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반계에 '박스 세트' 시대를 알린 DG111의 첫 번째 세트의 36번째 음반은 '상상 속의 교향곡'이란 타이틀을 단 라모의 오케스트라 작품집이었다. CD를 꺼내서 재생하자마자 들리는 타악기의 시그널에 이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음악에 흠뻑 빠져 1시간이 조금 안 되는 음반을 바로 끝까지 들었던 기억이 있다.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바로크 음악의 매력과 시대악기 연주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시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음반을 연주한 단체와 지휘자가 바로 오늘 공연의 주인공인 루브르의 음악가들과 마크 민코프스키다. 이들이 내한 공연을 한다는데, 모른 척 넘길 순 없어서 예매를 했다. 이번 내한에서는 오늘을 포함해서 총 3번의 공연을 진행하는데, 내일(인천)과 마지막(예술의 전당) 공연 모두 근무일정이 잡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오늘 공연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후기 교향곡 3곡을 연달아 연주하는 인천 공연과, 오페라 갈라를 테마로 한 마지막 공연이 훨씬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인데, 이를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아쉬울 뿐이다.
오늘 공연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1부>=====
Wolfgang Amadeus Mozart-바이올린 협주곡 5번 A장조 K.219 '터키'
(Vn. 김계희)
Wolfgang Amadeus Mozart-교향곡 제 41번 C장조 K.551 '주피터'
=====<2부>=====
Wolfgang Amadeus Mozart-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Eb장조 K.364/320d
(Vn. 김계희 / Va. 스테판 루지에)
=====<앙코르>=====
Wolfgang Amadeus Mozart-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듀엣 G장조 K.423
Wolfgang Amadeus Mozart-교향곡 제 40번 g단조 K.550 中 1악장
ABBA(Arr. Laurent Couson)-Gimme, Gim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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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주곡이 2곡이나 편성되고, 2부에서 연주해도 무방한 41번 교향곡이 1부의 두 번째곡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이 특이하게 느껴지는 프로그램이다. 심지어, 원래는 교향곡을 먼저, 협주곡을 두 번째 곡으로 연주할 계획이었는데 오늘 공연장에서 두 곡의 순서가 바뀌었다는 공지를 받았다.
예매를 할 때도 정말 많은 좌석들이 남아 있었는데, 초대권이나 할인권을 아예 풀지를 않은 모양이었는지 오늘만큼 콘서트홀이 한산한 공연을 본 적이 없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2층에서 보이는 1층의 좌석에는 한 손가락으로 차있는 관객 수를 셀 수 있을 정도였고, 내가 위치한 5열의 같은 구역에 앉아 있었던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으니...
국내에서는 시대악기 연주가 다소 마이너 한 영역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지 못하나? 싶을 정도였다. 루브르의 음악가들과 마크 민코프스키 모두, 그래도 이 분야에서는 상당히 명망 있는 음악가들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연주자인 나조차도 관객석에 빈 좌석이 많이 보이면 허탈하단 생각이 들곤 하는데, 이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란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다. 의도치 않은 효과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적어서 그런지 다소 음량이 작을 수밖에 없는 시대악기 연주임에도 불구하고 평소보다 음향이 더 풍성하게 들렸다는 점일 것이다.
시대악기 오 케스트라인만큼, 평소에는 보기 어려운 과거의 악기들(이름은 같지만...)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내추럴 호른과 내추럴 트럼펫, 그리고 바로크 팀파니가 눈에 띄었다. 베이스의 경우도 한 대는 프랫이 붙어있고, 튜닝도 일반적인 베이스와는 다르게 하는 것을 봐서는 아마 비엔나식 베이스를 들고 온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현악기 배치는 바이올린 1-비올라-첼로-바이올린 2에 베이스는 무대 가장 뒤편에 놓았다. 금관악기의 경우 협주곡에서는 호른이 목관악기 쪽에 배치가 되었고(트럼펫은 둘 다 미편성), 교향곡에서는 객석을 기준으로 왼쪽에 호른, 오른쪽에 팀파니와 트럼펫을 같이 구성하는 형태로 두었다.
튜닝하는 방식도 여느 단체와는 달랐는데, 관악기가 튜닝을 마치면 악장(혹은 1 바이올린 수석)이 튜닝을 하는 것까지는 동일하지만, 이어서 첼로 수석이 튜닝을 한 뒤 악기를 '의자 위에 올려두고 활을 그으며' 첼로/베이스 단원들과 같이 음정을 맞추었다(다만, 앞서 언급한 비엔나 베이스를 연주하는 단원은 미리 나와서 튜닝을 하고 다시 무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악장이 비올라와 2 바이올린 수석과 음정을 맞춘 뒤 비올라와 2 바이올린 수석이 일어나 자기 파트 단원들의 좌석들을 돌아다니며 음정을 맞추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다른 시대악기 단체들도 이렇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기에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다.
사족이 길었다. 본격적으로 공연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한다. 공연 전 읽어 본 팜플랫을 통해서 본 협연자의 이력을 쭉 읽어봤을 때 딱히 시대악기와는 관련 없는 활동을 한 것 같아서 과연 이 악단과 좋은 조합을 보여줄 수 있을지가 궁금했는데 음색적인 측면은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협연자의 음색이 오케스트라의 음색과는 약간 차이가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동떨어진 느낌까지는 아니었기에 오케스트라와 독주자의 존재감이 서로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다만 중간에 앙상블이 어긋나는 듯한 부분도 있었고, 뭔가 독주에서도 몇 군데 엉성했던 것 같은 부분이 있었던 기억이 있었다. 특히 3악장이 그런 느낌이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뭔가 오케스트라와 협연자 간에 선호하는 템포가 달라서 발생한 것이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악단은 달려 나가고 싶은데 협연자가 고삐를 죄고 있어서 참고 있는 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특히 3악장의 '터키쉬'한 테마가 등장하는 곳에서 오케스트라만 연주하는 부분에서 템포가 빨라지는 듯한, '신나게 달린다!'란 느낌을 받았었다. 여하튼 '잘 연주해도 본전치기'의 대표적인 곡들 중 하나가 모차르트의 협주곡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점들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던 연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연주한 모차르트의 교향곡 41번은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곡인지라 어떤 연주를 들려줄지가 무척 기대가 되었는데, 첫 코드에서부터 들리는 소리에서부터 '오 뭔가 기대가 되는군!'이란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보통 시대악기 연주라고 하면 굉장히 빠른 템포를 특징 중에 하나로 꼽는 편인데, 4악장을 제외한 나머지 악장들은 극단적으로 달려 나가는 템포란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 정도였다.
1악장과 2악장에서는 도돌이를 하지 않았다. 전체 연주 시간을 고려해서 선택한 것 같단 생각이 들었지만, 반복을 지키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 나에겐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특히 1악장의 경우에는 연주가 무척 마음에 들었기에 '이를 한 번 더 들을 수 있었다면!'이란 생각이 들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4악장이 오늘 연주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연주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푸가로 구성되어 있기에 각 성부가 뚜렷하게 들리는 것이 무척 중요한 악장인데 극도로 내달리는 템포로 연주하면서도 이러한 밸런스를 잘 유지하는 것이 무척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사실 고전시대 음악을 들으면서 흥분을 느끼기가 그리 쉽지는 않은 편인데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악기 밸런스에 대해서도 짚어볼까 한다. 호른의 존재감은 부각한 반면, 팀파니와 트럼펫은 곡의 마무리를 제외한다면 극도로 제한시키는 편이었다. 처음에는 팀파니와 트럼펫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소위 '자극적인 느낌'을 받을 수 없어서 아쉬웠는데, 한 편으로는 딱 필요한 순간에만 확실하게 임팩트를 주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지금껏 들었던 팀파니의 강력한 타격음이 지속되는 것이,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팀파니 협주곡'이 되어버리는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혹시 이 두 악기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울리기에는 다소 부족한 음량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닐까? 란 생각이 들어서 Spotify에 있는, 이 곡을 연주한 음반을 들어봤는데 역시 민코프스키가 의도적으로 지시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06년에 발매된 녹음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연주했던 것과 전반적으로 비슷한 해석을 들을 수 있었다.
여담으로 1악장과 2악장 사이에 문자 알람 소리가 한 번 들렸는데 민코프스키인지, 아니면 단원인지는 모르겠지만 'Wow(혹은 Hello?)'라고 말하며 재치 있게 응수했던 해프닝이 있었다.
2부에서 연주한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콘체르탄테'는 정말 오랜만에 듣는 곡이었다. 1부에서 악장 자리에 있었던 연주자가 여기서는 비올라를 잡고 독주자로서 무대에 올랐고, 앞서 아쉬움을 남겼던 1부의 협연자는 옷을 갈아입고 등장했다. 이미 1부의 연주를 들어서 그런 것인지 이 곡을 잘 소화할지에 대한 의문도 솔직히 가지고 있었는데, 걱정했던 것보다는 훨씬 좋은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비올리스트 '스테판 루지에'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하는데, 곡의 분위기에 맞춰서 확실하게 솔리스트의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또 어느 순간에는 오케스트라에 녹아들기도 했고 때론 바이올린 협연자를 이끌어가는 듯한 느낌도, 연주를 하는 모션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추가적으로, 1부 협주곡을 연주할 때도 그랬지만 협연자가 카덴차를 연주하는 부분에서는 옆에 준비한 의자에 앉아서 잠깐 쉬면서 음악을 듣다가 카덴차가 끝나기 직전에 비팅을 하면서 일어서곤 했다. 평상시 연주회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 중 하나였다.
앙코르는 총 세 곡을 준비했는데 위에서 쓴 것처럼 첫 곡은 두 협연자간의 듀엣이었는데, 역시 모차르트의 곡은 앙상블이 조금만 무너져도 티가 확 드러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연주였다. 여담으로 민코프스키도 무대에 있던 빈 의자 하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같이 연주를 들었다.
두 번째로 연주한 곡은,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의 1악장이었는데, 단원들의 합주력을 시험하려는 듯한, 그래서 조금이라도 어? 하는 순간 앙상블이 와장창 무너질 것 같을 위태로움마저 느껴질 정도로 빠른 템포로 연주를 했다. 이로 인해 40번 교향곡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슬픈 분위기는 다소 반감이 되었단 생각도 들지만, 시대악기 특성상 끊어지지 않은 선율을 통해 감성적인 느낌을 만들기가 어려운 만큼 이 역시 괜찮은 접근법이었단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곡은 '모차르트가 아니어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프랑스의 작곡가 '로랑 쿠손'(민코프스키가 약간의 수식을 붙여서 설명을 했는데, 블로그를 쓰는 시점에서는 기억이 안 난다...)이 편곡한 ABBA의 Gimme Gimme를 연주했다. 연주하기에 앞서 힌트를 주겠다며 협연자 두 명과 2 바이올린의 1 풀트 단원이었던 남성/여성 단원을 일으켜 세우며 남성 2, 여성 2로 이뤄진 유명한 그룹의 곡이란 얘기를 했다. 관객들 중에서는 이 힌트만 듣고 누군지 알았던 모양인지 ABBA! 를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재미있기도 했고, '루브르의 음악가'란 단체가 지향하는 음악이 과거의 음악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지만 모든 곡이 모차르트로만 이뤄지다 분위기가 확 바뀐 음악을 들으니 약간은 동떨어진 듯한 음악을 듣는 것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솔직히, 오늘 공연은 '루브르의 음악가'와 '마크 민코프스키'의 진가를 보여주기에는 부족했던 연주회가 아니었나 싶었다. 그들의 연주력 문제가 아니라 협주곡이 2곡이나 편성된 프로그램으로 인한 것으로, 물론 협주곡도 악단의 '능력치'를 측정하는 좋은 요소 중 하나이나, 협연자에게 조금 더 집중하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협연이 정말 좋았냐고 한다면, 역시 바이올린에서 '부족하다...'란 생각을 들게 만들었기에 아쉬움이 남는 것 같다. 특히 오늘 공연 전반에 걸쳐서 느낄 수 있었던 악단의 탄탄한 앙상블이나 시대악기에서만 들을 수 있는 독특한 음색들을 언제 다시 실연으로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시대악기 연주가 사람들의 취향을 탄다고는 하지만, 국내에서 운영되는 시대악기 단체가 바로크를 넘어서는 순간부터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있기는 한가...?)을 생각해 볼 때 여건이 된다면 이들의 공연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너무나 아까운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란 생각을 하면서 이번 포스팅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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