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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셀레스티나(페르난도 데 로하스 저/안영옥 역/을유문화사)

MiTomoYo 2022. 12. 1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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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말의 유치함과 어리석음을 감춰준다. 그러나 우쭐댐은 부족함만 드러낸다. 말이 많음은 무용할 뿐이다. 무릇 땅에서 양식을 구해야 마땅한 개미가 날개를 얻어 하늘 높이 날아오른들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자멸할 뿐이다.'

 

올해 재미있게 봤던 만화 아르테 14권에 등장했던 이 문장이 너무나 인상 깊었고, 이 문구가 등장한다는 '라 셀레스티나'란 작품에 왠지 흥미가 생겨서 구입해 읽어보게 되었다.

15세기 스페인에서 살았던 페르난도 데 로하스란 사람이 썼다는 이 소설은, 당대에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후대 문화에 많은 영감을 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도 한다.

 

연극 대본처럼 막과 장, 각 막에 대한 짤막한 줄거리, 그리고 인물들의 대화가 이어지는 형태의 소설이다 보니 해당 상황들을 머릿속에 이미지화하면서 읽어나가는 재미는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반적인 줄거리가 한동안 유행한 막장 드라마와 비슷하단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역자의 해설에도 적혀있는 것처럼 종교에서 인간 중심으로 문화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기 시작하던 시점에 나온 것을 감안한다면(그리고 스페인은 당시 가톨릭의 강한 영향권으로 인해 대단히 보수적인 문화를 기지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단 점이 쉽게 이해가 될 것 같다.

 

다만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모두 배제한 채 순수하게 작품 그 자체에만 집중을 해본다면 부족한 점도 여럿 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개연성이, 이러한 요소에 매우 둔감한 나조차 '갑자기?'란 생각이 드는 부분이 여럿 있었다. 특히 결말에 다다르면 얼른 작품을 마무리 짓고 싶어 하는 것처럼 급하고, 뜬금없이 진행이 되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역자는 이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견해를 멋지게 적어두었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리 공감이 가지 않았다.

작품 내에 원색적인 비속어가 많이 나오는 것도 감안하면 좋을 것 같다. 다만 읽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혹시 이것이 등장인물의 신분이나 성격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이 책을 다시 접한다면 이러한 요소도 생각하며 읽어야 할 것 같다.

 

인상적인 서문이 너무 강렬하게 다가왔기 때문일까? 다소 아쉬움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그래도 인간의 본능적 감성인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이어서 그런지 500년 전 유럽이라는 시간적, 문화적 장벽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읽는데 어렵지는 않았다는 것이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든 요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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