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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레터를 보았습니다.(근데 이제 감상문에 러브 레터를 곁들인..)

MiTomoYo 2022. 8. 26.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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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감상문은 스포일러를 많이 포함할 수 있으니 이 포스팅을 읽으시기 전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소설이란 그저 가상의 이야기에 비문학 위주의 책들만 읽어오던 사람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도전하고, 영화건 애니메이션이건 재탕을 한 적이 거의 없었지만 한 작품만은 벌써 세 번이나 보고 겨울이 되면 또 다시 볼 계획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영화 '러브 레터'를 본 것은 인생에 있어서 작은 전환점이 되었다고는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에 후속작인 '라스트 레터'가 일본에서 개봉했다고 했을 때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국내에서는 소설이 먼저 번역되어 들어왔기에 바로 구입해서 읽어봤고, 극장에서 이 영화를 개봉하면 가서 봐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코로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극장에 가기에는 부담스러워 결국 단념했지만 말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소설을 한번 더 읽어보고 싶었다. '러브 레터'의 경우 먼저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었는데 영화의 잔상들이 계속해서 그려져 여러모로 아쉽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라스트 레터'의 경우에는 글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미지를 그려보는 경험을 한 번이라도 더 해보고 싶었다. 계속해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출퇴근길에 꾸역꾸역 읽어나가는 와중에 여름이 서서히 끝나감을 느꼈고, 더 미뤘다가는 분명 내년 여름에나 이 작품을 보게 될 것 같아 예전에 샀던 DVD를 꺼내 들게 되었다.

 

소설을 읽을 때 이미 느낀 점이지만, 이 작품은 '러브 레터'의 셀프 오마주의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그렇기에 '라스트 레터'의 감상문을 쓰면서도 자꾸만 '러브 레터'를 언급하는 것 같다. 두 작품을 분리해서 감상문을 쓴다는 것은, 적어도 내겐 불가능한 일이다. 두 작품은 어떤 사람의 죽음이란 중심 소재를 축으로 많은 것을 뒤집어 버렸다. 작중 시점과 배경, 여러 설정들, 작품의 분위기까지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두 작품의 설정의 차이는 결국 엔딩에서 가져다주는 여운의 깊이감, 더 나아가서는 작품성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러브 레터'의 경우 후지이 이츠키(여)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주요 등장인물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모습을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어떤 인물을 중점적으로 보는지에 따라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나 전달받는 메시지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후지이 이츠키(여)의 입장에서는 되찾은 시간에 대한 아련함과 고마움, 혹은 다시는 만날 수 없을 후지이 이츠키(남)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을, 와타나베 히로코의 입장에서는 약혼자였던 후지이 이츠키(남)에 대한 끝없는 미련을 다소 내려놓고, 그의 친구인 아키바 시게루를 새 연인으로써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구나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그 때문에 '러브 레터'의 경우에는 볼 때마다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요지가 충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라스트 레터'의 경우 결국 오토사카 쿄시로가 첫사랑인 토노 미사키의 굴레에서 벗어나 다시금 소설가로서 재기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다.란 것만이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의 전부란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는 토노 유리가 오토사카 쿄시로를 짝사랑했고, 또 첫사랑의 두근거림을 여전히 잊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다(그리고 완전 여담으로 어린 토노 유리를 연기한 모리 나나가 정말 귀여웠다!)와 같은, 단편적인 감상들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감상문을 쓰기 위해 책을 쓱 훑어보면서 소설의 많은 내용이, 분량 문제인지 아니면 이와이 슌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빠져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로 생략된 내용이 영화에서는 다소 평범하게 보이는 인물의 캐릭터성을 한 층 살리는 부분(대충 훑었기에 내 의견이 틀렸을 수도 있음을 참고해주시길..,)들이 많은 것 같았다. 몇몇 장면을 과감히 잘라내, 인물의 다채로운 모습을 좀 더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만들어졌음 어땠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쓰고 나니 영화의 안좋은 점만 부각해서 쓴 것 같은데 결코 못만든 영화는 아니다. 작품의 진행에 따라 변화하는 분위기는 연출과 색감을 통해서 자연스럽지만 분명하게 강조가 되어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오토사카 쿄시로가 토노 미사키의 영정 앞에서 토노 아유미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울리던 시계소리가 특히 기억에 남는데, 강박적으로 째깍거리는 소리 하나가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집중해서 봤으면 분명 아! 하고 감탄했을, 디테일한 부분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 외에도 피식거리게 만드는 소소한 개그씬, 안노 히데아키(키시베노 소지로 역)의 어색한듯 은근 잘 어울리는 연기, 호오는 갈리겠지만 일본하면 떠오르는 여러 문화적 클리셰들을 과하지 않게 등장시킨 점들도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좋은 점으로 꼽고 싶다.

 

'라스트 레터'는 분명 수작의 평가를 받을만큼 괜찮은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모티브가 된 '러브 레터'의 존재로 인해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버려 되려 아쉬움을 느끼게 만들고 말았다. 다음 번에 이 작품을 감상할 때는 전작의 감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봐야할 것 같다. 그래야만 이 작품을 제대로 봤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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