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al Music/내맘대로공연리뷰

[20250329]르네 야콥스와 B'Rock 오케스트라

MiTomoYo 2025. 3. 30.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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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부터 온갖 일들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공연이고 뭐고 볼 생각 자체를 못하고 있었다가 지난주부터 약간의 여유(그래봐야 회사 업무로 굴림당하는 수준은 더해진 것 같지만...)를 가질 정도로는 스케줄이 풀렸다. 그러던 중 바로크 음악의 거장이라고 하는 르네 야콥스가 B'Rock 오케스트라라는 단체와 내한 공연을 한다는 사실을 접했고, 마침 근무 스케줄도 없는 날이어서 예매를 하게 되었다.

 

바로크 음악을 제대로 섭렵하기 위해서는 기악곡뿐만 아니라 성악곡들도 많이 들어야 하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다. 바로크 기악곡들은 곡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은 것들이 많으나 많은 성악곡들의 경우 전곡의 길이가 상당히 긴 편이기에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마음을 제대로 먹어야 한다. 어찌어찌 전곡을 모두 들었다고 하자, 그렇지만 곡을 제대로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지가 않는다.

바로 두 번째 관문 '언어'의 문제가 있다. 텍스트, 그러니깐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는 곡들은 가사의 내용에 따라 조성, 관현악법, 분위기 등 많은 것이 변화하기 마련이다. 근데 애초에 가사를 이해하지 못했으니 이러한 구성을 제대로 알아차리기란 더욱 쉽지가 않다. 대본집이 있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이를 읽어가며 음악을 듣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이렇게 공연을 통해서 접하게 되는 바로크 음악은, 곡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이전 포스팅에서 몇 번 언급했던 것처럼, 시대악기 연주도 하는 만큼 전문 연주자들의 연주를 듣고 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여하튼 오늘 공연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1,2부>=====

George Frideric Handel-오라토리오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 HWV.46a

오케스트라: B'Rock Orchestra

지휘: 르네 야콥스

아름다움(Bellezza): 임선혜(Sop)

즐거움(Piacere): 카테리나 카스페르(Sop)

깨달음(Disinganno): 폴 피기에(C.Ten)

시간(Tempo): 토머스 워커(Ten)

==========

 

줄거리는 주인공 '아름다움'이 '즐거움', '깨달음', '시간'과의 대화를 통해 삶의 참된 가치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프로그램 북에는 '알레고리'[각주:1]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고, 이는 특히 묘사적 표현을 쉽게 나타낼 수 있는 미술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지만, 집에 오면서 포스팅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던 차에, 바로크 버전 '인사이드 아웃'으로 요약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악기 배치는, 바로크 음악에서 자주 사용하는 바이올린 1-2 (류트) / 콘티누오 / 관악기 방식을 사용했고 콘티누오 뒤에 비올라, 베이스는 바이올린과 관악기 뒤에 한 대씩, 그리고 단 위에 오르간을 올려두었다.

성악가들은 가사에 따라 무대를 자유로이 오가며 노래를 했고 거울과 같은 소품을 활용하기도 하며, 1부와 2부에 각각 다른 의상을 입으면서 오라토리오의 내용을 시각적으로도 표현했다. 앞서 언급한 '곡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또 하나의 좋은 요소가 여기에 있다.

 

튜닝을 마치고 곧바로 곡이 연주되었다. 1층에 마땅한 좌석이 없어서 2층 맨 앞 중앙 자리를 예매했는데, 시대악기 특성상 음량이 그리 크지 못한 편이라 걱정을 했었다. 감상을 방해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소 부족하단 느낌은 받긴 했었다.

서곡을 들었을 때, 오늘 좋은 연주를 들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큰 틀에서의 표현, 이를테면 갑작스레 등장하는 불협화음과 같은 요소는 멋지게 표현이 되긴 했지만 앙상블, 특히 바이올린과 관악기 간에 서로 맞지 않아 어수선한 느낌도 받았기 때문이다. 

1부에서는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되는 지점도 있었는데 오케스트라와 오르간 독주가 교차되어 등장하는 부분(집에 와서 찾아보니 'Taci, qual suono ascolto!'부분이었다.)에서 오르간의 속주의 음가가 불균일하게 들리더니 곧이어 템포가 미묘하게 빨라지다가, 아예 마디가 어긋난 버려 순간 정적이 흐른 부분이 있었다. 바로크 음악에서는 쉽게 듣지 못한 부분이라 '실수'인지 '파격'인지 궁금해져 찾아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슬프게도 '실수'로 결론이 나버렸다. 

이 때문에 1부에서는 르네 야콥스의 지휘가 굳이 필요한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바로크 음악에서 종종 등장하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불협화음의 표현은 인상적이었지만, 이런 부분은 바로크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라면 굳이 지휘자가 없이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으며 그 외의 특별한 음악적 표현을 느끼기 어려웠던 데다 앙상블도,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군데군데 엉성한 느낌도 받았기 때문이다.

반면 2부에서는 같은 단체가 연주하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괜찮은 연주를 들려줘서 놀랐다. 'Tu giurasti di mai non lasciarmi'의 다소 복잡한 리듬을 깔끔하게 표현하는 것에 더해서, 첼로 콘티누오에 조금 더 밸런스를 주면서 곡의 분위기에 강렬함을 더해준 것이라던가, 'Ricco pino, nel cammino'에서는 첼로 콘티누오의 음가를 짧게 표현함으로써 곡의 긴장감을 더해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오라토리오를 이끌어가는 성악 파트는 좋은 점도 아쉬운 점도 있었다. 우선 '즐거움'을 맡은 카테리나 카스페르는 오늘 공연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갈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는 노래와 연기를 보여주었고, 그 존재감은 '아름다움'을 넘어설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음색도 살짝 어두운 편이다 보니 '아름다움'을 이 분이 맡았으면 오히려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Lascia la spina'[각주:2]가 끝나고 '브라비'와 함께 박수도 터져 나왔는데, 이 부분만큼은 박수가 나와도 이해가 될 정도로 멋있었다. '아름다움' 역할을 맡은 임선혜도 좋은 노래를 들려줬다고 생각한다. 음색도 '즐거움'과 대조되어 밝은 편이었기에 대비가 잘 되었던 것 같았다. 다만 음량이 전반적으로 작은 편이어서 '즐거움'에 존재감이 밀려버린 것 같은 아쉬움도 들었다.

'시간' 역할을 맡은 토머스 워커는 이 곡에서 가장 어두운 가사[각주:3]이 등장하는 ''Urne voi! Che racchiudete' 파트에서 강렬하게 어두운 음색을 들려준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간'은 이 곡에서 악역을 담당하는 줄 알아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그런 것은 아니어서 약간 김이 새 버리고 말았다. 뭐... 이건 연주자의 문제는 아니니깐.

가장 아쉬운 파트는 '깨달음'을 맡은 폴 피기에로 처음 등장할 때부터 오케스트라와는 뭔가 따로 노는 듯한 음정으로 '어? 뭐지?' 싶은 생각을 들게 만들었고 이후에는 다소 나아졌지만 첫 소절 정도는 계속 음정이 안 맞는 것 같은 노래를 들려주었다. 표현적인 측면에서도, 물론 가성을 사용하는 카운터테너의 특성상 음악적 표현이 제한될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이를 감안하더라도 너무 밋밋한 느낌이었다.

 

 

연주에 대한 평은 여기서 마치고, 이 곡을 들으면서 느꼈던 개인적인 감상을 더 적어볼까 한다.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는 헨델이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넘어온 20대 초반에 쓴 작품이며, 아르칸젤로 코렐리의 주도하에 연주되었단 기록도 있다는 것을 공연 시작 전 팜플랫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 때문일까? 이 곡에서 여러 이탈리아 작곡가의 작풍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Un pensiero nemico di pace', 'Folle dunque, tu sola presumi'에서는 비발디의 협주곡을, 'Venga il Tempo'에서는 스카를라티의 건반 소나타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은 음형도 발견했다. 코렐리의 합주 협주곡 같은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었는데, 어떤 부분인지 지금은 찾기가 어렵다.(혹시 찾게되면 이 부분은 수정하겠다... ㅠ)  그렇다고 마냥 이탈리아 음악을 따라 했다고는 느껴지지 않는 것이, 2부에서 종교적인 주제가 등장하는 부분, 이를테면 'Un leggiadro giovinetto'와 같은 부분에서는 바흐의 칸타타와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 외에도 콕 집어서 '이거다'라고 하긴 어렵지만 프랑스의 바로크 음악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부분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이러한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이, 아직은 온전히 자기만의 것으로 재해석하지는 못한 어린 작곡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이러한 토대가 음악사적으로 헨델을 높이 평가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하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2시간 넘는 어마어마한 길이의 곡을 지루하지 않게 들을 수 있게 만드는 요소가 된 것 같다.

 

또한, 역시 왜 성악곡에서는 가사를 알아야하는지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곡의 가사에 따라서 감지되는 화성적 변화나 조성, 혹은 음악적 표현들을 쉽게 포착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깨달음을 얻은 부분은 오라토리오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E장조로 마무리가 된다고 한다. 의외로 마주할 일이 잘 없는 조성이긴 한데, 경건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곡이 끝나는 것을 듣고 조성이 음악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공연은, 르네 야콥스란 바로크 음악 스페셜리스트의 지휘란 점에 기대치를 너무 높인 탓일까? 그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 약간은 아쉬운 연주이긴 했다. 그러나 평소에는 들을 기회가 없었던 헨델의 성악곡을 듣고, 또 그 안에서 다양한 재미를 찾을 수 있었단 점에서는, 개인적으로는 기억에 남을 공연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1. 표면적인 이야기나 묘사 뒤에 어떤 정신적·도덕적 의미가 암시되어 있는 비유. [본문으로]
  2. Rinaldo의 'Lascia ch'io pianga'(울게 하소서)와 거의 같은 멜로디인데, 작곡시기로는 오라토리오의 것이 먼저이다. [본문으로]
  3. 그대는 납골 단지 그들은 슬픔의 망령, 그리고 무서운 해골 등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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