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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존속 살해범의 편지-그리고 그 밖의 짧은 글들(마르셀 프루스트 저/유예진 역/현암사)

MiTomoYo 2021. 4. 21.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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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레터'를 통해서 알게 된 마르셀 프루스트의 역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1편, 스완의 사랑을 얼마 전 완독 했다. 그의 유려하고, 다소 장황하게까지 느껴지는 문체에 길을 잃고 헤매는 바람에 단편적인 수준의 이해만 하고 있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음에도 조금씩 변화하는 자신을 느끼곤 한다. 어떠한 사건 하나에도 인간의 깊은 내면을 꺼내서 글로 표현해내는 일련의 과정이 조금씩 내 일상에 스며들고 있고, 짧고 직관적인 문장이 최고라고 여기고 이를 실제로 구현하고자 노력했던(블로그 포스팅의 경우 써놓고 퇴고를 안 하기에 그렇게 느낄만한 글은 별로 없겠지만) 글쓰기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시도하는 중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내용이 워낙 길고, 또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 보니 일단 읽기 시작하면 다른 책으로 넘어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쉬어갈 겸 다른 책을 두어 권 읽기로 했고,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그가 남긴 여러 서문, 편지, 비평문 등 상대적으로 짧은 글들을 번역한 것으로 훨씬 쉬운 문체와 부담 없는 양으로 읽어나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스완의 사랑'을 읽은 상태에서 이 책을 접한 것은, 비록 의도치는 않았지만, 그가 썼던 수많은 글들이 직간접적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소설 내에서 임신한 가정부를 묘사했던 지오토의 자비, 콩브레의 풍경을 묘사했던 부분에서 등장했던 산사나무가 여기에서도 등장한다. 자동차를 타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성당의 모습을 묘사한 글(살아남은 성당들)은 소설 내에서, 거의 그대로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또한 비평글에서는 그가 추구하는 문체, 문법의 정확성보다는 상황에 맞게 적절히 문법을 왜곡시킴으로써 문장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에 대한 부분을 엿볼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여러 글들을 읽다 보면 그가 쓴 글들이 여기저기 녹아들어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역자는 이 책을 통해 프루스트와 그의 작품 세계에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글을 추려서 소개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말대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마지막으로 프루스트가 말년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을 소개하면서 부족한 독후감을 끝내고자 한다. 이 문장은, 어쩌면 내가 그동안 접해왔던 수많은 글 중에서 가장 멋있고, 충격적이며, 앞으로의 삶에 계속해서 영향을 줄 것만 같다.

'하지만 오늘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 반드시 세상의 종말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모두 인간이고, 오늘 밤 죽음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만 하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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