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al Music/내맘대로공연리뷰

[20230511 & 14]미클로시 페레니&피닌 콜린스 듀오 콘서트 I&II(예술의 전당 개관 30주년 기념)

MiTomoYo 2023. 5. 1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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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테츨라프,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에 이어서 세 번째로 가게 된 예술의 전당 30주년 기념 콘서트다. 앞의 두 공연도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들이지만, 가장 관심이 갔던 공연이 바로 이것이었다. 만 75세의 거장 첼리스트의 연주를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프로그램도 이틀 동안 베토벤이 남긴 모든 첼로 작품집들을 연주한다고 하니, 첼로를 연주하는 입장에서는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공연이었다.

 

이러한 바람이 이번에도 통해서였는지 근무 스케줄이 적절하게 비켜가서 이렇게 이틀 공연을 듣고 블로그에 감상기를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이틀 공연을 다소 저렴한 가격에 관람할 수 있는 패키지도 판매하고 있어서 이를 예매하였다. 블로그 후기도 방문자수나 포스팅 수를 염두에 둔다면 나눠서 글을 써야겠지만, 상술한 대로 두 공연을 통해서 온전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하나의 포스팅으로 올리는 것이 더 적절하단 생각이 들었다.(물론 첫날의 공연을 조금이라도 더 기억에 남기고자, 공연 마치고 일부 내용을 작성을 해두긴 했지만 말이다)

 

프로그램 소개부터. 모든 곡이 베토벤의 곡으로만 이루어져서 작곡가에 대한 표기는 생략하였다.

 

1일 차 프로그램 (5월 11일, 오후 7시 반)

=====<1부>=====
첼로 소나타 1번 F장조 op.5-1

첼로 소나타 4번 C장조 op.102-1
=====<2부>=====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중 '소녀 혹은 귀여운 아내를'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op.66

첼로 소나타 3번 A장조 op.69
=====<앙코르>=====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중 '사랑을 느끼는 남자들은' 주제에 의한 7개의 변주곡 WoO.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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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차 프로그램 (5월 14일, 오후 5시)

=====<1부>=====
헨델 오라토리오 '유다스 마카베우스' 중 '보아라 용사가 돌아온다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WoO.45

첼로 소나타 2번 G단조 op.5-2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중 '사랑을 느끼는 남자들은' 주제에 의한 7개의 변주곡 WoO.46
=====<2부>=====
호른 소나타 F장조 op.17(베토벤 본인에 의한 첼로 편곡 버전)

첼로 소나타 5번 D장조 op.102-2
=====<앙코르>=====
첼로 소나타 1번 F장조 op.5-1 중 2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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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공연에 앞서서 '과연 첼로와 피아노의 듀오 공연을 콘서트홀에서 열었을 때, 두 악기 간의 밸런스와 음량을 잘 조절할 수 있을까?'란 걱정이 들었다. 10년이 돼 가는 비스펠베이의 베토벤 소나타 연주회(https://electromito.tistory.com/95)를 비롯해서 여러 실내악 연주를 콘서트홀에서 들었을 때 큰 규모의 홀을 몇 명의 연주자들의 소리로 가득 채운다는 것은 역시 버겁다는 생각을 늘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은 1일 차 공연에서는 생각보다 크게 와닿았다. 위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래도 가까운 거리의 중앙 좌석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음량이 다소 작은 탓에 관객석에서 들리는 소음들이 아예 음악을 가려버리는 순간들이 자주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첫 곡인 소나타 1번의 1악장에서는 한 관객의 지속적인 기침 소리로 인해서 주제부의 절반 이상을 기침 소리로 덮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생리적 현상이란 점에서 그분도 난감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는 않는다만, 곡이 흘러가는 내내 자꾸만 맥이 끊어져버려서 굉장히 아쉬웠다.

 

아무래도 날짜가 나눠진 만큼 각 날짜의 전반적인 얘기를 먼저 하고 넘어가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첫 날의 공연은 연주자도, 관객도 모두 컨디션이 나빴던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첼로와 피아노의 음량 밸런스가 다소 피아노 쪽에 가있었고(이것이 더 일반적인 케이스다.) 감상에 방해가 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반주에서 자잘한 미스터치도 종종 들렸다. 관객들 역시 다소 많은 기침과 재채기, 그리고 핸드폰 벨소리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하였다.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페레니의 연주만이 온전히 중심을 잡고 있었다. 다만 연주를 마치고 커튼콜을 하러 무대를 오가시는 모습이 꽤 힘겨워 보이긴 했다. 반면 2일 차의 공연은 음량 밸런스도 괜찮았었고, 관객석에서 들리는 소리도 훨씬 적어서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연주를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페레니의 걸음걸이 며칠 전에 비해서 힘차게 느껴졌다.

 

미클로시 페레니의 연주는 음반, 그리고 인터뷰 기사를 통해서 어떤 식의 음악을 들려줄지에 대한 느낌은 있었는데, 예상대로 화려함이나 과장된 표현 없이, 음 하나하나를 충실하게 들려주는 해석을 들려주었다. 이러한 스타일의 연주에서는 기본기가 정말 '완벽'하지 않으면 듣기 흉한 연주가 나오게 되는데, 그의 연주를 듣는 내내 어색한 순간을 느낀 경우가 거의 없었다. 첼로를 하는 입장에서 그가 어떤 움직임을 통해 연주를 들려주는지 눈에 보일 수 밖에 없었는데, 아주 적은 양의 활로도 안정적이면서 객석에 충분히 들릴 정도의 소리가 나는 것이 경이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저음역의 깊이감과 고음역의 부드러운 음색이 특히 인상적이었고, 그것이 가장 확실하게 드러난 순간이 3번 소나타의 도입부였다. 다소 산만한 분위기에 흐릿해진 관객들의 집중력이 일순간 돌아오는 듯했고, 나 역시 나즈막히 울리는 첫 몇 마디에서 엄청난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컨디션이 좋아 보였던 두 번째 공연에서는, 안정적이지만 다소 톤이 단조로운 연주를 들려준다는 선입견도 무너뜨렸다. 2번 소나타의 1악장에서 무겁고 비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다가, 2악장에서는 밝고 활기찬 연주를 들려주고 이와 비슷하게 변주곡에서는 곡의 조성에 따라 음색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반주를 맡은 피닌 콜린스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첫날에는 페레니의 소리에 비해서 전반적으로 크게 연주한 것이 아쉽게 느껴졌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공연장에 적응하지 못한 탓에 그런 것 같단 생각이 드는데, 그동안 잘 느끼지 못했던 4번 소나타에서 등장하는 첼로와 피아노 간의 대위구를 확실하게 보여주던 부분, 주도권을 서로 주고받는 변주곡에서 음량적으로 '이거 좀 과하게 차이가 나는데?'란 생각이 드는 지점이 없었던데다 결정적으로 2일 차에서는 첼로와의 밸런스가 굉장히 잘 맞았기 때문이다. 그 탓에 1일 차의 공연이 더욱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쓰면서 생각해 보니, 5번 소나타가 첫날에 편성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단 생각도 든다. 그랬더라면 2악장의 명상적인 느낌과 3악장의 푸가를 온전하게 느끼기 어려웠을 것이고 그만큼 공연의 여운을 깊게 느끼지 못했을 것만 같다.

 

여담으로 호른 소나타의 첼로 편곡 버전을 연주하는 것을 실제로 보니 여타 첼로 소나타들과는 다른 운지법, 특히 음정 도약이 빈번하게 이뤄지는 것을 보고 '이 곡이 내추럴 호른으로 쓰인 것이 맞긴 하는구나'란 생각도 어렴풋이 들기도 했다.

 

이틀 간의 대장정이 모두 끝나고(물론 조명 컨트롤 실수도 있긴 했지만) 절반이 넘는 관객들이 정말 멋진 연주를 들려준 두 명의 연주자에게 기립박수로 화답을 했고 평소라면 절대 일어나지 않는 나도 오늘 만큼은 일어나서 잊을 수 없는 연주를 들려준 미클로시 페레니를 향해서 경의를 담은 박수를 쳤다.

이번 공연 포스팅은 마무리를 짓기가 특히나 어렵다. 썼다 지웠다를 몇 번을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공연을 보는 와중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굉장히 많이 들었는데, 사적인 얘기들이 많이 담길 것 같아서 블로그에 남겨두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 여기에 구체적인 내용을 쓰지는 않으려 한다. 다만 이번 공연이 단순히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선 거장의 멋진 연주를 들은 것을 넘어, 어쩌면 인생에 있어서 변화의 지점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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