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al Music/내맘대로공연리뷰

[20221106]안드라스 쉬프 피아노 리사이틀@서울

MiTomoYo 2022. 11. 7.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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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피아니스트 중에서 안드라스 쉬프는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로 그를 알게 된 것은 ECM에서 발매된 베토벤 소나타 음반을 통해서였다. 지금껏 들었던 피아노 독주곡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다채로운 음색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기에 언젠가 한 번 공연장에서 들어보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내한은 몇 차례 있었는데, 타이밍이 맞지 않거나(2019년), 내한이 취소(2021년)되는 등 타이밍이 잘 따라주지 않다가, 드디어 오늘에서야 그 기회를 잡게 되었다.

 

오늘 공연은 독특하게도 프로그램이 미리 공지를 하지 않고 무대에서 곡에 대한 간단한 강의와 함께 연주를 하는 '렉쳐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통역은 피아니스트 박재홍이 맡아서 했다.

 

일단 오늘의 프로그램부터

=====<1부>=====

Johann Sebastian Bach-골드베르크 변주곡 BWV.988 중 아리아

Johann Sebastian Bach-프랑스 조곡 5번 G장조 BWV.816

Wolfgang Amadeus Mozart-지그 G장조 K.574

Joseph Haydn-피아노 소나타 32번 g단조 Hob.XVI:44

Wolfgang Amadeus Mozart-피아노 소나타 17번 Bb장조 K.570

Ludwig van Beethoven-피아노 소나타 17번 d단조 '템페스트' op.31-2

=====<2부>=====

Wolfgang Amadeus Mozart-론도 a단조 K.511

Franz Schubert-피아노 소나타 20번 A장조 D.959

=====<앙코르>=====

Johannes Brahms-인터메초 A장조 op.118-2

Wolfgang Amadeus Mozart-피아노 소나타 16번 C장조 K.545 중 1악장

Johann Sebastian Bach-이탈리아 협주곡 F장조 BWV.971 중 1악장

Johann Sebastian Bach-이탈리아 협주곡 F장조 BWV.971 중 2,3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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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연주 리스트가 많아 보이지 않는가? 5시 조금 넘어서 시작한 공연은 8시 50분이 되어서 끝이 났다. 거의 2개 분량의 공연이 한 번에 진행된 셈이다.

 

먼저 오늘 진행된 '강의' 파트부터. 일단 안드라스 쉬프가 구사하는 영어가 빠르지 않았고, 대단히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었던지라 많은 관객들이 통역 없이도 대부분 그 말을 알아차린 듯했다. 은근히 유머를 섞어가며 말을 했는데, 이를테면 본인이 프로그램을 미리 공개하진 않았지만 '슈톡하우젠'이나 '불레즈'를 연주하지는 않을 것이라던가, K.574의 곡은 12음 기법을 쓰긴 했지만 현대의 것보다는 훨씬 듣기 좋을 것이다라는 식의 것이었는데 소소하게 웃기긴 했다. 이거 말고도 몇 개 더 있었는데 까먹었다. 물론 영어를 잘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통역이 있기는 했지만 애초에 전문 통역인이 아니다 보니 영어로 이해하는 편이 훨씬 정확하긴 했다. 본인도 이를 아는지 쉬프의 말이 길어지니 의역과 오역이 많아서 죄송하단 한 마디를 덧붙이긴 했지만...

 

강의가 곡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꽤 도움이 많이 되었다. 예를 들어서 베토벤의 작곡 스타일은 하이든의 것과 비슷하며(몇 개의 음으로 된 짧은 모티브를 변형시켜 곡을 확대하는 스타일) 모차르트는 성악 스타일의 곡을 쓰다보니 둘과는 다르게 긴 모티브를 활용하는 편이라는 것,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지만 한 편으로는 다소 의아했던 1,2악장의 다소 쓸쓸한 분위기의 곡이 3,4악장에서는 지나치게 낙천적으로 변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실마리를 얻어갈 수 있었다.

도돌이표에 대해서도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는데, 이것이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도 비슷해서 적어볼까 한다. 도돌이표는 '지켜야한다.'고 했는데 일단 작곡가가 '그렇게 하라'라고 악보에 적어두었으며, 연주자로 하여금 두 번째 연주할 때는 '좀 더 나은 연주'를 할 기회를 주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추가적으로 두 번째 연주할 때는 악보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아닌 중간에 장식음과 같은 약간의 변형을 가하는 것이 맞다는 얘기도 해주었고, 실제로 바흐나 모차르트를 연주할 때는 그렇게 했었다.

 

연주된 곡이 정말 많았는데, 곡 하나하나 어떻다 이런 얘기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냥 다 좋았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쉬프의 피아노는 음색이 다채롭다는 것이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바흐의 음악에서는 각 성부를 구분하는 것에서,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음악에서는 자칫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는 곡에 여러 재미를, 베토벤의 음악에서는 강렬함을, 슈베르트의 음악에서는 자유로움을 부여하는 요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프로그램의 구성 또한 면밀히 보면 대단히 신경을 쓴 배치인데, 바흐-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슈베르트로 이어지는 큰 줄기 속에서 두 개의 모차르트(K.574, K.511)소품곡은 앞 뒤로 연주될 곡의 분위기와 면밀히 이어지는 스타일의 곡이었기 때문이다. 두 곡 다 처음 들어봤는데, 개중 K.511은 쇼팽이 작곡했다고 해도 왠지 고개를 끄덕일 것만 같은 스타일의 것이었다.(여담으로 쉬프는 모차르트와 바흐를 존경했다는 쇼팽의 취향을 아주 좋다는 식의 소소한 유머를 구사했었다.)

 

특히 2개의 곡이 기억에 남는데, 그 첫 번째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의 3악장이었는데, 약간 느린 템포(연주 전 곡 설명에서 1악장은 allegro, 3악장은 allegretto인데 요새는 다들 3악장을 이상하게 빠르게 치려 한다는 말을 했었다.)에 더해진 피아노 음색은 진짜 이게 내가 지금껏 들었던 피아노 소리와는 결이 다른, 글로써는 담아내지 못할 무언가였다. 워낙 유명한 곡이다 보니 앞으로 이 소나타를 들을 기회는 살면서 여러 번 있을 수 있겠지만, 오늘 들었던 이 소리를 뛰어넘는 연주는 다시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 번째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0번으로 쉬프는 슈베르트가 이 곡을 통해서 종교적 자세, 쓸쓸함과 강렬한 슬픔, 행복한 환상, 그리고 인생에 대한 희망을 담아내고 있다고 했고, 이를 염두에 듣고 곡을 듣다 보니 곡이 어느새 끝나 있었다. 특히 마지막 악장이 정말 감성을 자극했는데 그가 말했던 인생에 대한 희망이 투영된 악장이 바로 이 4악장이었으나 이 곡을 완성하고 얼마 뒤에 그가 죽었단 것을 생각해볼 때, 슈베르트가 남긴 '희망'이란 것이 사실은 삶에 대한 처절한 미련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장대한 곡을 마무리 짓는 마지막 한 음을 쉬프가 끝까지 부여잡고 있는 순간 속에서 이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이어지는 커튼콜 속에서 3곡의 앙코르 곡을 연주했었다. 모두들 알 것 같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 1악장은 영롱함 그 자체였고, 이탈리아 협주곡은 1악장만 하고 들어가셨다가 계속 되는 박수 덕에 2,3악장까지 다 치시고 굿바이 키스와 함께 관객들을 보내셨다.

 

살면서 그래도 여러 공연을 듣긴 했었지만 오늘처럼 길게 여운이 남는 경우는 정말 처음인 것 같다. 롯데 콘서트홀에서 집까지 그리 멀지 않다보니 걸어서 돌아왔는데, 가는 내내 오늘 공연에서 느꼈던 감동 말고는 정말 아무 생각이 들지가 않았다. 오늘 같은 수준의 공연을 살면서 다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을지 잘 모르겠고, 기회가 되면 안드라스 쉬프의 공연은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가야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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