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al Music/내맘대로공연리뷰

[20241001]피에르-로랑 에마르 피아노 리사이틀

MiTomoYo 2024. 10. 2.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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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후의 클래식 음악을 찾아서 듣는 경우는 거의 없긴 한데, 그래도 리게티의 음악은 곡들이 재미있게 느껴지는 편이어서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듣곤 한다. 이번 내한 리사이틀에서 리게티의 곡들을 연주한다는 것을 보고 공연을 보러 갈까 고민을 했었다.

예매를 결정한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피에르-로랑 에마르가 창단 멤버로 활동했던 앙상블 엥테르콩텡포랭내한 공연(https://electromito.tistory.com/838)을 통해서 현대 음악의 경우 음반, 혹은 영상물에서 듣는 것과 공연장에서 접하는 것의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었기에, 마찬가지로 실연을 통해서 리게티의 음악을 들어본다면 더 흥미진진한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하나는 프로그램의 구성 때문이었다. 아래 적어둔 것처럼 1부와 2부 모두 리게티와 다른 작곡가의 곡을 번갈아서 연주하는 형태로 되어 있었는데, 이는 최근 들어서 종종 시도되는 공연 프로그램이라고 한다.(모 커뮤니티에서는 이를 '몽타주' 트랜드라며 소개한 글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러한 방식의 공연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다 싶어서 예매를 결정했다.

 

오늘 공연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1부>=====

Gyorgy Ligeti-무지카 리체르카라 1번

Ludwig van Beethoven-바가텔 op.119-9

Gyorgy Ligeti-무지카 리체르카라 2번

Ludwig van Beethoven-바가텔 op.33-2

Gyorgy Ligeti-무지카 리체르카라 3번

Ludwig van Beethoven-바가텔 op.119-2

Gyorgy Ligeti-무지카 리체르카라 4번

Ludwig van Beethoven-바가텔 op.119-3

Gyorgy Ligeti-무지카 리체르카라 5번

Ludwig van Beethoven-바가텔 op.119-10

Gyorgy Ligeti-무지카 리체르카라 6번

Ludwig van Beethoven-바가텔 op.119-11

Gyorgy Ligeti-무지카 리체르카라 7번

Ludwig van Beethoven-바가텔 op.119-6

Gyorgy Ligeti-무지카 리체르카라 8번

Ludwig van Beethoven-바가텔 op.119-5

Gyorgy Ligeti-무지카 리체르카라 9번 '벨라 버르토크를 추모하며'

Ludwig van Beethoven-바가텔 op.33-7

Gyorgy Ligeti-무지카 리체르카라 10번

Ludwig van Beethoven-바가텔 op.119-8

Gyorgy Ligeti-무지카 리체르카라 11번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에 대한 오마주'

=====<2부>=====

Gyorgy Ligeti-연습곡 제2권 中 7번 '우울한 비둘기'

Frederic Chopin-연습곡 op.25-2 f단조

Gyorgy Ligeti-연습곡 제1권 中 3번 '차단된 건반'

Claude Debussy-연습곡 제3번 '4도를 위하여'

Gyorgy Ligeti-연습곡 제2권 中 7번 '금속'

Frederic Chopin-연습곡 op.25-8 Db장조

Gyorgy Ligeti-연습곡 제1권 中 7번 '바르샤바의 가을'

Claude Debussy-연습곡 제11번 '아르페지오를 위하여'

Gyorgy Ligeti-연습곡 제1권 中 7번 '개방현'

Claude Debussy-연습곡 제7번 '반음계를 위하여'

Gyorgy Ligeti-연습곡 제2권 中 7번 '악마의 계단'

=====<Encore>=====

Gyorgy Ligeti-세 개의 바가텔

 

1부는 리게티의 무지카 리체르카타와 베토벤의 바가텔들을 교차하여 연주를 했다. 리게티의 무지카 리체르카는 무척 재미있는 아이디어의 모음곡인데, 2개의 음정('라','레')을 사용한 1곡부터, 번호가 높아질 때마다 사용하는 음정도 하나씩 늘어나서(그렇다고 이전에 사용하던 음정이 다음 곡에서 그대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11곡이 되면 12개의 음정 모두 사용하는 형태의 곡이다.

재미있는 아이디어의 곡이긴 한데, 초반 몇 곡은 그럭저럭 듣다가도 뒤로 갈수록 그냥 무심코 흘려듣곤 했었다. 오늘 공연에서는 이 곡이 가지고 있는 여러 재미들을 느낄 수가 있었다. 4곡은 왈츠 형태의 춤곡을, 7곡에서는 몽환적인 느낌의 환상곡을, 8곡에서는 바르토크 스타일의 음악을 들을 수가 있었다. 11곡에서는 12 음계를 모두 사용한 푸가임을 확인하고 '그동안 음악을 생각 없이 들었던 것은 아니었구나!'란 소소한 자부심(?) 같은 것도 느낄 수가 있었다.

이어서 연주된 베토벤의 바가텔들은 때론 현대음악의 필수요소와도 같은 난해함에서 잠시 분위기를 환기시키기도, 앞서 연주된 리게티의 곡을 다시 한번 정리해 주는 역할을 하면서 40분 넘게 이어진 1부의 연주를 듣는 동안 계속해서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조합은 3번-op.119(2)와 4번-op.119(3)이었는데 전자의 경우 리듬적 유사성이 느껴졌고 후자의 경우 3박자 계통의 춤곡임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몽타주 스타일의 프로그램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단 생각도 들었다.

 

2부에서 연주된 리게티의 연습곡들은, 이번에 처음 들어보는 곡들이었는데 무지카 리체르카타에 비해서 훨씬 난해한 형태의 곡들이었다. 각 연습곡에는 부제들도 붙어있었는데 이러한 부제가 연습곡의 음악적, 연주적 특성을 함축하고 있다 보니 이를 숙지하지 못하고 공연을 들으러 간 내 책임도 일정 부분 있다고도 생각한다. 귀에 들리는 소리는 훨씬 복잡했지만, 1부 못지않게 몰입했을 뿐만 아니라 때론 거대한 소리 덩어리로만 느껴지기도 했던, 이런 난해한 현대 피아노 독주곡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란 생각 새삼 놀라기도 했다.

2부의 리게티 곡들 중에서 특히 재미있게 들렸던 곡들은 1집 3번(차단된 건반), 1집 2번(개방현), 2집 13번(악마의 계단)이었다. '차단된 건반'에서는 미묘하게 절뚝이는 듯한 피아노의 리듬이 무척 독특하게 들렸고 '개방현'에서는 내게는 무척 익숙하게 들리는 현악기의 튜닝 소리가 확연히 느껴져서 재미있었고 '악마의 계단'은 연주자에게도, 청중들에게도 도전적일 수밖에 없는 오늘의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정말 알맞은 곡이었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드뷔시와 쇼팽의 연습곡 역시 1부와 비슷한 역할을 담당했지만, 그 비중이 음악적 통일성에 더 가까운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드뷔시와 그리 친하지 않아서, 혹은 시대적으로 베토벤에 비해서 드뷔시가 리게티에 더 가까워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피에르-로랑 에마르의 연주에 대해서도 언급해보고 싶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잔향까지도 연주의 일부로 사용하는 듯한 그의 능력을 들고 싶다. 곡의 특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지카 리체르카라를 연주할 때 이러한 특성이 자주 느껴졌는데 페달을 활용해서 화음, 때론 같은 음을 겹겹이 쌓아가면서 들리는 특이한 음향은 다른 피아노 리사이틀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었던 경험이기도 했다.

음색적으로도 다른 공연에 비해서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이는 양극단의 음역대를 연주할 때 특히 두드러지게 느껴졌다. 특히 초고음을 연주할 때는, 마치 유리가 산산이 부서질 때 그 파편이 빛에 반사되어 다양한 색으로 반짝이는 듯한 인상마저 받았다. 내가 소리를 시각적으로 느끼는 공감각적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이때 느꼈던 순간은 더더욱 특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드뷔시는 모르겠지만, 베토벤과 쇼팽의 해석은 누군가에겐 '이상함'의 영역으로까지 느껴질 수도 있을 정도로 지금껏 들었던 것과는 이질적이었다. 그가 과거의 음악을 연주할 때 원래 이렇게 연주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오늘만큼은 리게티의 곡들이 공연의 중심이었기에, 통일성을 부여하고자 다분히 의도적으로 이렇게 연주했던 것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베토벤과 리게티와의 음악적 간극은 무척이나 큰 편인데, 1부의 공연은, 장대한 하나의 곡을 듣는 것 같은 통일감이 느껴졌다. 특히 6번-op.119(11)-7번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이를 크게 체감할 수 있었는데,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길이의 베토벤의 바가텔이 리게티의 곡의 일부라고 착각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앞서 말한 '착각'과 연계되는 내용으로, 하나의 곡이 끝난 뒤 잠깐 연주를 멈추는 시간도 미리 설정을 했던 것 같다. 만약 두 곡 사이의 스타일이 차이가 나는 경우에는 멈추는 시간을 길게, 비슷한 스타일일 경우엔 이 시간을 짧게 함으로써 음악적 통일성을 강조하기도, 난해한 곡을 들으면서 생긴 긴장감을 잠깐이라도 풀어주기도 했던 것 같았다. 덕분에 1, 2부 모두 몰입해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리게티의 해석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저 막연하게만 느꼈던 리게티의 곡에서 이토록 재미있는 요소가 많으며, 익숙하지 않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멋진 연주를 들었단 사실에 감탄하면서 집까지 돌아왔다는 것만 언급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꼭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첫 번째는 오늘 정규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이었던 '악마의 계단'에서 가장 마지막 음을 친 뒤 상당히 오랜 시간 콘서트홀에 남아있는 잔향을 들을 수 있었다. 아마 지금껏 들었던 피아노 소리 중에서 가장 여운이 남고, 혹시 이 소리를 방해하는 어떤 다른 소리가 나타날까봐 가장 긴장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두 번째는 리게티의 곡에서 왠지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연상케하는 부분이 곳곳에서 느껴졌다는 점이었다. 반음계적 요소, 다른 피아노 곡에서는 쉽게 느껴지지 않는 야성적인(?) 타건 등등... 쉽지 않았던 리게티의 곡에서 개인적으로찾았던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였다. 음악적으로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까지는 내 지식으로는 알 수 없겠지만...

 

앙코르 곡으로는 리게티의 세 개의 바가텔을 연주했는데, 이 곡이 어떤 곡인지 몰랐기에 더욱 이 곡을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다. 나중에라도 혹시 이 곡을 들을 기회가 생길 다른 분들이 있을까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관심 있는 연주자의 공연이었기에 갔던 다른 공연들과는 다르게, 오늘 공연은 피에르-로랑 에마르의 연주가 어떤 특별한 점이 있기에 현대 피아노 곡의 대가라 불리는지, 요새 공연의 최신 트랜드라고 하는 몽타주 스타일의 프로그램이 어떤지가 궁금했기에 간 것이었다. 그 결과 꽤나 오랜 시간 기억에 남을 연주도 듣고,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 인정 받는 죄르지 리게티란 작곡가의 곡에 대해서도 더 친숙해질 기회를 마련해준 것 같아서 여러모로 대만족스런 공연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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