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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大貫惠美子저 / 이향철 역 / 모멘토)

MiTomoYo 2014. 1. 15.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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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학기에 들었던 교양과목 중 '신화와 영화'라는 과목이 있었다. 나는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 편이고 이 과목도 졸업을 위해서 들어야만 하는 과목 중 하나인 탓에 들은 감이 크다. 영화 속에 녹아있는 신화들을 찾고 우리나라의 신화까지 포함한 세계 각지의 신화를 알아보는 과목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매스미디어들이 어떠한 방식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이데올로기를 어떠한 방식으로 심어주는지 보여주는지에 대해서도 얕은 수준이긴 하지만 배워볼 수 있었다.



<흑인 병사가 프랑스 국기를 향해 경례하는 이 사진은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무시무시한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오늘 쓸 글은 일본 신화를 다룬 수업시간 끝 부분에 강사가 추천해 준 책이고 혹시라도 일본 문화,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군국주의 일본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을 한다.


<총 600페이지가 넘지만, 인용 목록이 길어서 실제 내용은 약 500페이지가 약간 넘는 수준의 책이다.>


우선 이 책은 사쿠라꽃[각주:1]이 과거에 어떠한 방식으로 일본인에게 다가왔는지에 대해서 서술을 한다. 고대 일본에서 사쿠라는 쌀과 함께 생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이 되었다는 부분이 주요 내용이다. 그리고 고대 일본 시가, 꽃놀이, 카부키등을 통해서 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당시에 사쿠라꽃은 죽음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사쿠라꽃이 내포하는 상징적인 의미들이 상당히 복잡했고, 헤이안 시대[각주:2]에 오면서 고대를 벗어나고 귀족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사쿠라꽃은 죽음의 상징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일본 시가를 보면 상당수가 지는 사쿠라꽃에 대해 노래를 하고 있으며 이것들을 통해서 사쿠라꽃이 죽음의 의미도 내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메이지 유신을 거쳐서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쿠라꽃이 죽음을 전면에 내세우는 시초가 되었으며 이러한 과정은 대단히 서서히 일어났다고 주장을 한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9세기 전까지는 사쿠라꽃은 민간계층에서 더 인정을 받는 꽃이었고, 귀족계층은 중국을 상징하는 매화를 더 중요시 여겼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를 중국문화의 심취에서 이탈해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일정부분 나타내기 시작한 부분이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 계속해서 사쿠라꽃은 다양한 격변을 거치면서도 일본을 상징하는 꽃으로써 살아남았고, 사쿠라꽃은 일본을 하나로 묶는 좋은 매개체로써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일본의 상징 사쿠라꽃, 이 꽃이 일본에서 상징하는 바는 정말 많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소위 '반자이 돌격'을 하면서 일본군은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면서 적진을 향해 돌격을 했다고 한다. '국가를 위한 희생'을 강요하면서 이를 국민들을 설득시키는 방법으로 사쿠라꽃을 이용했다. 1889년에 일본은 대일본제국헌법을 공표를 했다. 당시 일본 헌법은 외국인인 고문들의 조언을 받아서 작성이 되었는데, 당시 일본의 정치가들이 고문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작성한 부분이 있다. 바로 1조가 그것인데 조항은 다음과 같다.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한다.' 그리고 정치가들은 다양한 정책을 통해서 이 조항이 일본인들의 생활속에 잘 스며들 수 있도록 했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천황의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고어를 사용하고 옛날 작품들을 적당히 활용해서 천황을 신성시시키고, 과거부터 일본인들은 국가와 천황을 위해 한 마음으로 헌신하고 있었다는 이미지를 만들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교육이나 대중문화(특히 가요)를 통해서 이러한 이미지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사쿠라 나무가 특히 많이 심어져있는데 이는 지는 사쿠라꽃을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병사들을 말하는 것이며 피는 사쿠라꽃은 이들이 환생하는 것이라는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야스쿠니 신사 앞에 만개한 사쿠라꽃, 야스쿠니 신사는 현재 한중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가장 큰 장소란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부분은 카미카제 특공대원들이 이야기들과 그들이 남긴 수기들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특공대원들 중 많은 수가 도쿄제국대학 등[각주:3] 상당한 학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고, 독일어나 프랑스어로 된 책을 쓰거나 글을 쓰는 등 소위 '엘리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슬프게도 이들이 특공대원에 차출되는 것을 거부할 방법은 거의 없었다. 이는 특공대원들이 남긴 수기들을 통해서 충분히 볼 수 있다. 학생들을 모아두고 눈을 감게시킨뒤 자원자를 받았는데 일부러 손을 드는 군복소리를 크게 냄으로써 자신도 자원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심리적 압박감을 주는 방법을 이용하거나 징집 영장을 받고 이를 거부할 경우 헌병에 의해 거부자를 살해하는 방법을 이용했다고 한다. 차출된 특공대원들의 대부분이 현재 나와 비슷한 나이대인지는 몰라도 그들이 남긴 수기들을 읽다보면 공감이 가는 부분이 참 많다. 입대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이들에게서도 나타나는 것 같았다. 일본은 이러한 특공대원들의 모습을 최대한 미화시키기 위해서 갖은 방법을 썼는데, 예를 들면 출격 직전 웃는 얼굴로 배웅하거나 경례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편지를 검열하면서 훈련 중에 일어나는 잔혹행위나 실상을 은폐하려고 애를 썼다. 유족들이 남긴 기록들을 읽어보면 참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의 수기에도 사쿠라꽃은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사쿠라꽃이 다양한 의미를 갖는 복잡한 상징이었던 만큼 개개인에 따라서 다른 의미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출격하는-그리고 죽으러 가는- 비행기을 사쿠라꽃을 들고 배웅하는 사진, 비행기 속 대원은 야스쿠니 신사에서 잠깐 피었다 지는 사쿠라꽃이 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특히 5명의 특공대원의 수기를 분석하면서 이들이 어떠한 이유로 특공대원에 지원을 했으며 이들에게 있어서 사쿠라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들이 결국 목숨을 잃은 요인을 이상주의와 애국심 두가지라고 이야기 하고 있으며 아무리 이들이 사상적으로는 제국주의에 반대를 했었을지는 몰라도 정부의 교묘한 프로파간다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목숨을 버리는 행위가 애국심이라는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단히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비록 사쿠라꽃을 천황을 위한 희생을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전사한 특공대원이나 자기자신을 '지는 사쿠라꽃'으로 표현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당시 일본인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며, 국가 전체가 비정상적으로 돌아갈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란 생각이 든다.


잠깐동안이지만 국사를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내가 사는 인생은 생각보다 대단히 짧다는 것이다. 어떤 이데올로기가 긴 시간동안에 서서히 바뀌어 갈 경우 본인도 자각하지 못하는 새 그 이데올로기가 자연스럽게 배이고, 이것이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 어떠한 모습이 나타날 수 있는지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군국주의나 군사정부에 저항하는 것은 가능했을지는 모르나 이상주의나 낭만주의에 대항할 방법은 없었다"라고 한 한 특공대원의 말에서 이를 느낄 수 있었다. 얼마전에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하면서 한중일간에 외교갈등이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다. '지는 사쿠라꽃'의 상징이 아직까지도 살아있다는 것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1. 이 책에서는 벚꽃을 전부 사쿠라꽃을 표현했고 나는 역자의 의도를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사쿠라꽃으로 표현했다. [본문으로]
  2. AD.794~AD.1185 [본문으로]
  3. 현 도쿄대학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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