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al Music/내맘대로공연리뷰

[20230426]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예술의 전당 개관 30주년 기념)

MiTomoYo 2023. 4. 27.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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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불레즈의 유산이라고 볼 수 있는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의 공연이 있다고 해서 가게 되었다. 오로지 현대음악으로만 편성된 공연을 들으러 간 것은 이제는 사라진 서울시향의 아르스 노바 시리즈 이후로(https://electromito.tistory.com/450) 두 번째인 것 같은데, 프로그램 상으로는 이쪽이 좀 더 내가 생각하는 현대음악 쪽에 가까운 공연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주로 듣는 레퍼토리가 바로크~후기낭만 까지다 보니 아무래도 현대음악 쪽은 크게 아는 바가 없고, 오늘의 프로그램 중에서는 그나마 스티브 라이히의 'Clapping Music' 정도만 들어봤고 나머지 곡들은(심지어는 불레즈의 'Derive 1'은 그의 대표작임에도 불구하고)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유튜브를 뒤져본다면 곡을 들어볼 수 있긴 하겠지만, 그것이 큰 의미를 가질 것 같지 않아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공연장으로 가게 되었다.
 
일단 오늘의 프로그램부터. 별도의 인터미션 없이 공연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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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Boulez-6개의 악기를 위한 파생 1(Derive 1)
Agata Zubel-솔로 베이스드럼을 위한 '모노드럼' (한국 초연)
Uzong Choe-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루퍼' 중 1, 3악장
Phuluppe Manoury-바이올린을 위한 '페르페투움 모빌레' (한국 초연)
Sungji Hong-5개의 악기를 위한 '에스타브로산' (아시아 초연)
Unsuk Chin-피아노를 위한 에튀드 1번 'in C'
Pierre Boulez-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네
Liza Lim-클라리넷과 첼로를 위한 '잉구즈'
Jaview Alvarez-한 명의 타악기 주자, 증폭된 마라카스와 전자음향을 위한 '
테마즈칼'
Steve Reich-박수 음악
=====<앙코르>=====
Steve Reich-박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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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n.강혜선 / Vc.르노 데자르뎅 / Fl. 엠마뉴엘 오펠 / Cl. 제롬 콩뜨 / Perc. 사무엘 파브르 / Pf. 디미트리 바실라키스)
 
먼저 각 곡에 대한 감상부터 적어보자면,
 
불레즈의 Derive 1은 오늘 공연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나와서 연주하였는데, 역시나 이해하기 쉽지 않은 곡이었지만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현악기의 트릴과 화성을 보조하는 듯한 피아노, 튀는 음색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관악기와 비브라폰이 서로 교차하면서 오묘한 음색을 이어나가는 것이 마치 소리가 공연장에서 두둥실 떠다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어서 연주된 아가타 주벨의 '모노드럼'은 한 명의 주자가 베이스드럼을 연주하는 곡이었는데, 퍼포먼스적 요소도 가미가 된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일단 한 명이 연주를 하는 것이다 보니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를 온전히 타악기 주자에게만 비춰주었다. 여러 말렛으로 드럼 여기저기를 두드리며 다양한 음향효과를 내기도 하고, 곡 중간에 꽤 많은 수의 탁구공을 북 위에 쏟아부은 뒤 북을 두드려, 공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일종의 음악으로 표현한 '우연적 요소'까지 가미된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 곡이었다.
 
최우정 교수의 '루퍼'는 애수 어린 분위기의 핀란드 자장가가 바이올린과 첼로를 통해 변형되고, 그것이 다음 형태의 변형의 기반이 되는 듯한 느낌의 곡이었고, 다시금 핀란드의 자장가로 곡이 매듭지어지는 것이 기억에 남았다.
 
필립 마누리의 '페르페투움 모빌레'(무궁동)은, 그 이름답게 빠른 음표들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바이올린 곡이었으며 개인적으로는 좀 더 현대적인 화성들이 가미된 필립 글라스의 곡 같은 느낌을 받았다.
 
홍성지의 '5개의 악기를 위한 에스타브로산'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표현한 두 개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고 곡이라고 하는데, 피아노의 강렬한 타건을 시작으로 여러 악기를 이용해서 망치를 두드리는 소리를 묘사하는 것을 보고, '곡이 시작하기 전에 곡의 설명을 읽어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종종 등장하는 현악기의 글리산도, 때론 텅 빈 듯한 소리를 들려주는 플루트, 웅얼거리는 베이스 클라리넷이 특이한 효과를 주는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다.
 
진은숙의 피아노를 위한 에튀드 1번은 엄청난 기교가 필요하단 설명과는 다르게, 피아니스트가 그리 어렵잖게 연주를 했던 것 같았다. 연습곡이란 이름답게, 비슷한 형태가 반복되었고, 저음부의 음을 하나 연주하고 페달을 이용해 이를 지속하는 동안 나머지 음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스타일이 주로 등장했다. 지속음의 잔향을 비롯해 연주되는 음들이 서로 어우러져서 독특한 느낌을 주는 것이 기억에 남는 곡이었다.
 
불레즈의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네는, 아마 오늘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난해한 곡이 아니었나 싶다. 음렬을 이용해서 작곡한 곡이란 해설을 보고서 '내게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음렬주의가 음악사적으로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긴 하나, 듣고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고, 나름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렵게만 들리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친해지는 것은 요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리자 림의 '잉구즈'는 클라리넷과 첼로로 구성된 곡인데, 이것 역시 듣기에 썩 쉬운 곡은 아니긴 했다. 다만 두 명의 연주자가 연주를 하면서 서로의 음색이 중첩되었다가 분리되기도 하는 순간은 꽤 재미있게 느껴졌다. 이런 독특한 느낌을 발견하는 것 때문에 가끔씩이라도 현대음악을 듣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비에르 알바레즈의 '테마즈칼'은 사전에 준비된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타악기 주자가 마이크의 도움을 받아 마라카스를 흔드는 곡이었는데, 이것도 무척 재미있었다. IBK체임버 홀의 모든 조명이 꺼진 뒤에 전자음악이 흘러나왔고, 이어서 무대 뒤편 반사판에 붉은 조명이 켜진 뒤 연주자가 단상에 올라와서 마라카스를 다양하게 흔들면서 곡을 연주했다. 현대음악 공연에서 볼 수 있는 비주얼적인 요소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시각적 요소를 제외하더라도 마라카스의 소리가 연주자 양 쪽에 마련된 마이크를 통해서 때로는 스피커로, 때로는 악기 고유의 소리로 들리면서 소리의 위상을 통한 음악적 효과를 느낄 수도 있었다.
곡이 끝나갈 무렵 모든 멤버들이 나와서 타악기 주자를 구경하거나 무대를 간단히 정리한 뒤에, 연이어서 스티브 라이히의 '박수 음악'이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가장 잘 알려진 곡이다 보니 관객석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도 감지가 되는 듯했다.
 
앙코르도 똑같이 '박수 음악'으로 마무리 지었는데, 단원 중 한 명이 무언가 말을 하다가 말았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관객참여를 유도한 것 같은데 제대로 전달이 안된 것 같았다. 대신 본인의 곡을 들으러 온 작곡가 두 분(최우정, 홍성지)을 비롯해서 관객석에서도 두 어분 무대 위에 올라오셨고, 객석에서도 몇 분 박수를 치면서 마무리에 동참을 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곡에서 사용되었던 탁구공을 단원 분들께서 객석에 던지면서 오늘 공연이 마무리가 되었다.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이 현대음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유서 깊은 단체임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오늘 공연을 잘 들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평소에는 듣지 못했던 소리들, (특히 부드럽게만 느껴지던 플룻에서 그토록 야성적인 소리가 날 줄이야!) 마냥 어렵게 들리는 소리에서도 인상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재미,시각적 효과마저 음악의 한 요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 등 '생소함이 주는 즐거움' 덕분에 지금껏 들었던 공연들과는 또 다른 만족감을 느끼면서 공연장을 나설 수 있었다. 그 때문일까? 공연이 진행되는 와중에 마치 미술관에서 맡았던 유화 특유의 오묘한 향을 어디선가 느꼈던 것 같다.
 
음반이나 영상물로는 현장에서 느끼는 모든 것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면서, 현대음악 공연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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