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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평전(엘리자베스 노먼 맥케이 저/이석호 역/풍월당)

MiTomoYo 2022. 11. 1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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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심적으로 힘들었던 작년 내내 자주 들었던 음악이 슈베르트의 4개의 즉흥곡 D.899중 3번째 곡(Gb장조), 현악 5중주 C장조 D.956, 그리고 피아노 소나타 A장조 D.959였다.

주위 사람들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개인적으로 음악을 통해서 어떤 이미지나 감정 같은 것을 잘 떠올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체감하곤 하는데 저 3개의 음악은 달랐다. 즉흥곡으로부터는 멜로디와 흘러가는 아르페지오의 화성적 변화를 통해서 과거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후회, 현악 5중주를 통해서는 불안감과 분노의 감정, 소나타를 통해서는 외로움과 인생에 대한 미련 같은 것들을 느꼈다.

 

슈베르트가 저 곡들을 만들던 시기의 살아온 시간과 내가 살아온 시간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피에르 불레즈는 ‘어떤 곡을 알기 위해서 그 작곡가의 인생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란 말을 했지만, 나는 슈베르트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가 궁금해졌다. 추가적으로, 이전부터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가졌던 약간의 의문도 있었다. 그의 기악곡을 통해서 느낀 슈베르트의 곡들은 초기곡과 후기 곡이 마치 다른 작곡가가 썼다고 해도 속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작풍이 다른데, 어떤 계기로 인한 것인지도 궁금하던 찰나, 풍월당에서 슈베르트 평전을 번역하여 출판한 것을 알고 구입하여 읽게 되었다.

 


그의 곡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가곡인데 먼저 이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가 다수의 가곡을 작곡한 데에는 문학적 관심이 컸던 것과 함께 교사 활동을 병행했던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슈베르트가 입학했던 시립 기숙학교의 성적표를 보면 언어 과목이 꽤 우수하기도 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그의 친구들과 함께 독서 클럽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문학 작품을 접할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또한 교사로서 활동했던 1814년~16년 사이에 많은 수의 가곡이 만들어졌는데, 이전처럼 작곡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짧은 길이의 가곡을 쓰는 것이 그의 음악적 활동에 더 나았을 것이라고 저자는 결론 내리고 있다.


가곡뿐만 아니라 중창곡, 종교곡 등 성악이 들어가는 다수의 작품을 남겼지만, 오페라에서만큼은 그리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사실 슈베르트는 오페라에 대해서도 꽤 의욕적으로 작업을 진행을 했었고, ‘알폰조와 에스트레야’란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계속해서 수정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다만 슈베르트가 받았던 여러 대본들이 당시 빈의 엄격했던 문화적 검열에 걸렸다는 점, 베버를 비롯한 다른 작품들의 흥행에 실패하면서 아직 검증되지 않은 슈베르트의 작품을 올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던 극장의 소극적 태도 등이 걸림돌이 되었다. 그리고 몇 차례 올라간 작품들도 흥행에 실패하자 더 이상 오페라에 큰 미련을 두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널리 알려진 슈베르트의 이미지 중 하나는 대중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작곡가란 것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는 다소 왜곡된 것이란 것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주로 활동했던 빈에서는 꽤 인지도가 있는 작곡가였다. 적어도 1821년까지는 그의 작품이 연주되는 빈도수가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만년에는 빈 악우협회 정단원이 되어 집행위원의 자리까지 올라간 것, 그리고 그의 악보가 시중에 꽤 돌아다녔다는 것이 이를 반증하는 사실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해외에서는 이제 막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신예 작곡가 중 한 명 정도의 인지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독일을 비롯한 해외의 여러 출판사가 슈베르트와의 계약을 위해 연락을 해왔지만, 그의 작품이 현지에서 통할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는 짧고 대중적인 소품을 보내길 원했던 반면, 슈베르트는 자신의 작품들 [각주:1]에 대해서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다보니, 서로의 입장 차로 인해 계약이 성사되는 경우가 적었던 데다, 결정적으로 서서히 상황이 진전되기 시작하던 1828년에 슈베르트가 사망하면서 모든 것이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슈베르트가 남긴 후기의 여러 곡들이 현재는 높은 작품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그가 조금만 더 살았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위대한 작곡가로 평가를 받았을지 모른다고 저자는 추측하고 있다.

반면 슈베르트가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이어나간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일단 슈베르트의 경제적 관념이 다소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위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서 얻어낸 악보 판권을 헐값에 넘기거나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계약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주위 사람들과 두루 친하게 지냈던 성격 덕분에 다방면으로 많은 지원을 받았지만, 이것이 재산을 축적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 같다.
여기에 1822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명성을 쌓아나가던 슈베르트의 입지가 갑작스레 줄어드는데, 이 때를 전후로 슈베르트는 주위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굴거나 무절제한 삶을 이어나가면서 본인의 평판을 스스로 깎아내렸다고 한다. 프란츠 폰 쇼버와 친하게 지내기 시작하면서 그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이며 매독에 감염된 것도 그 결과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쇼버는 슈베르트가 평생 미련을 가졌던 오페라 ‘알폰조와 에스트레야’의 대본을 써거나 그가 음악가로서의 입지를 넓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당대의 유명 성악가 미하엘 포글을 소개해준 사람인지라, 무작정 그를 비난하기도 애매한 측면은 있다.

매독은 슈베르트를 다소 이른 나이에 죽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그의 작풍을 변화시키는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슈베르트는 가벼운 조울증의 일종인 순환기분장애를 앓고 있었는데, 매독이 이를 크게 악화시키면서 슈베르트의 정신을 크게 흩트려놨던 것 같다고 추측하고 있다.

일단 슈베르트가 이전까지 추구했던 고전주의 양식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초창기 곡들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편이 아닌데, 이는 빼어난 작품성을 가지고 있는 후기 곡들의 위상에 다소 가려진 것도 있지만 극적인 요소가 다소 부족한 고전주의 양식에 기반한 곡들이었다는 점도 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의 초기 교향곡(1~5번)이나 초기 현악 사중주(1~11번)를 들어보면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것과도 비슷하단 느낌을 쉽게 받을 수 있다.
슈베르트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고 여기서 주로 활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선배 작곡가인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쌓아 올린 음악적 유산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고, 슈베르트가 베토벤을 존경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고전주의 형식을 완전히 무너뜨린 베토벤의 후기 작품들에 대해서는 다소 박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의 후기 작품들이 음악적 형식을 깨뜨릴 정도의 파격을 보여주진 않지만 곡의 규모를 비롯해서 많은 것이 변화했음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또한 그가 예전에 작곡했던 작품에서 모티프를 따오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책에 등장하지 않은 예시를 하나 언급해볼까 한다. 최근 바두라-스코다의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집 녹음을 듣던 중 무척이나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그의 초기 곡인 피아노 소나타 4번 C단조의 2악장의 멜로디가 피아노 소나타 20번 A장조의 4악장에서 유사하게 인용되었다는 점이다.

 

Piano Sonata No.4 in A minor D.537 - II. Allegretto quasi andantino (Andras Schiff)
Piano Sonata No.20 in A major - IV. Rondo: Allegro(Andras Schiff)

얼마 전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안드라스 쉬프의 리사이틀에서 그는 20번 소나타의 4악장이 ‘Hope of life’를 노래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음악이 전달해주는 피상적인 형태의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근거를 통해서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곡가로서 밝은 미래를 꿈꿨던 시절에 대한 회상을 통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것이 곡의 최후반부에서는 긴 쉼표와 함께 이조 되어 등장하면서 마치 생명이 꺼지기 전에 흐릿해지는 기억, 그리고 1악장의 Credo 모티프를 마지막으로 인용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종교적인 힘을 통해서라도 이겨내 보겠다는 의지를 담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느린 악장에서 평화롭고 서정적인 전반부가 끝나면 매우 대조적인 성격, 이를테면 불협화음과 강렬한 다이나믹, 리듬 등을 통해서 어둡거나 파괴적인 분위기로 곡이 진행이 되었다가 다시 원래의 형태로 돌아오는 경우가 정말 많은데, 이것이 앞서 언급했던 슈베르트의 정신적 문제, 그중에서도 내면의 공격성이 표출이 되는 대표적인 예시라고 한다. 일례로 피아노 소나타 20번의 2악장에서 다소 쓸쓸한 분위기로 시작했던 곡이 갑작스레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강렬하게 변하는 것에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피아노 소나타 얘기가 여러 번 나왔으니 추가적으로 짚어보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 적어볼까 한다. 슈베르트에 대해 떠돌아다니는 다양한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피아노가 없어서 기타를 이용해서 많은 곡을 작곡했다는 것인데 생각보다 이 이야기가 널리 퍼져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것의 진위와는 별개로 [각주:2] 슈베르트가 피아노를 칠 줄 알았다는 내용은 책 곳곳에서 등장한다. 활동 초창기인 1815년에 첫 피아노를 얻으면서-비록 그 피아노는 금방 망가진 것으로 추정되지만-그동안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피아노 독주곡을 여럿 썼다는 것을 시작으로 본인이 쓴 가곡의 반주를 자주 맡았다는 것과 본인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한 기록이 있다는 점 등이 있다.
여러 기록을 통해서 보면 슈베르트는 모차르트나 베토벤처럼 피아노에 통달한 연주자는 아니지만, 피아노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작곡가가 결코 아닐뿐더러 지속적으로 접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을 보면 저 말은 오히려 거짓에 가까울 확률이 크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음악과 관련된 책은 늘 흥미롭게 다가오는 데다 얻어가는 지식도 여럿 있다 보니 신나는 마음에 이것저것 적게 되는 것 같다. 글을 쓰고 다듬으면서 책을 다시 훑어보는데 소개하고 싶은 내용이 자꾸 눈에 들어오나, 이미 저작권 침해가 걱정될 정도로 많은 내용을 써버린 것 같아서 이쯤에서 멈춰야 할 것 같다.

 

남겨진 기록이 그리 많지 않고, 때론 왜곡된 정보들로 인해 잘못 알려진 슈베르트란 인물, 그리고 그의 작품들에 대한 이해를 한 층 높이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된 책이었다. 이런 책을 찾아 번역하고 출판한 풍월당에 깊은 감사를 느낀다. 슈베르트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아보고 싶다면 읽을 가치가 높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1. 특히 피아노 3중주 2번 Eb장조 D.929(op.100) [본문으로]
  2. 한 사람이 이와 관련해서 나름 심도 있게 분석한 글이 있다. http://www.jacaranda-music.com/Schubert.html 대략 슈베르트가 기타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은 거의 확실하나 그가 기타를 이용해서 작곡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는 내용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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