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al Music/내맘대로공연리뷰

[20171020]서울시향-스티븐 허프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 1번-II

MiTomoYo 2017. 10. 21.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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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9월 8일에 있었던 서울시향 공연(코른골트 바협+브뤀4번)을 갈 계획이었는데 하필 그 날이 시험 전날이다보니 심리적으로 부담이 되서 가지 못했다. 꽤 오랜만에 가는 공연인 것 같은데 작년에 계획했던 공연은 그거 하나만 못가서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튼 꽤 오랜만에 가는 공연이다보니 나름대로 기대를 하긴 했었다. 금요일 공연은 거의 매진이어서 자리를 겨우 구했는데 또 동생이 비창을 좋아한다는게 생각나서 중앙 3층 자리를 동생에게 주고 나는 오른쪽 박스석을 가기로 했다.


일단 오늘 공연의 프로그램부터

===========================<1부>==================================

F.Schreker-에케하르트 op.12

S.Rachmaninoff-피아노 협주곡 1번 F#단조 op.1 (1919 개정판) (피아노: 스테판 허프)

앙코르 - 

아리랑(Arr.Stephen Hough)

F.Chopin-녹턴 op.9-2

===========================<2부>==================================

P.I.Tchaikovsky-교향곡 6번 B단조 op.74 '비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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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일단 결론부터. 오늘 공연은 스티븐 허프가 멱살잡고 공연을 이끌어나갔고 서울시향 연주는 아마 2009년 브루크너 이래로 가장 실망스러운 공연이었다. 사실 어제 글을 쓰다가 실수로 클갤을 들어가는 바람에 어제 있었던 동일 프로그램에 대한 연주평을 보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스포일러를 당해버렸다. 물론 그걸 감안하고 들었어도 실망스러웠다는 건 변하지 않지만.


1부의 서곡은 이름조차 생소한 슈레커의 에케하르트란 곡이었고 왠지 현대음악에 어울릴 법한 이름이었는데 1800년대 후반~1900년대 초중반에 활동한 작곡가였다. 곡의 전체적인 느낌은 달베르(E.D'Albert)의 몇몇 곡과 유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듣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이 때부터 시향의 불안한 연주력이 예견되는 부분이 조금씩 있었던 것 같았다. 대표적으로 엇박을 연주하는 부분이 그렇게 느껴졌는데 아무리 엇박이라고 하더라도 현대음악이 아닌 이상에야 어수선하게 들리는 경우는 거의 없는 편인데 내게는 굉장히 무질서하게 들렸었다. 사실 그 뒤의 연주가 극과 극을 오가버리는 바람에 후기를 쓰는 지금은 그다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유명한 2, 3번에 가려져서 잘 연주는 안되는 편이지만 들어보면 매우 좋은 곡이다. 1919년에 한 번의 개정을 거쳤지만 그 때문인지 라흐마니노프 곡 특유의 느낌이 확실히 드러나는 곡이다.

스티븐 허프의 연주는 개인적으로 피아노 연주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음색의 표현이 매우 탁월했던 것 같았다. 라흐마니노프의 곡의 특징 중 하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화성속에서 느껴지는 곡 분위기의 변화인데 이에 맞게 그의 음색도 시시각각 변화했다. 

그에 비해서 시향의 반주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1악장이 특히 영 아니올시다였단 생각이 들었는데 반주 중에 트레몰로를 '우다다다'하면서 나오는 부분은 그 동안 시향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어서 내가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지휘자는 곡의 템포를 이리저리 바꿔가는 해석을 보여줬으나 이것이 독주자랑 계속 어긋나는 바람에 좀 어이가 없었다. 2악장은 그나마 괜찮았던 것 같았는데 3악장도 썩 좋은 반주를 해주진 못했었던 것 같았다.


원체 반주가 별로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1악장 말미에 등장하는 카덴차를 들으면서 '악단에 계속해서 맞춰주느라 자기가 원하는 연주를 제대로 못한 것 아닌가?'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카덴차는 마치 속박에서 해소된 양 화끈한 연주를 들려줬기 때문이었다.


앙코르는 스티븐 허프가 편곡했다는 아리랑과 쇼팽의 녹턴 op.9-2였는데 아리랑이 현대적으로 탈바꿈하니 이것 나름대로 꽤 재미있는 곡이란 생각이 들었다. 

압권은 쇼팽의 녹턴이었는데 오른손의 멜로디와 왼손의 반주가 서로 다른 음색을 들려주는 해석에 의도적인 루바토가 무척이나 특이하게 느껴졌었다. 12/8박자의 왈츠 느낌이 나는 곡이다보니 예전에 '쇼팽은 루바토를 굉장히 잘 사용하던 연주자였고, 일례로 그의 왈츠는 마치 4/4박자의 곡을 연주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란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쇼팽이 이 곡을 연주했으면 이런 느낌의 해석을 보여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났다.

연주 외적으로 짜증나는 순간도 있었는데 곡 중간에 '찰칵!'하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더라. 세상에 참 많은 빌런이 존재한다.. 제발 기본적인 매너들은 좀 지키고 사시죠?


2부의 비창은... 제목 그대로 비창이었다. 전체적인 곡의 느낌이 현파트 따로 맞추고 관끼리 따로 맞추고 타악기끼리 맞춘 다음에 그걸 그대로 무대에 올려버린 것 같았다. 파트끼리는 그래도 호흡이 맞는다는 느낌인데 전체적으로 따로 놀아서 음악이 전혀 유기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특히 이런 부분은 현-관이 서로 주고 받는 3악장에서 확실하게, 계속해서 등장했다.

가장 황당했던 부분은 목/금관 부분에서 주로 나타났는데 상승/하강 스케일을 할 때마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템포가 빨라지는 현상이었다. 앞서 언급한 3악장이 바로 이것 때문에 연주가 어이없을 정도로 삐걱거렸다. 다른 악장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고. 


생각해보니 뭔가 조금씩 다 이상했다. 관악기의 음정들은 묘하게 서로 안맞는다는 느낌이었고(특히 호른), 트럼펫은 부점 리듬이 절뚝거렸다. 금관은 심심하면 삑사리를 터뜨렸는데 평소 같으면 '컨디션이 다들 별론가보다'하면서 넘어갔을테지만 이런 수준의 연주는 그냥 '단원들이 제대로 연습을 안했구나'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팀파니 역시 뭔가 조금씩 어긋나는 기분이 들었다. 1악장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는 격렬함을 넘어선 흥분인지 빠르게 달려가기도 했다.


그나마 4악장은 다른 악장에 비해서는 괜찮은 편이었지만 이미 1~3악장에서(그리고 특히 3악장에서) 모든 걸 내려놓은 덕에 그렇게 들렸을 수도 있고 현악기가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악장이다보니 악군별 밸런스가 그렇게까지 중요한 편도 아니고....



실황 연주가 늘 잘되는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고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미 수많은 명반들로 잘 무장이 되어있기에 그들을 만족시키는 연주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연주에서 아쉬운 부분들이 있어도 연주자들이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점을 생각하며 정말 아쉬웠다고 생각한 부분들만 살짝 언급하고 넘어가는 식으로 후기를 쓰곤 했다.


근데 서울시향은 지속적으로 이 곡을 가지고 유럽에서 투어도 했고, 3년 전에는 Proms에서도 올렸던 곡이다. 난이도가 높은 곡이라면 이해를 할 수 있지만(예를 들어 2014년에 있었던 한스 그라프의 말러 교향곡 10번 연주는 큰 실수도 여럿 나왔었다. 당시 후기: http://electromito.tistory.com/88 그래도 난이도가 원체 어려운 곡이란 생각이 들어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비창은 예외에 속하지 않는다. 


겨우 오늘 공연 하나로 판단하긴 좀 이르나 그 동안 느껴지지 않았던 서울시향의 상황이 확실히 와닿았단 점과 스티븐 허프란 피아니스트에게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의를 준 공연이긴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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