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al Music/내맘대로공연리뷰

[20231007]런던 필하모닉@예술의 전당

MiTomoYo 2023. 10. 8.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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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만 두 번째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 방문이다. 공연을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는 표가 거의 매진이었는데 시간 날 때 틈틈이 좌석 현황을 확인하던 중 괜찮은 자리에 취소표가 나온 것을 보고 바로 예매를 했다. 휴일 공연이라 5시부터 시작되었는데, 어제 야간 근무를 서면서 거의 날밤을 새는 바람에 집에 돌아와서 잠깐 쉬었다가 예술의 전당으로 가야만 했다. 적잖은 표값을 지불해 놓고 졸아버린다면 문자 그대로 돈을 날리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커피를 다소 과하게 마시고 최대한 바깥바람을 쐬면서 충분한 산소를 신체에 주입한 뒤에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오늘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1부>=====
Ludwig van Beethoven -에그몬트 서곡 op.84
Johannes Brahms-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77
(Vn-Christian Tetzlaff)
<앙코르>
Johann Sebastian Bach-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3번 C장조 BWV.1005 중 3악장 Largo
Johann Sebastian Bach-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3번 C장조 BWV.1005 중 4악장 Allegro assai
Christian Tetzlaff-사랑하는 아내를 위한 코드
=====<2부>=====
Johannes Brahms-교향곡 1번 C단조 op.68
=====<앙코르>=====
Edward Elgar-사랑의 인사 op.12(오케스트라 편곡)
====================
지휘는 현재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인 에드워드 가드너가 맡았다.
 
본격적인 공연 얘기를 하기 전에 공연을 들으러 가기로 결정한 이유를 적어볼까 한다. 먼저 올해 초에 갔었던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의 무반주 리사이틀(공연 후기 링크: https://electromito.tistory.com/826)에서 그의 연주를 무척 좋게 들었고, 마침 그가 협연을 하러 한 번 더 내한을 한단 것을 알게 되어 스케줄이 된다면 가볼 생각이었다. 근데 그게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일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었다.
두 번째는 대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연주했던 곡 중 하나가 브람스 교향곡 1번이었는데, 당시 이 곡을 연주한다는 말을 듣고 잠실 핫트랙스에서 구입해 닳고 닳을 정도 들었던 음반이, 비록 지휘자는 다른 사람(마린 알솝, Naxos)이긴 하지만 연주 단체가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였기에 반가운 마음이 크기도 했다.(음반 리뷰 링크: https://electromito.tistory.com/34너무 오래전 글이라 문장력 개판 주의) 반면 에드워드 가드너는 내겐 그리 익숙하지 않은 지휘자였다. 미리 몇 개의 녹음을 들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것까지 알고 가는 것은 왠지 스포일러 당하는 기분일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오늘 정규 프로그램 중에서 에그몬트 서곡과 브람스 교향곡 1번은 여러 번 연주를 해본 경험이 있는지라 굉장히 익숙한 곡이다. 공연을 들으러 갔을 때 모르거나 익숙하지 않은 곡인지, 꽤 많이 들어본 곡인지, 공연에 올려본 곡인지에 따라서 느껴지는 감상의 포인트가 달라지게 되곤 하는데, 오늘처럼 해본 곡이라면 곡의 흐름뿐만 아니라 구조, (주/부선율, 대위적 진행, 화성의 변화와 같은) 혹은 놓치기 쉬운 숨겨진 모티브 등등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곡을 들을 수 있게 되는 장점이 있는 반면, 자칫 공연의 가장 큰 목적인 음악을 듣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연주를 평가하려고 드는 부작용이 있기도 하다. 음악 평론가가 아닌 애호가의 입장에서는 좋다고는 볼 수 없을 감상법이라고 스스로는 생각하기에 고쳐보려고 하지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사족이 너무 길었다. 일단 오늘의 현악 배치는 바이올린1-첼로(+베이스)-비올라-바이올린2이었고 목/금관은 이제는 더블링 되지 않은 편성이었다. 호른은 어시스트 주자를 한 명 써서 총 5명이었다.
 
첫 곡인 에그몬트 서곡은 곡명 그대로 공연의 시작을 열기에 딱 적절한 곡이라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아마추어 연주자의 입장이긴 하다만) 연주하거나 표현하기 까다롭지 않은 편이고, 감상자 입장에서도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은 곡이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오케스트라의 수준이나 지휘자의 성향 등을 파악하기에도 적절하단 생각도 들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 연주는 공연의 기대감을 한껏 높이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6대의 베이스가 내는 강력한 저음이었다. 'Growling'이란 단어가 바로 떠오를 정도로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지금껏 들었던 여느 공연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었다. 또한 쭉쭉 뻗어나가는 호른과 트럼펫의 소리도 오늘 공연의 기대감을 한껏 높이기에 충분했다.
에드워드 가드너의 음악적 스타일도 대략적으로 파악이 가능했는데 자의적인 해석을 지양하고 금관에 좀 더 강한 사운드를 부여하며, 주로 세컨 바이올린이나 비올라가 맡는 중음역대를 도드라지게 표현하지 않는(이건 자리의 문제였을 수도 있겠지만, 여하간 비올라의 존재감이 두드러지진 않았다.)것 같단 생각이 들었고, 역시 오늘 공연 전반적으로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두 번째 곡인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지난 3월 공연을 통해서 한껏 기대감을 높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의 협연으로 연주되었다. 테츨라프의 협주곡 연주는 데이비드 진먼과 함께한 베토벤 협주곡들의 음반, 그리고 유튜브에 올라온 클립 몇 개를 통해서 본 적이 있었는데 브람스의 것은 꽤나 과격한 스타일의 것이어서 다소 의외란 생각이 들 정도였고, 오늘 연주 역시 일반적으로 브람스라고 하면 떠올릴 법한 다소 진중한 스타일의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인터미션 때 내 뒤에서 얘기를 나누던 관객의 표현이 꽤 적절해서 그 표현을 빌리자면 '집시의 느낌이 한껏 느껴지는' 스타일이었다.
서주에 이어서 등장한, 굉장히 어려운 패시지의 바이올린 솔로에서 휘리릭 날아가버리는 연주를 들으면서 '아 오늘 컨디션 안 좋은 것 같다.'란 생각이 들었고, 그 예감은 어느 정도 맞아서 지난 연주에서 들었던 정확한 음정들이, 오늘은 여러 군데에서 엇나가는 듯했다. 정확히 들은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2악장에서는 순간적으로 소리의 공백이 등장해서 '뭐짓!' 했던 부분도 있었다.
그렇다고 연주 자체를 말아먹었다거나 한 것은 아닌 게, 숨을 죽여야만 들릴 정도로 작은 음을 소름 끼치게 멋지게 표현하거나, 저걸 맞춰주는 지휘자나 오케스트라도 대단하다 느껴질 정도로 유연하게(제멋대로라고 하기엔 작위적으로 느껴지진 않았으니) 변하는 템포 등 전율을 느꼈던 순간들도 대단히 많았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스타일의 연주였던 셈인데 음정과 같이 세부적인 요소가 조금 더 괜찮았더라면, 비록 호오는 갈렸을지언정 무척 멋진 연주였을텐데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이 곡이 연주하기에 극히 까다롭단 것을 새삼 느끼기도 했고 말이다.
런던 필하모닉의 반주는 테츨라프의 바이올린 독주를 받쳐주겠단 의도를 확실하게 보여준 것 같은데, 다소 과격하다 느껴질 법한 테츨라프의 연주에서도 앙상블이 엉키거나 하지도 않았고, 협주곡에서 가장 문제가 되곤 하는 음량적인 측면에서도 독주 소리를 지워버리거나 하지 않았던 점에서 꽤나 좋은 연주를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앙코르로 연주한 두 곡은 테츨라프가 장기로 내세우는 듯한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의 두 악장이었는데 앙코르까지 듣다 보니, 테츨라프가 지극히 잘 연주할 수 있는 분야는 협주곡보단 실내악이나 독주곡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여담으로 앙코르로 연주했던 두 번째 곡도 템포를 극단적으로 빠르게 잡고 연주를 했다. 이 곡의 경우에는 템포 설정이 꽤 적합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말이다.
두 곡의 앙코르를 연주하고 박수 소리가 서서히 잦아듦에도 불구하고 런던 필하모닉 단원들이 계속해서 무대를 떠날질 않다 보니 악기를 들고 세 번째 앙코르 곡을 연주했는데 길이가 딱 5초짜리였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2부에서 연주된 브람스 교향곡 1번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가드너의 스타일이 자신의 주관을 곡에 투영하는 것을 지양하는 편이어서 그런지, 그런 해석이 없어도 멋지게 들리는 1,4악장은 만족스러웠던 반면에 조금 더 음악적 표현을 구사했어도 좋을 것 같은 2, 3악장은 다소 평범했단 생각이 들었다.
 
일단 1악장에서는 첫 서주부터 '오우 좀 대단한데?' 싶을 정도로 강력한 음량이 공연장을 채우며 시작이 되었다. 추가적으로 1악장에 존재하는 도돌이 표를 생략하지 않았는데, 개인적으로 도돌이는 지키는 것이 맞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보니 이 부분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이후 부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클라이맥스로 들어가기 전 다소 음산한 분위기로 진행되는 현악기의 빌드업(레터 I, 293마디부터) 템포를 살짝 늦췄다가 점진적으로 가속을 붙여서 클라이막스(레터K, 321마디부터)에서 '빵'하고 강력하게 터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부분에서 호른과 트럼펫을 통해 등장하는 운명 리듬(8분 음표 3개+4분 음표 1개)을 확실하게 들려준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의 운명 리듬은 브람스가 이 곡을 작곡할 때 가져야만 했다던 베토벤이란 존재에 대한 부담감을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라, 이는 반드시 잘 들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지라 특히 만족스러운 부분이었다.
 
2악장과 3악장은, 반면에 앙상블은 괜찮았지만, 이를 넘어서는 음악적 표현들이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 왜 이런 느낌을 받았을까 생각해보니 중간 악장에서는 목관악기가 활약하는 부분이 많은 반면, 이들이 깊은 울림을 주는 순간이 별로 없었음을 떠올릴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2악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바이올린 악장의 솔로도 아쉬웠는데,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뚫고 선명하게 들리는 바이올린 소리는 괜찮았지만 다소 뻣뻣한 느낌이 들어서 '감정을 조금만 더 실어서 연주를 해줬으면' 하는 느낌도 들었다.
추가적으로 2악장 중간 어디에서 무척 익숙한, 그리고 결코 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퍽!'하는 소리가 연주 중에 들려서 무대를 보니 첼로 주자 한 명의 현(정확하지 않으나 C현이었던 것 같다.)이 끊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한 번 경험한 적이 있기에, 프로 오케에서는 어떻게 대처를 하는지를 지켜봤는데 자리를 지킨 상태에서 그대로 연주를 진행하였다. 당장 바꿀 수 있는 여분의 현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았는데, 이를 보고 앞으로 연주 때는 혹시 모르니 여분의 현 세트를 무대에 챙겨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4악장의 경우 서주에서 말했던 금관악기의 활약들이 돋보이는 곳이기도 하고, 그 뒤로 이어지는 부분은 워낙 대중적으로 잘 먹혀들, 소위 '뽕'이 한가득 존재하는 부분이었기에 그럭저럭 만족스럽게 들을 수 있었다. 어디에서 마지막 클라이맥스로 가기 직전의 경과부(레터Q~Piu Allegro, 367마디~391마디)가 음악적으로 굉장히 표현하기 까다롭단 것을 본 기억이 있는데 우물거리지 않고 과감하게 돌파하여 멋진 코랄까지 이어지는 부분도 굉장히 기억에 남았다.
 
몇 번의 인사와 함께 앙코르 곡으로 에드워드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연주하고 공연이 끝났다.
 
오늘 공연의 경우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좀 남는 연주였다. 일반적으로 유럽 악단이 내한 공연을 하게 되면, 우리는 국내 악단에서는 들을 수 없는 무언가를 기대하게 된다. 다소 비싼 티켓 값을 지불하고 오는 것에는 이러한 이유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데, 오늘 연주는 그 기대치를 충족시켜 주기엔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어 않았나 싶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것이었거나, 아니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상적인 형태의 브람스 교향곡 1번이 이미 구축되어 있기에 이와 벗어난 부분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음악을 즐기는 입장에서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다고 서술한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정말 여담으로, 공연장을 나오는데 1층 로비에서 현 법무부 장관을 봤다. 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말았는데 용기 있는 사람들은 팜플랫에 사인을 받거나 셀카를 요청하기도 했다. 여하간 신기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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