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al Music/내맘대로공연리뷰

[20240510]얍 판 츠베덴과 힐러리 한②

MiTomoYo 2024. 5. 11.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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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딱히 가보고 싶은 공연이 없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깜짝 놀랄 사실을 접하기 전까지는. 원래 오늘 공연은 손열음의 협연으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을 연주할 계획이었는데, 공연을 하루 앞두고 갑작스레 몸 상태가 나빠져 공연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뭐 연주자가 아파서 갑작스레 공연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그러려니 했었는데, 대타로 구한 협연자가 무려 힐러리 한이란 소식을 보고 취소표를 예매해서 가게 되었다.

 

공연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1부>=====
Nina Shekhar-루미나(아시아 초연)

Johannes Brahms-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77 (바이올린: 힐러리 한)

<Encore>

Johann Sebastian Bach-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3번 BWV.1006 中 Loure
=====<2부>=====
Johannes Brahms- 교향곡 2번 D장조 o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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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으로 연주된 '루미나'란 곡은 공연 전 프로그램 노트를 통해서 대략 어떤 곡일지가 예상이 되었다. 인도계 미국인이라는 작곡가란 설명에서부터 독특한 음색이나 화성을 사용한 곡이지 않을까 싶었고, 그 예측이 맞았다.

활로 긋는 비브라폰과 심벌즈의 음향이 서로 교차되고 시타르를 연상케 하는 현악기 독주, 그리고 서서히 하나의 거대한 음의 덩어리가 되었다가 다시금 사그라드는 형태의 곡이었는데, 다양한 악기를 활용해서 독특한 음향을 자아내는 스타일의 현대곡을 좋아하는 편이다 보니 무척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비브라폰과 심벌즈의 소리가 섞이고 사라지면서 들린 독특한 잔향이었는데, 이러한 효과를 머릿속에서 구상하고 실제로 구현하게끔 곡을 썼다는 것이 새삼 대단하단 생각도 했다.

 

이어서 오늘의 '메인(?)'곡이 된 힐러리 한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1일 차 공연 당일에야 섭외 및 프로그램 공지가 떴을 정도로 준비 시간이 부족했기에 오케스트라, 지휘자, 그리고 협연자 모두에게,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자주 무대에서 연주되지만 쉬운 난이도의 곡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부담되는 도전이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은 오늘 연주에서 분명히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1악장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자 간에 미묘하게 앙상블이 맞지 않는 부분이 종종 들렸기 때문이다. 특히, 힐러리 한이 조금 더 음악적인 표현을 위해서 인템포로부터 벗어날 때 발생했고(사실 서울시향과 힐러리 한의 클라스를 생각해 보면 인템포 상황에서 앙상블이 흐트러지는 게 이상하긴 하다만...) 때로는 오케스트라에 맞춰주는 듯한 연주를 하는 모습도 있어서, 본인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는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도 들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힐러리 한의 연주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여러 음반을 들으며 구축된, 차갑다! 란 단어로 대표할 수 있는 힐러리 한의 스타일과 오늘의 연주는, 긍정적인 의미로 다르게 느껴졌다.

먼저 오케스트라에 결코 밀리지 않는 음량을 언급하고 싶다. 협주곡은 음반과 실연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곡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많은 공연에서 무대와 멀지 않은 자리에서 연주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주자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경우를 자주 경험했었는데, 오늘 연주에서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다. 음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들리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많은 음표가 쏟아지는 부분에서 음이 뭉쳐서 들리는 경우도 자주 있었는데, 오늘 연주에서는 그런 현상을 느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서울시향의 반주는 무난했던 것 같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애초에 준비할 시간이 없었기에 오케스트라 파트에서 세부적인 표현을 만드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2악장의 첫 오보에 솔로는, 그토록 아름다운 멜로디가 그저 무덤덤하게 흘러가버린 듯하여 무척 아쉬웠다.

 

앙코르로 연주한 바흐의 곡은, 역시 좋았다. 정말 넋 놓고 들었다. 힐러리 한의 스타일은 역시 바흐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근데 앙코르로 바흐의 곡을 들을 때마다 늘 좋았던 기억 밖에 없는 것을 보면 그냥 내가 바흐를 좋아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츠베덴의 연주는 예전에 KBS 교향악단에서 지휘했던 브루크너 8번 공연(https://electromito.tistory.com/548) 이후 두 번째로 듣는 것으로 당시에도 썩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이 원체 어려운 곡이다 보니 '이것은 악단의 문제도 있었던 것 같다.'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오늘 공연을 들은 뒤에 '츠베덴의 연주는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란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교향곡 2번은 그의 '전원 교향곡'이라 불릴 정도로 유유자적한 분위기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지만, 이를 마냥 흘러가도록 접근할 경우 대단히 지루하게 들려(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음반이 Naxos에서 발매된 Marin Alsop 지휘의 연주), 곡이 멋지게 들리게끔 하는 지점을 찾는 것이 곡의 성패를 좌우하지 않나 싶다. 특히나, 2악장의 경우 해석에 따라서는 '현대적'으로 느껴질 만큼(특히 레터 E부분이 그렇게 느껴지는 편이다.) 섬세하게 곡이 쓰여있어서 이를 잘 만들어가기가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츠베덴은 마치 '어차피 선율은 아름답게 쓰여 있으니, 곡의 템포를 살짝 당기고 다이내믹의 표현을 강하게 살려 곡이 지루하게 들리지 않도록 하자!'란 생각으로 이 곡에 접근한 것 같았는데 이게 '브람스의 음악'과 어울리는지 여부는 둘째 치더라도 '과연 이게 음악을 연주한다.'의 범위에 있는지부터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단, 이 곡의 모든 에너지를 현악기를 통해서 분출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고, 서울시향의 현은 야성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강렬한 소리를 내뿜었다. 이렇게 현악기의 소리가 전 곡에 걸쳐서 크게 느껴졌던 공연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사운드가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지점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곡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크게 연주하고, 거기서 본인이 무언가 더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소리를 쥐어짜서라도 더 크게 내라고 지시라도 한 모양인지, 음량 극한으로 커질 때마다 소리도 대단히 거칠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격정적인 감정을 토로하는 듯한 소리를 짜내는 것이 이 곡에 어느 부분에 필요한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또한 브람스 교향곡 2번은 현악기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이 아니며, 특히 2, 3악장에서는 목관악기의 비중이 대단히 크다. 하지만 오늘 연주에서 목/금관악기는 현악기가 소리를 멈춘 시점에서나 그 모습을 드러낼 뿐이었고 그마저도 '소리는 내고 있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무색무취한 연주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3악장 도입부의 첫 시작은 목관악기가 '누가 듣고 악보를 보더라도'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뚱당 거리는 첼로의 반주가 더 잘 들렸을 정도였다. 이렇게 단순한 부분에서도 밸런스가 맞지 않는데 현에서 목관, 혹은 그 반대로 멜로디를 이어받을 때 느껴지는 소리의 불균형이 어떻게 들렸을지는 굳이 더 쓸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템포를 빠르게 잡아서 지루하진 않고, 모든 주자들이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앙상블이 잘 맞긴 했다. 하지만 제각기 내는 소리가 모여 하나의 '음악'이 만들어지질 않는데 이게 좋은 연주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도저히 긍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어떤 음반 평론에서 읽었던 문장이 츠베덴의 오늘 공연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절히 표현하는듯 하여 이를 인용하는 것을 끝으로 오늘 포스팅을 마무리할까 한다.

 

ㅇ 그는 뛰어난 오케스트라 트레이너일지도 모릅니다만, 과연 그가 정말 지휘자일까요? 이 연주의 모든 문제는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에서 나타나는 결함이 아니라, 포디움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ClassicsToday.com,Mahler Sixth from Gulag Currentzis by David Hurwitz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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