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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1~07.09]좌충우돌 나홀로 홋카이도 여행(1일차②)-쿠시로

MiTomoYo 2023. 7. 11.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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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上)인천공항-신치토세 공항: https://electromito.tistory.com/853
 
미나미치토세 역에서 내려서 쿠시로로 향하는 오오조라(푸른 하늘이란 뜻)호 열차를 기다린다. 열차 이름과는 다르게 이곳의 날씨는 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여행을 오기 전 일기예보를 살펴보니 맑은 날은 없고 죄다 흐리거나 비가 온다고 한다. 역시 불운의 아이콘인가.

열차가 왔다. JR패스를 받을 때 지정석을 신청했다. 창가가 아니라 복도 쪽 좌석이다. 창가 쪽 좌석을 좋아하는지라 괜히 지정석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부터는 자유석을 이용해야지.
 

가는 중간에 옆 사람이 내렸고,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우진 않았다. 덕분에 열차 안에서 창 밖의 사진을 몇 장 남길 수 있었다. 비가 왔다가 맑아졌다가, 또 구름이 잔뜩 낀 날씨를 창 밖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 변화무쌍한 날씨를 바라보는 재미는 있었지만, 목적지인 쿠시로의 날씨만큼은 꾸준히 비가 내리고 있다고 날씨 어플이 알려주고 있었다.
 
장거리 이동을 할 때는 음악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편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이어폰을 최대한 멀리하기로 했다. 하물며 한국에서도 정신 못 차리고 지하철 거꾸로 타거나 내릴 곳을 놓치곤 하는데, 여기서는 그러면 안 되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실수가 몇 시간, 혹은 아예 막차를 보내버려 노숙을 해야하는 대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쿠시로 도착. 시간은 대충 4시 정도. 열차로는 대략 307km를 이동하였다. 찾아보니 서울에서 울산까지의 거리가 대충 저 정도란다. 진짜 멀리 오긴 했네. 역에서 내렸다.

한국 기상청 예보가 안 맞는다고 해서 반짝 이름을 알린 YR어플. 이 녀석도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다. 오후 세 시라고 하기엔 다소 어둡게 느껴지지만, 확실한 것은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약간은 에메랄드 색이 섞인듯한 푸른 하늘이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여주었다. 캐리어가 무겁다. 일단 호텔까지 이동. 구글지도를 보면 몇 블록 떨어져 있지 않은 것 같은데 생각보다 거리가 멀다.
 

쿠시로의 상징은 학인가 보다. 일본은 맨홀 뚜껑도 재미있게 만드는 나라다.
 
호텔 체크인.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일본어로 대화를 시도했다가 곧바로 꼬리를 내리고 '일본어 잘 못하는데 웅얼웅얼'이하니 영어로 설명을 해주신다. 일본어 공부 하겠다고 마음먹은 지 13년 차. 이 쯤되면 진짜 할 때도 되지 않았냐?
 
여하간 호텔에서 짐을 풀고 잠깐 쉬면서 핸드폰 충전을 했다. Z플립 3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만, 배터리 용량이 적은 것이 흠이다. 요새는 외장 배터리를 필수적으로 챙겨서 다니고 있다. 호텔에서 바라보는 하늘의 모습이 꽤 멋있었다.
 

여행을 왔으면 그곳의 분위기를 한껏 체험해야 한다. 호텔에서 느긋하게 쉴 바엔 그냥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이 낫지 않나 싶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지만.
나가기 전에 어딘가 목적지를 정해둘 필요는 있기에, 구글 맵스를 켜고 여기저기 찾아봤다. 누사마이 다리가 이곳의 명소인 것 같았고 요네마치 공원도 나름 유명 포인트인 것처럼 보였다. 대략 2km. 느긋하게 걸어도 그다지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의 거리. 핸드폰도 충전이 되었겠다 삼각대를 비롯해서 모든 카메라 장비를 챙겨 들고 걸어갔다.
 

누사마이 다리에서 본 풍경. 딱 봐도 야경 포인트. 이따 돌아와서 도전해 보기로 하고 일단 다리를 건넜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 다리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하는 4개의 동상이 있고(조각상이 있던 것은 보긴 했다.), 그것을 이용해 석양을 찍는 것이 나름 사진 포인트인 것 같았다.
 

 

누사마이 다리를 건너서 보이는 거리의 모습들은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 일본에 왔음을 다시금 느끼는 순간. 괜히 텐션도 높아지기 시작한다.
 

주말 오후라 그런가 거리는 한산하지만 평온한 느낌이다. 마침 오후 늦은 시간이라 도시의 색감도 따뜻하게 변하고 있었다. 꽤 잘 어울리는 분위기.
 
 

목적지인 요네마치 공원에 도착. 작은 전망대가 있어서 올라가 봤다. 탁 트인 바다, 저 멀리 보이는 산. 좋은 날씨다. 전망대 옆에 보이는 지도. 저 산의 이름은 아칸 산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지금 찾아보니 여러 아칸 산중에서 '메아칸산'은 활화산이고 마지막 분화는 2008년이었다고 한다.
 

역시 바다에는 갈매기를 빼놓을 수 없지 끼룩!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숙소에 그냥 돌아가긴 왠지 이른 시간이라, 좀 더 근처를 유유자적 돌아다니기로 했다.
 

자꾸만 셔터를 누르게 되는 마을의 풍경. 구글지도를 보니 조금만 더 걸어가면 항구 반대편 바다를 마주할 수 있다고 해서 가보기로 했다.
 

와.. 느낌 좀 있는 사진. 해안가까지 가볼까 했는데 사유지란 팻말이 붙어있었다. 출입금지. 외국에서는 다소 몸을 사릴 필요가 있다.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없어서 항구 쪽을 거쳐서 돌아가기로 했다. 겸사겸사 저녁도 먹고.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하고 있다. 마을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때가 한껏 감성 넘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다.
 

고양이는 그렇다 치고, 여우라니 세상에... 심지어는 사진에 담긴 저 녀석이 길에서 두 번째로 마주친 녀석이었다. 어느새 항구에 도착. 일몰 시간이다.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다.
 

건물 외벽에 비친 내 그림자를 한 번 찍어보고 싶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의 비애는 자기 자신을 찍을 수 없다는 것. 셀카도 가능하지 않냐고? 사진을 찍고 악보를 보려면 눈을 소중히 다뤄야 한다. 셀프 시각적 테러를 자행할 수는 없지.

 
아까 지나쳤던 누사마이 다리에서는 서서히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순간을 사진으로 담았다. 예상대로 예쁜 사진이 나왔다. 아직 보정을 안 한 사진인데, 작업 결과물이 어떨지 무척 궁금하다.
 

밤이 되니 일자 형태로 이어진 길에, 어둠을 밝히는 주황빛 가로등이 쿠시로를 한 층 멋진 곳으로 만들어주었다. 실제로 보면 굉장히 예쁜데, 사진으로도 글로도 그 장면을 표현하기에는 나의 사진 실력과 필력이 영 좋지 못하다.
 
저녁으로 뭘 먹을까 찾아보니 이 근처에 츠부야키와 라멘으로 유명한 가게가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다. 개방형 주방에서 할아버지 한 분은 열심히 츠부야키를 만들고 계셨고, 다른 한쪽에서는 할머니 한 분이 주문을 받고 면을 삶고 계셨다.
 
뻘쭘하게 들어가 자리를 안내받았다. 츠부야키 한 판, 쇼유라멘, 그리고 생맥주를 주문했다. 평소에는 술을 잘 마시지 않지만 여행을 왔으니 맥주 정도는 마셔도 좋을 것 같았다.
 

먼저 나온 츠부야키. 뜨거우니 휴지로 껍데기를 집어서 먹으면 된다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일단 조심스럽게 하나 먹어봤다. 간장을 베이스로 한 짭조름한 양념에 쫄깃한 식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라멘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하셨다. 이런, 원래 계획은 라멘과 맥주를 곁들이고, 츠부야키와 청주를 곁들여 먹을 생각이었다. 츠부야키가 너무 맛있어서 다 먹고 한 판을 더 시키는 것도 방법이었지만, 그러기엔 내 위장이 많이 작은 편이다. 일단 2개를 남겨두었다.
 
한창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 서양인 한 명이 내 옆에 앉아서 라멘을 주문한다. 아직 내 앞에 놓인 츠부야키가 궁금한지, 'Is it chewy?'라고 물어봤다. 그렇다고 답을 하니 먹는 것을 주저하는 눈치였다. 자기가 다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하나를 일단 테스트 삼아 달라고 주문을 추가했다.
일본 가게에서 외국인 둘이 대화를 나눈다. 영국인이고 5주가량 휴가를 받아서 일본에 놀러 왔다고 했다. 나는 5년을 일해서 두 번의 주말을 포함해서 9일짜리 여행을 왔는데, 그저 부럽단 생각이 들 뿐.
 
일본은 꽤 자주 오는 편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왔다고 얘기를 하니 자기는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한국 음식이 맵지 않냐며 왠지 자기 입맛에 맞을 것 같단 얘기도 했다. 내일은 하코다테를 갔다가 도쿄로 넘어갈 계획이라고 했다. 나는 내일 쿠시로 습지를 갈 예정이라고 하니 열차를 어떻게 타야 하는지에 대한 팁을 알려주었다. 그새 음식이 나왔다. 대화가 끊어졌다. 

 
아까 주문하지 못했던 청주를 하나 주문했다. 데워서 줄지 그냥 줄지를 물어봤다. 청주를 마셔본 적이 없는지라 어떤 것이 괜찮냐고 되물어보았다. 차가운 청주를 주셨다.
평소에 우리가 먹는 돈코츠 쇼유 라멘이 아니다. 아까 츠부야키의 양념과 비슷한 느낌이 나는 국물이 인상적이었다. 미각이 둔한 편이기에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해산물 베이스의 라멘인 듯하다. 이것도 맛있었다. 아까 남겨둔 츠부야키 2개를 안주삼아 청주를 연거푸 들이킨다. 여행에서 먹부림을 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 약간 알딸딸해졌는지 막잔을 넘치게 부어버렸다.
 
옆자리의 영국인은 그새 다 먹고 나보고 여행 잘하라는 말을 남기며 가게를 나섰다. 쏘쿨
 
배부르게 먹고 계산을 마친 뒤 쿠시로의 밤을 찍으러 다시 다리로 향했다. 다리 위에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뭔가 미묘하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일단 지웠다.
 

가져온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것이 온전한 SEL24105G 렌즈의 마지막 사진.
 
위치를 조금 이동해서, KUSHIRO 조형이 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고자 삼각대를 세웠는데 균형이 안 맞았는지 앞쪽으로 삼각대가 넘어졌다. 땅으로 처박힌 렌즈. 머릿속이 하얘졌다. 넘어진 꼴을 보니 이건 렌즈가 개박살이 났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첫날인데, 후라노와 비에이의 풍경은 뭘로 남기지? 란 생각이 들며 넋이 나갔다.
다행히도 박살 난 것은 후드였... 는데 렌즈 구석 한쪽이 찍혔다.
 

혹시 자동 초점을 못 잡는 것은 아닌지, 사진에 저 흠집이 티가 나는 것은 아닌지 테스트를 해봤다. 일단 쓸 수는 있을 것 같았지만,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이번 여행의 '좌충우돌'의 서막이 올랐다. 한 편으로는 저 렌즈가 장착되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SEL1224GM이나 SEL100400GM같이 후드가 작거나 무거운 렌즈를 장착했으면 아마 처참하게 부서졌을 것이고, 나 역시 여행 계획을 다 파괴하고 바로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을지도.
 
그 와중에 일본인 부부가 내게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을 하셨다. 아직 채 진정되지 않은 마음을 가다듬고 알겠다고 하고 폰을 건네 받았다. 조형이 너무 밝아서 두 분이 잘 나올 수 없는 환경이라 아쉬운 사진이 찍혔다. 사진이 잘 안 나온 것 같아서 죄송하다고 했다.
나보고 일본인이냐고 물어보시기에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아저씨께서 '오오~ 안녕하세요~'라고 하시면서 '수락산! 서울! 수원! 명동! (더 있었는데 기억이 안남) 가봤어요!'라고 일본어 발음 섞인 한국어로 말씀을 하셨다. 혼란스러운 마음이 조금은 진정이 되는 느낌. 즐거운 여행 되시라는 덕담을 주고받고 무거운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일단 씻고 카메라 상태를 다시 확인하고 있는데 인스타그램 DM이 하나 왔다.
 

몇 년 전에 맞팔을 하면서 알게된, 삿포로에서 살고 있는 인스타 친구가 내 스토리를 보고 홋카이도에 왔냐며 반가운 마음에 DM을 보낸 것이었다. 홋카이도로 행선지가 결정되고 난 뒤에 이걸 말할까 말까 고민을 하긴 했었다. 인터넷상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고 해도, 막상 이를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아닐까? 란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기 때문이다.
9일간의 스케쥴을 보냈더니 하드 스케줄이라며 놀라는 반응이 재미있었다. 날씨가 걱정이 되지만 좋은 날씨가 계속되길 기원한다는 응원의 메시지도 받았다.
 
침대에 누워서 내일 계획을 살펴본다. 쿠시로 습원을 둘러볼 수 있는 가짓수는 크게 2개인데, 동쪽 방면에서 열차를 기반으로 돌아보는 것과 서쪽 방면에서 도보로 전망대와 나무데크 길을 따라서 둘러볼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방법은 후자였는데, 접근성이 좋지 않았다. 일단 국내 블로그나 커뮤니티에는 전부 동쪽 루트만이 소개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걸어서 서쪽 방면을 가기엔 16km란 거리의 압박이 너무 컸다. 택시란 방법도 있지만 일본의 택시는 비싸다고 알고 있어 이것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선택지였다.
 
아쉬운 마음에 계속 찾아보던 중, 딱 한 페이지에서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이 의지의 한국인.(링크: https://thegate12.com/kr/spot/897) 아직 일본 버스는 생소하여 잘 탈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방법을 찾은 이상 도전할 수밖에. 버스 시간표도 다행히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정보를 찾는 와중에 새벽 한 시. 내일 아침 8시 55분 버스를 타기 위해 일찍 일어나기로 계획하고 불을 껐다.
 

<1일차 이동 기록>

구글 맵스 타임라인에 뭔가 문제가 있었는지 이 날 기록만 이상하게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캡쳐를 해서 다행

ㅇ 비행기-제주항공 7C1904편 (07:42~9:40): 1,473km
ㅇ 열차-JR 홋카이도(신치토세-미나미치토세 환승-쿠시로) (12:18~15:51): 307.1km
ㅇ 도보-(25,275걸음): 19.3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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