가 여러 곳에서 사용되었고, 이러한 대위법이 쓰인 부분에서는 각 성부의 소리가 명확하게 들려야 좋은 연주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앞서 언급한 소리의 특성은 오늘 연주와 정말 잘 맞는 조합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는 왜 B단조 미사가 그토록 어렵게 느껴졌는지에 대한 답을 알려주기도 했다. 각 성부가 잘 들린다는 것은 들어오는 소리의 정보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고, 때론 이를 모두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했다. 지금껏 공연을 들으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기도 했다.

또한 합창 앙상블은, 관현악 앙상블에서는 알 수 없었던 난제 하나가 있다는 사실도 느낄 수 있었다. 텍스트 첫 머리에서 치찰음(이를테면 'S', 'Z'와 같은 발음)이 있을 때 바람이 새는 소리를 얼마 정도로 길게 하느냐에 따라서 느껴지는 소리의 질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이 그것이다. 단원들의 오차가 너무 작으면 기계 같은 느낌이 들고, 크면 지저분하게 들리기에 적당한 정도로 차이가 있는 것이 내게는 좋게 들렸던 것 같다. 근데 이게 말이 '적당히'지 시간적으로 재면 수 ms 정도의 차이로 발생하는 것이니...

독창자의 경우 '솔리스트'로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단 '합창단의 일원'으로 부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 본인의 감정을 담아서 표현해야하는 장르의 곡이 아님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접근법이 곡 전반적으로 통일감을 부여하는 것 같아서 훨씬 좋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카운터테너를 맡으신 분이 제한된 범위 내에서도 표현력과 음색을 정말 멋지게 만들어내신 것 같단 생각은 들었다.

 

스즈키 마사아키는, 이미 음반을 통해서 알 수 있었지만,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스타일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대개 이러한 경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어려울뿐더러 조금만 방심하면 어물쩡 넘어가버리는 연주가 되기에(그래도 워낙 음악을 많이 들어와서 그런지 이렇게 대충 연주하는 경우에 느껴지는 특유의 엉성함이 있다.) 어찌보면 잘 해내기 가장 어려운 스타일의 접근이라고 생각하는데 오늘 연주만큼은 걱정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무척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을 할 때마다 같이 퇴장한 솔리스트와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의 지휘자이신 김선아 선생님을 계속해서 무대 위로 나오게 하시는 것을 보면 왠지 성품도 좋으실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결론은, 작정하고 오늘 공연을 보는 것이 정말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특히 오늘 공연은 좋은 연주를 들었던 것뿐만 아니라 종교곡에 대한 막연한 장벽, 위대한 곡이라고는 했지만 쉽사리 느끼지는 못했던 B단조 미사의 진가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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