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al Music/내맘대로공연리뷰

[20231024]체코 필하모닉@예술의 전당

MiTomoYo 2023. 10. 25.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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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주 반 만에 보는 공연인데 생각보다 그 기간이 꽤나 길게 느껴지는 것 같다. 지난번에 갔던 런던 필하모닉의 경우엔 취소표를 어찌어찌 찾아서 예매를 했던 반면, 이번 공연의 경우 다소 좌석이 많이 남아있어 괜찮은 좌석을 예매했다. 드보르작의 모국이라고도 할 수 있는 체코, 그리고 체코를 대표하는 깊은 역사를 가진 체코 필하모닉의 공연이란 점에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메인 프로그램도 드보르작 교향곡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7번이기도 했고 말이다.

 

=====<1부>=====
Antonin Dvorak-사육제 서곡 op.92

Antonin Dvorak-피아노 협주곡 g단조 op.33(Pf: 후지타 마오)
<앙코르>
Pyotr Ilyich Tchaikovsky-18개의 작품 op.72 중 17번
=====<2부>=====
Antonin Dvorak-교향곡 7번 d단조 op.70
=====<앙코르>=====
Antonin Dvorak-슬라브 무곡 e단조 op.72 중 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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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는 현 체코 필하모닉의 상임을 맡고 있는 세묜 비치코프가 맡았다.

 

원래는 휴가를 하루 쓰고 느긋하게 갈까 했는데, 업무 일정을 조정하지 못해서 퇴근하자마자 바로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는데,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빡빡했다. 저녁 7시 반 공연에 시간을 맞춰 간다는 것이 결코 쉽진 않은 것 같았고, 평소에는 공연 시작 30분 전에 도착해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 들어가곤 하는데, 오늘은 음악당에 도착하자마자 팜플랫 사고, 티켓을 찾은 뒤 바로 입장을 했다. 그럼에도 숨 돌리기에는 다소 빠듯한 5분 남짓의 시간만이 남아있어서 구입한 팜플랫은 읽어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드보르작의 카니발 서곡은 오늘 공연을 통해서 처음 접한 곡이었는데, '카니발'이란 이름답게 무척 활기 넘치는 곡이었다. 공연후기를 쓸 때 종종 언급하는 것 같은데 서곡을 통해서 오케스트라의 컨디션, 지휘자의 성향 등을 파악하곤 한다. 체코 필하모닉의 소리는 지금껏 들었던 다른 해외 오케스트라의 그것과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었다.

오케스트라의 규모와 상관없이 그동안은 밀도가 높게 느껴지는 단단한 현의 질감, 자신의 존재를 마음껏 뽐내는 목관, 그리고 강렬한 다이내믹을 선보이는 금관의 소리를 들었는데, 체코 필하모닉의 경우 조금 더 유려한 느낌의 현의 음색을 기반으로 목/금관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음색이 서곡에서는 큰 효과를 발휘해서, 다소 피상적인 표현이긴 하다만 드보르작의 음악은 이런 것이다! 란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곡이 끝나고 터져 나온 '브라보'는 충분히 나올 법한 외침이었다. 특히나 서곡부터 이 단어가 들리는 경우가 정말 드물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연주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일 것이다. 이를 제대로 글로 녹여내지 못한 나의 필력이 안타까울 뿐이다.

 

두 번째 곡으로 연주한 드보르작의 피아노 협주곡은, 그가 남긴 세 개의 협주곡(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중 가장 먼저 작곡된 곡이면서 가장 인기가 없는 곡이기도 하다. 안드라스 쉬프를 비롯한 여러 피아니스트들은 이 곡이 과소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오늘 공연장에서 들었던 이 곡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아무리 후하게 평가를 주더라도 범작 수준에 그치지 않나... 란 생각이 들었다. 여러 번 듣다 보면 다소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오늘 공연장에서만큼은 그랬다. 훗날 드보르작이 만들어낼 곡들을 예견하게 하는 순간들이 종종 귀에 들어왔지만 전반적으로 불필요하게 느껴진다거나, 곡의 전개가 다소 뜬금없다거나(특히 3악장)하는 부분들이 곳곳에서 들어와서 솔직히 듣기가 많이 버거웠다.

연주 자체가 별로였단 생각은 들지는 않았다. 후지타 마오의 연주는, 소리가 그리 크지 않은 탓에 종종 오케스트라에 완전히 가려 자는 순간도 있긴 했지만, 반짝거리는 음색이라던가 오케스트라와의 앙상블을 맞춰야 하는 부분에서는 확실하게 호흡을 맞추려고 하는 모습 등 주목을 받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도무지 이 곡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 뿐인지라, 그의 연주를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한 것 같은 아쉬움도 컸다. 오히려 앙코르로 연주한 차이코프스키의 소품이 후지타 마오가 어떤 피아니스트인지를 더 잘 보여주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여담으로 피아노에서 벗어난 후지타 마오는, 그동안 봐왔던 수많은 협연자들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모습들을 보여줬는데 무대에 등장할 때 핫팩 같은 것을 손에 쥐고 나온다거나, 쭈뼛쭈뼛한 걸음걸이로 커튼콜을 한다거나, 앙코르 곡을 치고는 인사도 없이 무대를 휙 하고 떠난다거나... 하여간 재미있었고, 또 은근히 귀여웠다.

 

2부에서 연주된 드보르작 교향곡 7번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가 남긴 교향곡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곡이 가지고 있는 막대한 에너지와 분위기, 탄탄한 구성, 그리고 특유의 애수 어린 멜로디까지, 드보르작이 보여줄 수 있는 관현악곡의 모든 것이 이 안에 들어있는 느낌을 자주 받기 때문이다.

오늘 연주된 교향곡은,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다소 호오가 갈릴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긴 했다. 오케스트라의 특성과 맞물려, 비치코프의 접근도 자의적인 해석을 곡에 투영하기보단 곡이 유려하게 이어지도록 하는 방향으로 이뤄졌기에, 이 곡에서 강렬한 에너지의 폭발을 느끼고자 했다면 평범하게 들릴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내게는 1악장이 다소 밋밋하게 들린 것 같아서 아쉬웠다. 반면 이러한 흐름이 효과적일 수밖에 없는 분위기의 2악장, 세세한 부분까지 공들인 티가 나기 시작한 3악장, 그리고 1악장의 아쉬움을 다소나마 해소시켜 준 4악장은 괜찮게 들을 수 있었다.

 

앙코르로 연주된 슬라브 무곡은 너무 튀게 들리는 트라이앵글을 제외한다면 체코 필하모닉 특유의 유려한 음색이 장점으로써 극대화된 연주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체코 필하모닉이 개개인의 역량이 아주 뛰어난 악단은 아니란 것을 느낄 수 있는 점들도 있었다. 가끔씩 들리는 미묘하게 맞지 않는 바이올린의 음정들, 정밀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앙상블 등이 여러 곳에서 포착이 되긴 했다. 근데 이러한 결점들이, 감상을 해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곡의 분위기와 은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었다,

 

오늘 공연의 경우, 콕 찝어서 어땠다라고 말을 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다. 만족스러웠던 서곡과 기대했던 것보단 살짝 아쉬웠던 교향곡, 그리고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많은 부분을 놓친 것 같은 피아노 협주곡까지. 그래도 지금껏 말로만 들었던, '지역별 오케스트라마다 서로 다른 사운드를 가지고 있다.'란 점을 경험한, 그런 연주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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