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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1~07.09]좌충우돌 나홀로 홋카이도 여행(2일차)-쿠시로 습원

MiTomoYo 2023. 7. 1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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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①)인천공항-신치토세 공항: https://electromito.tistory.com/853

1일차(②)쿠시로: https://electromito.tistory.com/854

 

아침 6시 기상. 휴가인데 기상시간은 출근 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 어제 술을 마셔서 그런 것인지 조금 더 몸이 무거운 느낌이다. 어젯밤에 버스 시간을 확인하긴 했지만, 혹시 모를 변수를 대비해서 일찍 체크아웃을 하는 것이 낫겠단 생각이 들어 부지런히 준비를 했다.

 

짐을 싸고 캐리어를 챙긴 뒤 호텔 조식을 먹는다. 하드코어한 일정을 위해서는 먹을 수밖에 없다. 7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을 떠난다.

 

 

쿠시로역으로 가기 전, 어제 렌즈 후드가 박살 난 쿠시로 조형물 거리를 쭉 돌아봤다.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거리에 사람들이 많진 않다. 삼각대만 아니었어도... 란 생각이 잠깐 들었다. 후드가 없는 SEL24105G렌즈는 어색하다. 쿠시로 역까지 슬슬 걸어간다. 캐리어가 있어서 그런가 조금 힘에 부치는 느낌도 든다.

 

쓰나미 경고 문구를 보니, 여기가 해안 도시란 것이 새삼 느껴졌다. 이전 홋카이도 여행 때, 하코다테에서도 비슷한 경고를 본 적이 있었다.

 

쿠시로 역 앞 도착. 먼저 버스 터미널로 가서 발권을 시도한다. 안내소에 계신 할아버지에게 어제 찾았던 버스가 맞는지 확인을 하고, 발권을 어떻게 하는지 물어봤다. 다행히 어제 찾은 정보는 틀리지 않았다. 친절하게 티켓 머신에 가서 알려주시는데 한쪽 다리가 불편하신지 다리를 절면서 걸어가셨다. 괜히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왕복 티켓 발권 완료.

 

이제 아까 들고 온 캐리어를 역사 내 락커에 보관하기로 했다. 캐리어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로커는 600엔. 동전이 없다. 자판기에 가서 강제로 동전을 만들고자 했다. 커피를 하나 뽑았다. 망할. 500엔짜리가 하나 들어가 있었다. 코인 로커는 입맛이 까다로워서 100엔 아니면 받질 않는단다. 왠지는 모르지만 홋카이도에서 인기 있는 과라나 음료수도 하나 뽑아서 100엔짜리 6개를 만들었다. 과라나 맛이 궁금하다면 편의점에 가서 핫식스 하나 사서 마셔보면 된다.

600엔을 넣고 열쇠를 뽑았다. 아? 캐리어가 내 옆에 있다. 정신을 못 차린 대가로 날린 600엔+음료수 값. 동전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역사 내에 편의점이 있었다. 초콜릿바 하나를 사고 동전을 만든 뒤에, 이번에는 제대로 캐리어를 넣고 잠갔다.

 

버스가 오기까진 시간이 남아있어 잠시 쿠시로 역 근처를 돌아다닌다. 쿠시로 역은 벽돌 외관의 다소 오래된 느낌의 건물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하얀 교회가 하나 있다. 역시 조용한 동네다.

 

시간에 맞춰 15번 승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버스가 도착했다. 자리에 앉고 잠깐 있으니 버스가 출발했다. 어제는 보지 못했던 방향의 쿠시로. 고층 건물이 없는 조용한 마을, 넓지 않은 강과 그곳에서 놀고 있는 새들, 드넓은 초원, 그리고 산 길에 들어섰다. 습원 전망대에 도착할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혹시 내릴 곳을 지나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역시 낯선 장소에서는 모든 것이 긴장의 연속이다. 다행히 습원 전망대 정류장은 전망대 바로 옆에 있어서 눈치껏 내릴 수 있었다.

 

전망대 바로 옆에서 야생 사슴이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도망가지 않는 것을 보면 사람이 그다지 무섭지 않은가 보다.

먼저 전망대를 올라갈지, 습원들 둘러볼지를 잠시 고민하다가 습원을 먼저 돌아보기로 했다.

 

울창한 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내리막길. 중간에 등장한 흔들 다리는 왠지 모르게 더 무섭게 느껴진다. 그리고 세 갈래 길과 지도. 내가 왔던 길, 전망대로 돌아가는 길, 그리고 거리는 멀지만 온네나이 나무 산책로로 가는 길. 처음에 전망대를 올라갈걸... 이란 후회가 들었다. 일단 온네나이 나무 산책로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까와는 다르게 정리되지 않은 길이 나온다. 중년의 남성 한 분께서 '할아버지는 여기까지네~'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다 내게 말을 거셨다. 대략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ㅇ 아저씨: '사진 찍으러 왔나 보네?'

ㅇ 나: '네! 취미긴 한데 찍는 게 재미있어서 이번에 여기를 오게 되었습니다.'

ㅇ 아저씨: ------

ㅇ 나: '죄송해요.. 제가 외국인이라 일본어를 잘 못해서요...'

ㅇ 아저씨: '그렇군? 어디서 왔니?'

ㅇ 나: '한국에서 왔습니다.'

ㅇ 아저씨: '오 그래? 한국에서는..... ------'

ㅇ 나: '우으으.. 죄송합니다...'

ㅇ 아저씨: '흠 뭐. 여행 잘하고 안녕~(사요나라.)'

현지 사람이 말을 걸어주었는데 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을 느끼며 계속 걸어갔다.

 

나무로 조성된 길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니 갑자기 탁 트인 벌판이 맞이한다.

 

날씨가 맑았어도 좋았겠지만, 구름이 낮게 깔린 찌뿌둥한 풍경도 꽤나 멋있어 보였다. 아까만 하더라도 산책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대신 새들의 지저귐과 벌레들이 광활한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온네나이 나무 산책로까지는 대략 4km. 정리되지 않은 길이라 그런지 조금은 멀게도 느껴진다. 그래도 아주 불가능한 거리는 아니니 계속 가보기로 한다.

 

조금씩 초원의 풍경이 지루해지고 새들의 지저귐도 익숙해질 무렵.

쓰러진 나무들을 조심스럽게 통과해야 하는 길이 나오기도 한다. 하이라이트는 사진으로는 남기지 못했지만 '습원'이란 이름에 걸맞은 진창길 코스. 임시로 둔 것 같은 나무판자들이 발을 디딘 순간 푹푹 진흙으로 꺼져버린다. 의외의 복병. 온네나이 나무 산책로는 아직 멀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나무 길이 등장했다. 여기가 온네나이 나무 산책로. 다시 사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딸랑 방울을 허리 춤에 차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이 물건의 정체는 곰을 쫓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방울을 소지하지 않은 나는 그만 10m 정도 되는 거리에서 곰을 목격했다! '우어어어어어!!!' 하는 울음 소리와 함께 풀숲으로 숨어버려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생애 처음으로 본 갈색 곰의 포스는 무서웠다.

어떤 이유에선지 잘려진 나무들이 다소 이질적인 느낌마저 가져다 준다.

 

 

끝없이 이어진 나무데크 길. 날씨가 조금씩 맑아지기 시작했다. 햇살이 약간은 따갑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두 사람이 무언가를 열심히 찍고 있길래 무엇인지 궁금해서 지켜보았다. 그 분들께 흰색 꽃의 이름을 알려주셨는데, 그만 까먹고 말았다. 무척 예쁜 꽃이지만 독을 가지고 있어서 굉장히 위험하단 정보도 알려주셨다.

 

 조금 더 길을 가니 온네나이 비지터 센터가 등장했다. 여기가 내가 설정해둔 목적지. 건물 앞에 있는 온네나이 나무산책로 지도와 곰주의 안내문. 안내문이 붙어 있는 것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잠깐 휴식을 취할 겸 비지터 센터 건물로 들어간다.

 

쿠시로 습원의 생태계를 알려주는 다양한 판넬들과,

이 지역 학생들이 그린 것 같은 다양한 두루미 그림들이 걸려있는데 재미있는 그림들이 많이 있었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다시 습원 전망대로 걸어가기로 한다. 버스 시간을 생각하면 대략 4시간 정도가 남아 있는 상황이기에 시간적 여유는 있었다.

아까 갔던 길을 따라 그대로 돌아간다. 대신 나무 산책로를 지나서 이어진 일직선 길 중간에 눈여겨본 우회로 쪽으로 방향을 바꿔서 돌아갈 계획이었다.

산책로 중간에 만난 족제비 친구. 안녕?

풍경 사진들은 많이 찍었으니 조금은 시야를 좁혀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가져보았는데, 이렇게 멋진 사진 두 장을 건질 수 있었다.

 

우회로에 도착해서 길을 걸어갔는데, 이 곳은 등산로였고, 꽤나 오랜 거리를 걸어온 나로써는 다소 버거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미아가 되기 싫으면 계속 걸어갈 수 밖에. 세 갈래 길이 나왔다. 한 쪽은 위성 전망대라 이름 붙여진 곳. 다른 한 쪽은 습원 전망대로 돌아가는 길. 위성 전망대까지는 고작 300미터고 아직 시간은 충분하여서 잠깐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펼쳐진 모습은...

광활하게 펼쳐진 쿠시로 습원의 모습이었다. 살면서 이렇게 탁 트인 풍경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고, 대자연의 모습에 압도되었다. 12mm렌즈로도 이 곳의 풍경을 온전히 담지 못해서 핸드폰의 파노라마 기능을 이용하여 담아본 것이다. 사진을 찍는 대신 이 곳을 오랜 시간 동안 바라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몇 시간 동안 열심히 걸어다녔지만, 내가 본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함을 알게되면서 인간은 참으로 작은 존재란 점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외국인 한 명이 내게 다가와 저 쪽으로 조금만 가면 새끼 너구리들이 있는데 엄청 귀여우니 빨리 가보란 정보를 알려주었다. 궁금하니 한 번 가보기로 했다.

 

6마리의 새끼 너구리들이 자거나 서로 장난을 치거나 하면서 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너나 할 것 없이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는데 정신이 없었다.

 

어디선가 어미 너구리도 나타나서 새끼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평소에 영상을 잘 찍지 않는 나도 이 모습을 얼른 담아봤다.

 

다시 위성 전망대로. 아프리카의 대초원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이런 모습을 또 볼 수 있을까?란 생각에 한참 동안 이 곳을 떠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풍경을 한껏 마음 속에 담아갔다.

 

어느 정도 시간이 되어서 습원 전망대로 돌아가기로 했다. 워낙 오랜 거리를 걸어서 그런 것일까 800m만 가면 된다는 전망대가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버스는 대략 40분 뒤에 온단 것을 보고 잠깐 전망대에 올라갔다. 2층의 전시관과 4층의 전망대에 올라가는데는 470엔이 필요하다. 돈을 내고 입장했다.

 

2층의 전시관에서는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이 곳에서 발견된 다양한 유물들과 생물들을 전시한 곳으로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거나 새의 지저귐을 들을 수 있었다. 3층은 별 것 없어서 4층의 야외 전망대로 올라갔다.

 

아까 방문했던 위성 전망대에 비해서는 초원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언덕 위 세 갈래 길에서 나는 최고의 선택을 한 것임을 새삼 느꼈다. 대신 여기서는 저 멀리 보이는 쿠시로 시가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저 멀리 보이는 쿠시로도 한 때는 습지의 일부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전망대 입장권에 기념 도장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쾅! 찍어봤다. 꾹 눌렀는데 잘 찍은 것 같지는 않다.

 

전망대 건물의 일부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습지에 들어선 곳의 이정표. 돌아오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고 따가운 햇살, 곤충들(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등 으로 꽤나 고생을 했지만 정말 멋진 경험을 한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1층 기념품 샵에서 뭔가 살 것이 있나 봤고, 그 중 귀여운 인형이 눈에 띄어서 이렇게 구입을 했다. 그 때는 여기에서만 구입할 수 있을 줄 알고 샀었는데, 많은 곳에서 팔고 있었다. 너구리 인형이 있으면 그걸 골랐을텐데 없었다. 아쉽.

 

버스가 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20분. 밖에서 잠깐 쉬고 있는데 전망대 밖으로 아이스크림을 들고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지금껏 호텔 조식 이후에 먹은 것이 없었다. 기념품샵에 들어가서 소프트를 하나 주문했다. 종류가 두 가지인가 보다. 근데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심지어 이번에는 영어로 'Crane'이란 단어까지 쓰셨는데 그것도 알아듣지 못했다. 당혹감과 자괴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영어도 못하는구나...

이치고(딸기라는 뜻의 일본어)를 캐치하고 '아 그럼 그거 하나 주세요'라고 했다. 해외에서 쉬운 것은 없는 것 같다. 아이스크림을 들고나서야 두루미 형태의 아이스크림이란 것을 알았다.

 

버스가 출발하는 시간 16시 28분. 이것이 쿠시로 시내로 향하는 오늘의 마지막 버스다. 미리 가서 기다렸다가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쿠시로 역에 도착했을 때는 17시 15분. 삿포로로 가는 마지막 열차는 19시에 떠나기에 저녁 정도는 먹을 시간이 있었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스프카레가 떠올라서 그걸 먹기로 했다. 음식점에 도착했을 때는 17시 40분. 치킨 스프카레를 하나 주문하고 기다린다.

 

18시 음식이 나오질 않는다. 18시 10분.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 18시 13분.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 18시 15분. 음식이 나올 기미가 없다. 점원에게 오늘의 마지막 기차가 19시라서 혹시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면 주문 취소를 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점원이 영어를 할 줄 알아서 다행이었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중이라고 했다. 어차피 먹을 시간이 없으니 음식 값은 내겠다고 했다. 장거리 열차면 열차에서 먹을 수도 있으니 테이크 아웃이라도 해주겠다고 했다. 열차 안에서 간단한 음식을 먹는 것은 봤는데 음식 냄새가 나는 스프 카레도 먹을 수 있다고? 안되면 호텔 체크인 후에 먹으면 될 것 같아서 알겠다고 했다.

 

곧 음식이 나왔다. '너무 늦어서 죄송하다.'는 쉐프와 점원의 사과에 '아뇨 이 쪽이야 말로 죄송했습니다.'라고 말하고 가게를 나왔다. 18시 40분. 쿠시로 역 도착. 아까 맡겨뒀던 캐리어를 챙기고 바로 삿포로행 열차에 탑승. 음식은 바로 앞에 있는데, 아무래도 눈치가 보여서 먹을 수가 없었다... 몸은 피곤한데 잠이 오지는 않았다.

숙소가 있는 삿포로 역 도착. 23시가 넘어가 있었다. 내일은 하코다테로 넘어가기에 일찍 일어나야만 한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호텔로 향했다. 23시 20분 호텔 도착. 체크인을 하고 캡슐에 들어가기 전 로비에서 아까 받았던 스프 카레를 먹는다.

 

푸짐한 토핑이 한껏 들어간 식어버린 스프카레. 너무 배가 고팠던 탓에 허겁지겁 먹는다. 맛있다. 따뜻할 때 먹었으면 훨씬 좋았을텐데...란 아쉬움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내일 하코다테로 출발할 열차의 시간을 확인한다. 8시 42분 출발 열차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선의 선택지로 보였다. 대충 정리를 하고 잠에 들었다.

 

<2일차 이동 기록>

ㅇ 열차-JR 홋카이도(쿠시로-삿포로) (19:00~23:01): 348.5km(누적: 655.6km)
ㅇ 버스-아칸버스 츠루이선(쿠시로역-습원전망대 / 습원전망대-쿠시로)-(08:57~09:50 / 16:28~05:15): 30km
ㅇ 도보-(34,595걸음): 26.38km(누적: 45.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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