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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필하모니 음과 향의 비밀(나카노 다케시 저 / 김유동 역 / 시와 진실)

MiTomoYo 2020. 8. 30.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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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음악과 관련된 책을 읽었고, 당분간은 계속해서 이런 류의 책을 읽을 생각이다. 일본에서 음악 프로듀서 일을 하고 있는 저자가 빈 필하모닉에서 활동한 여러 지인을 인터뷰하면서 얻은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오케스트라를 소개하는 책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총 10개의 챕터로 구성되어있지만, '서문', '빈 필하모닉과 함께한 지휘자', '빈 필하모닉의 역사', '빈 필하모닉의 문화' 정도로 재분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문에서는 악보와 음악의 해석의 관계, 지휘자의 역사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하고 있다. 전자의 내용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언급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듣는 사람을 감동시키기 위해 악보, 단순한 기호로부터 "음"을 상기시키고, 이미지화하는 시도가 음악의 해석이다.'라고 저자는 언급하고 있다. 즉 작곡가가 말하고자 했던 바를 파악하고 이를 구현하는 것이 프로 음악가들이 연주할 때 가져야 할 자세인 것이다. 단순히 악보를 충실하게 재현하는 것은 올바로 된 연주가 아니란 의미이기도 하다.  

책에서 나온 예시를 소개해볼까 한다. 왈츠는 3/4의 리듬을 가진 춤곡으로 4분 음표 3개로 이뤄진 단순한 박자로 구성된 춤곡이다. 그러나 왈츠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빈 왈츠'에서는 두 번째 박자를 미묘하게 끌어야 한다.

 

 

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참고를 위해 몇 가지 빈 왈츠 영상을 찾아봤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두 번째 박자에 밟는 스텝이 보폭이 크거나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두 번째 박을 약간 길게 가져가는 것은 춤의 성격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며 이를 악보대로 균등하게 연주하는 것은 빈 왈츠의 성격을 벗어난 연주란 뜻이다.

 

'빈 필하모닉과 함께하는 지휘자'파트는 빈 필하모닉과 인연이 깊었던 지휘자, 푸르트벵글러, 뵘, 카라얀, 그리고 오자와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이 소개되고 있다.

 

 

푸르트벵글러의 파트는 그의 특이한 지휘법과 앙상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주 정밀한 앙상블을 희생하더라도(책에서는 정밀한 앙상블이라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동의하진 않기에 이렇게 언급한다.), 악단이 자연스럽게 노래할 수 있도록 하다 보니 만들어졌으며, 앙상블을 맞추는데 도가 튼 단원들 덕에 그 지휘법이 충분히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빈 필 단원들이 앙상블을 맞추는 방법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는데 이를테면 총주 부분에서는 저음 악기가 고음 악기에 비해서 반응성이 느리기 때문에, 첼로 수석의 활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맞춘다는 식이다.

뵘에 대한 부분은 내용이 중구난방으로 진행된다. 다만 '뵘의 연주는 들었을 때는 좋았는데, 지금은 어떤 음악이었는지 기억이 흐릿하다.'와 '번득임과 영감이 조화를 이루는 음악가만이 역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란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봐서는 저자는 뵘에 대해서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카라얀의 경우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깐깐한' 이미지와는 달리 음악의 큰 틀은 지시하되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단원들이 알아서 하도록 두는(물론 다들 엄청난 실력의 연주자들이기에 가능한 부분이긴 하겠지만) 편이었다고 한 것은 꽤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녹음과 영상 매체에 대한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적용한 부분에 대해서 저자는 높은 평가를 하고 있다.

오자와의 경우 처음에 읽었을 때는 사족과 같은 부분이란 생각도 들었는데, '클래식 분야의 이방인'이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고 인정받기까지 겪어온 험난한 과정과 노력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삽입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재고하게 됐다.

 

'빈 필하모닉의 역사'는 창단부터 대략 1980년대 후반까지의 빈 필의 역사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서술을 하고 있다. 몇 가지 재미있는 일화들이 언급되어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부분 '상임지휘자의 부재'와 같은 부분은 대충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 같다. 단순히 카라얀 이후 빈 필을 이끌만한 인재가 없다. 란 견해로 넘어가는 부분은 아쉽다.

 

'빈 필하모닉의 문화' 파트는 빈 필하모닉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들을 언급하면서 빈 필하모닉 특유의 음향을 만들어 내는 여러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 이전에 '빈 필하모닉의 음향이 어떻길래?'란 의문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아 이것이 빈 필하모닉의 음향인가'라고 느꼈던 부분을 소개해볼까 한다.

 

 

지금은 작고한, '말러 교향곡 2번에 미친' 길버트 카플란이 빈 필과 녹음한 음반의 일부다. 너무 잘게 쪼개져 있어서 가장 포인트가 되는 부분만 가져왔다. 언어적으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대충 '반짝이는 황금색' 같은 느낌이 드는 음색이다.

 

우선 악기부터. 영상이나 검색을 해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빈 필은 대체적으로 개량이 덜 된 구식의 악기를 사용한다. 음반을 들어보면 오보에, 타악기가 특히 차이가 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호른의 경우 개인적으로는 아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다...) 또한 단원들은 빈에서 태어났거나, (과거에는 이 경우만 해당이 되었다.) 이들로부터 음악을 공부한 사람들로 구성이 된다는 것이다. 문화적 동질감은, 설명하긴 어렵지만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기준이 되는 주파수도 A=440~442Hz가 아닌 445Hz로 놓는 것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주파수가 높아지면 사람의 귀에는 좀 더 음악이 화려하게 들린다는 얘기를 본 것 같다. 요즘은 빈 필만의 특성은 아닌 것 같지만 오케스트라 내의 앙상블 활동도 언급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홀의 특성. 창단 이후로 1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지크페라인을 상주 공연장으로, 리허설을 포함한 모든 연주를 여기서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최적화된 주법을 체득한 결과란 것이다. 책에서 언급된 슈박스(뒤에가 완전히 막혀 있는 공연장, 예를 들면 고양 아람누리)와 바인야드(뒤에가 뚫려 있는 공연장, 예를 들면 롯데 콘서트홀)의 차이점을 언급하는 부분도 재미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저음역대인데, 슈박스의 경우 무대에서 서로 간의 음역대가 섞여 관객석으로 고루 전달되는 반면, 바인야드의 경우엔 고음역은 쉽게 전달되는 반면, 저음역은 멀리 퍼지지 못하기에 더 강한 저음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부분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한 사족도 붙여볼까 한다. 연주회를 준비할 때 연습실과 연주회장은 별도로 구성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리고 환경에 따라 내가 연주하는 소리, 잘 들리는 다른 악기의 소리, 잔향 등이 제각각이다. 특히 연주회장은 그 차이가 정말 심하다. 예를 들어 성남아트센터의 경우 내 소리는 지나치게 잘 들리는 반면 다른 현악기는 조금만 거리가 멀어져도 제대로 들리지가 않는다. 이럴 때 연습 때 개인적으로 바이올린을 기준으로 앙상블을 맞추고 있었다면 연주하기가 힘들어진다. 실수라도 몇 번 하면 괜히 티가 더 나는 것 같아서 자꾸 위축되는 것은 덤이다. 프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라도 이런 부분은 분명 좋지 못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괜히 정명훈이 서울시향의 전용 홀을 줄기차게 주장했던 것은 아니란 얘기다.

 

마지막으로 클래식 음악이 점점 쇠퇴하는 원인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케스트라 간의 특징이 사라지고 있으며, 지휘자도 더 이상 '단원 위에서 군림'하지 못한다는 점, 연주의 척도가 정확성에만 자꾸 무게가 실리고 있다는 점 등이 있다. 여러모로 저자의 '올드 테이스트'가 강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시대악기 스타일의 연주에 대한 부분도 언급이 되었는데 '단순 유행'으로 치부하는 것도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는 음악적 해석 폭을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완전 사족으로 책에서 도로시 딜레이의 중국계 미국인 제자의 연주를 보고(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3악장의 첫 부분을 G현으로 연주해야 하는데 이를 따르지 않았다고) 저자의 지인이 화를 냈다는 일화가 있었다. 도대체 누구고, 저 말이 맞는지, 영상이 있는지 엄청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셋 다 해답을 알아내서 소개해볼까 한다.

 

이것이 문제의 연주

그리고 자필보를 찾아보니 희미하긴 한데 sul g(G선으로 연주하시오)라고 적혀있다. 어찌 됐던 작곡가의 의도를 무시한 것은 맞단 얘기긴 하다.

 

여러 빈 필하모닉 단원들의 인터뷰 내용이 꽤 흥미를 끄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 부분은 재미있었지만, 약간은 난삽한 구성, (굳이 칼 뵘을 언급하고선 거기서 다른 지휘자를 얘기할 바엔 차라리 챕터 하나를 별도로 구성하는 것이 완성도를 높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용 이해에 큰 지장은 없지만 저자의 확고한 취향이 드러나는 마지막 장은 약간은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발매된 지 오래돼서 책 값도 그리 비싸지 않기 때문에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있거나 하면 편하게 읽어볼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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