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al Music/내맘대로공연리뷰

[20240810]2024 예술의 전당 국제 음악제-피터 비스펠베이 첼로 리사이틀

MiTomoYo 2024. 8. 11.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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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하고도 거의 반년 전, 당시 학생 신분이었던 나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당일티켓 할인 제도를 이용해서 피터 비스펠베이의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리사이틀 연주회를 다녀왔었다. (당시 포스팅: https://electromito.tistory.com/95) 시간이 워낙 오래 흘렀기에 어떤 연주를 들었었는지는 기억이 거의 나질 않지만 종종 '아 이런 공연이 있었지'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을 보면 꽤나 좋게 연주를 들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얼마 전에 그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연주하기 위해 다시 한번 내한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렇게 다녀오게 되었다.

 

 

=====<1부>=====
Johann Sebastian Bach-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 BWV.1007

Johann Sebastian Bach-무반주 첼로 모음곡 2번  d단조 BWV.1008

Johann Sebastian Bach-무반주 첼로 모음곡 3번  C장조 BWV.1009

=====<2부>=====

Johann Sebastian Bach-무반주 첼로 모음곡 4번  Eb장조 BWV.1010

Johann Sebastian Bach-무반주 첼로 모음곡 5번  c단조 BWV.1011

=====<3부>=====

Johann Sebastian Bach-무반주 첼로 모음곡 6번  D장조 BWV.1012

=====<앙코르>=====

Johann Sebastian Bach-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 BWV.1007 中 프렐류드, 사라방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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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대한 얘기부터 잠깐 해볼까 한다. 수많은 첼리스트가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을 큰 도전이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괴이한 테크닉이 한없이 많이 나오는 근/현대 곡도 아닌 이 곡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먼저 연주자 본인이 어떤 식으로 이 곡을 접근하는지에 따라 너무나 다양한 연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글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직접 들어보며 차이점을 확인해 보는 것이 더 확실하지 않나 싶어서 두 개의 연주를 공유해볼까 한다.

 

모던 첼로를 이용하여, 음 하나하나 신중하게 연주를 이어가는 미클로스 페레니의 연주와.

바로크 첼로와 조율법과 당대 연주법을 활용하여 연주를 이어가는 피터 비스펠베이의 연주.

 

비교해서 들어보면 같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다르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연주자 본인이 이 곡에 대해서 악곡에 대한 철저한 분석(여기에는 템포, 프레이징, 리듬, 화성적 분석 등등이 있을 것이고...)에 기반한 이해와 본인의 음악적 신념, 그리고(어찌 보면 당연한) 연주력이 모두 결합해야만 자신의 연주를 들으러 온 청중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할 가능성을 그나마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무반주란 특성상 연주자 본인의 연주를 오롯이 드러내야 한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실수를 다소나마 가려줄 수 있는 반주도 없고, 사람들의 이목을 확 끌어올 수 있는 강렬한 다이내믹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녹음한 이 곡을, 몇몇 사람들은 무척 많이 들어온 탓에 자그마한 실수마저 금방 알아차리고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6곡이 한 묶음으로 구성된 6개의 모음곡을 하루에 모두 연주하는 것에는 체력적 부담감도 있다. 오늘 연주만 하더라도 1부는 1시간 좀 넘었고, 2부는 50분(정확하지 않음), 3부는 30분 정도 걸렸으며, 확실히 시간이 지날수록 비스펠베이 본인도 약간은 힘들어하는 듯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관객들 역시 저음역에서 웅얼대는 첼로 소리(그리고 약간의 기침과 무언가를 떨어뜨리는 소리, 그리고 한 번의 벨소리까지...)를 공연 내내 들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연주자나 청중 모두에게 실로 어려운 도전이 아니었나... 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비스펠베이는 이 곡을 지금껏 3번 녹음했는데, 전부 바로크 첼로를 이용해서 연주를 했던 터라 사실 오늘 공연도 '당연히' 바로크 첼로와 5현 첼로를 이용해서 연주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무대의 조명이 밝아진 뒤 등장하는 비스펠베이의 첼로에 엔드핀이 달려있는 것을 보고 살짝 당황했었다. 물론 나의 경우에는 '무조건 시대악기 연주가 답이다!'란 입장은 아니지만.. 그 리고 악기만 모던 첼로를 쓸 뿐 그의 연주는 음반에서 들었던 바로크식 접근법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정말 많았다.

 

바로크 곡은 '선율의 음악'이 아니라 '화성의 음악'이란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이 곡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프레이징도 중요하지만 이 곡이 담고 있는 다양한 화성적인 내용을 포착하고 이를 음악적으로 구현하는 것도 이 곡을 잘 연주하는데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오늘 비스펠베이의 연주는 이를 무척이나 멋지게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곡 중간에 나타나는 화성적 변화에는 그 움직임에 맞게 음색, 다이나믹 등을 정말 섬세하게 컨트롤해서 자칫 단조롭게 들릴 수 있는 이 곡에 다양한 감정을 불어넣었고, 공연장의 잔향까지 활용하여 실제 연주하는 음표는 하나뿐이지만 마치 다성부의 음악을 연주하는 듯한 효과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 긴 음가에서는 풍성한 비브라토를 억제하고, 대신 활의 속도를 이용해서 풍성한 울림을 만들어냈고, 짧은 음표에서는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음표를 짧게 처리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공연장에 아직 남아있는 소리가 서로 모호하게 섞이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또한 반복해서 연주할 때는 약간의 트릴이나 장식음을 이용하여 변주를 주기도 했는데, 이 역시 바로크 시대에는 흔하게 사용되었던 연주 방법이었다.

 

1개의 프렐류드와 5개의 춤곡(알라망드-쿠랑트-사라방드-미뉴에트/부레/가보트-지그)이란 공통된 구성을 가지고 있는 6개의 모음곡이란 점을 알려주듯 모든 모음곡에서 일관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도 포착할 수 있었다. 다소 느리게 연주하는 경우가 많은 사라방드의 템포는 약간 빠르게 설정하였는데, 오히려 곡이 지루해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크 활이 한없이 이어지는 멜로디를 표현하기에는 부적합하단 특성과, 자칫 곡이 지루해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템포 설정을 나중에 연습할 때 참고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5곡과 6곡 사이에는 상대적으로 연주를 멈추는 시간을 짧게 가져갔는데, 이 역시 사라방드에서 지그까지 점차 템포가 빨라지며 곡의 분위기가 고조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무척 인상적인 감상 포인트 중 하나였다. 특히 대망의 마무리가 되는 6곡의 지그에 이르러서는 정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예전에 어디서 이 곡을 일컬어 '영원히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우주로 우리를 인도한다.'는 식으로 표현한 것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음반을 통해서는 공감할 수 없었던 그 기분을 오늘 공연장에서는 체감할 수 있었다.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 기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서 공연장을 찾는데는 녹음된 소리로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여기서는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5곡에서는 A현을 G현으로 낮추는 스코르다투라 기법을 쓸지, 6곡에서는 5현 첼로를 쓸지 여부도 궁금했었다. 먼저 5곡의 경우에는 스코르다투라를 썼다. 이 곡의 가치를 재발견한 카잘스의 업적은 높이 평가하지만 '현대의 첼리스트의 기교로는 스코르다투라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연주가 가능하다.'라는 그의 의견에는 여전히 동의하지 않는 바이다. 유난히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5곡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는 조율을 다르게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는 오늘 공연을 통해서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유난히 이질적인 5번의 이런 분위기가 다소 부담스러운 탓에 모음곡 중에서는 가장 덜 듣는 번호가 5번이긴 하지만, 오늘 연주에서만큼은 여기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특히 너무나 쓸쓸하게 읊조리는 듯한 사라방드는, 긍정적인 의미로 듣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6곡에는 오늘 공연에 사용했던 일반 첼로를 그대로 사용했다. 이 부분은 약간 아쉬웠는데, 먼저 5현 첼로를 사용한 연주를 정말 들어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점. 다른 모음곡에 비해서 이질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화음을 많이 사용하고 전반적인 음역대도 높은 이 곡을, 4현 첼로로 연주할 경우 난이도가 안드로메다로 가버리는데 이를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 연주에서 가장 의아했던 포인트도 바로 이 6번 모음곡에 있었다. 바로 4곡(사라방드)였는데 전반부를 처음 연주할 때는 가장 윗 음만 연주했고, 반복할 때는 화음을 넣어서 제대로 된 연주를 했다. 아마 의도적으로 이렇게 연주를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개인적으로는 소리가 다소 공허하게 비어버린 것 같아서 아쉬웠다.

 

앙코르 곡은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고 하는 것이 사족이란 생각도 했었다. 앞서 언급한 표현대로, 우리를 신비와 영원의 공간으로 이끌었는데 앙코르가 이를 방해하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만약에라도 앙코르로 1번의 프렐류드를 연주한다면,. 오늘의 공연으로 긴 여정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한 구성이 만들어져 멋진 형태의 공연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공연장을 오면서 했었다. 근데 그것이 실제로 이뤄질 줄이야...  '7번째 모음곡'은 본 공연에서의 프렐류드보다는 연주력 자체는 아쉬웠지만, 그냥 그 자체로 좋게 들을 수 있었다.

 

 

공연 끝나고 사인회가 있다고 해서 오랜만에 줄을 서서 사인을 받았다. 물론 그의 여러 음반들 중 하나를 가져갈 수도 있었지만,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이 악보에 사인을 받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더 큰 의미가 될 것 같았다. 이제 겨우 1,3번을 깨작거리는 정도고, 2번 모음곡에 도전해야지... 라고 생각만 하고 있는 중인데 오늘 연주를 통해 나머지 곡들도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연습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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