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al Music/기타등등

악보 구입에 대한 이런저런 잡담(feat. 베토벤 현악 4중주 15번)

MiTomoYo 2021. 5. 5.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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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들은 결코 쉽게 감상할 수 있는 곡이 아니다. 14번 현악 4중주는 여전히 들을 때마다 물음표를 한 가득 남기고 있으며, 대푸가 역시 음악적 가치와는 별개로 썩 듣기 쉽단 느낌이 드는 곡은 아니다. 하지만 15번만큼은 다른 것 같다. 물론 '어렵다.'란 범주에는 여전히 들어가는 곡이지만 지금은 가장 즐겨 듣는 실내악곡이다.

 

 

 

이 곡의 파트보를 구입해서 오늘 배송을 받았다. 사실 베토벤 곡들의 원전 악보(urtext)는 조나단 델 마가 편집하고 있는 Bärenreiter 쪽이 압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고(교향곡 음반의 경우 Bärenreiter판을 썼다는 것을 명시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퀄리티의 경우 직접적인 비교를 하는 것은 내겐 무리지만, Naxos를 통해 많은 음반을 발매한 Maggini Quartet에서는 다음과 같이 평가를 내리고 있다.

 

출처: https://maggini.net/wordpress2/wp-content/uploads/2016/11/Editions28.pdf

 

'조나단 델 마가 편집한 Bärenreiter의 파트보와 총보 모두 아주 뛰어나다. Henle의 파트보와 총보도 좋지만, 델 마의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아쉽게도 Bärenreiter의 경우 2021년 1월에 14번까지 나온 상황이며 그 뒤의 악보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 Henle판을 구입하였다.

 

근데 누군가는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imslp에서 악보를 뽑아서 쓸 수 있는 곡인데 굳이 비싼 돈을 들여서 악보를 사는 이유가 있을까? 이번에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좀 풀어볼까 하여 포스팅을 하나 하게 되었다.

 

1. 첼로 파트보의 문제 - 가짜 높은 음자리표(false treble clef)

첼로가 가지는 특징 중 하나는 엄청나게 넓은 음역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낮은음자리표를 쓰다가 음역이 높아지면 가온 음자리표, (엄밀히는 테너 보표를 쓴다.) 더 나아가서는 높은 음자리표까지 사용을 하게 되며 이것이 일반적인 경우에도 빈번하게 사용을 한다. 근데 베토벤 현악 4중주 15번을 연주하다 보면, 첼로 주자는 상당히 이상한 부분을 맞이하게 된다.

 

 

출처: Beethoven-String Quartet No.15, Cello part(Schott Edition) @ imslp

 

5악장에서 가장 감동적인 하이라이트 부분이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 저 정도로 높은 음역대를, 기교를 과시하는 곡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용한다는 것이 이상하다. 영상을 통해서 설명을 해보자면,

 

(연주: Mstislav Rostropovich(Vc), Elena Rostropovich(Pf))

 

대충 20초 부근에서 지판을 넘어서 움직이는 왼손을 볼 수 있다. 악보상의 음역은 대략 저 정도 위치에서 연주를 해야 한다.

 

(연주: Esme Quartet, 40분 33초부터 재생)

 

근데 베토벤 현악 4중주의 해당 파트를 연주하는 영상을 보게 되면 높은 음역인 것은 맞지만 첫 영상만큼 높이 올라가진 않는다. 정확히는 1옥타브 낮춰서 연주를 하고 있다.

 

이 곡 외에도, 베토벤 현악 4중주 4번 1악장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기에(아마 찾아보면 더 많을 것이지만...)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모든 연주자들이, 단순히 음역대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1옥타브 낮춰서 연주를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몇 차례의 구글링 끝에 나와 비슷한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짜 높은 음자리표(false treble clef)란 명칭으로 불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출처: http://www.daisyfield.com/music/htm/-misc/FalseTreble.htm

 

내용을 정리하자면 높은 음자리표로 기보 된 것보다 1옥타브 낮춰서 연주하는 것으로 20세기 이전에는 흔히 사용되던 방식이지만,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방식이며 드보르작의 오케스트라/실내악의 첼로 파트보가 이런 기보법으로 '악명이 높다.'라고 적혀있다.

 

출처: http://www.daisyfield.com/music/htm/-misc/FalseTreble.htm

 

거짓 높은 음자리표가 현재는 쓰이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주 불편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첼로는 음역이 넓기에 세 가지 음자리표를 전부 다 사용하기에 높은 음자리표에 익숙한데, 이를 굳이 1옥타브 낮추는 수고를 더 들여야 하며, 1옥타브를 높임으로써(위의 악보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여러 개의 덧줄로 가독성을 떨어뜨리고, 결정적으로 음역이 높다면 모르겠지만, 애매한 음역대라면 이를 실음으로 연주할지 1옥타브 낮춰서 연주할지 헷갈린다는 것이다.

 

마지막 의문, 1옥타브 낮출 것인지 그대로 연주할 것인지에 대한 토론 내용도 재미있어서 같이 소개를 해볼까 한다.

 

출처: https://www.tapatalk.com/groups/cellofun/false-treble-clef-t17231.html

 

이 사람은 케이스 by 케이스고, 작곡가의 성향과 출판사의 성향을 전부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웃기게도 위에서 소개된 포퍼는 미친 듯이 높게 올라가지만 가짜 높은 음자리표는 '절대' 아니니 걱정(?) 하지 말라고 한다.

 

 

출처: https://www.tapatalk.com/groups/cellofun/false-treble-clef-t17231.html

 

같은 토론의 다른 스레드. '어떤' 출판사는 다음과 같은 가이드라인을 쓴다고 한다. 낮은음자리표에서 높은 음자리표로 바뀌면 가짜 높은 음자리표, 가온 음자리표에서 높은 음자리표로 바뀌면 진짜 높은 음자리표라고. 그 '어떤'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하여튼 골치를 아프게 만드는 문제임은 명확하다. Henle나 Bärenreiter의 경우, 무조건 실음을 기반으로 한 악보를 출판하는 것 같으니 참고를 하면 좋을 것 같다.

 

2. 악보의 오류

원전 악보(Urtext)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과거에 사용되었던 악보들에서 발견된 잘못된 부분, 이를테면 가필이나 편집자의 실수 등을 바로잡아 작곡가의 의도를 최대한 반영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도 존재하지만 말이다.(이는 별도의 포스팅을 통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위의 영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베토벤의 경우, 특히 이런 원전 악보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한 의의가 크다고 생각하는데, 베토벤이 워낙 악필이다 보니 악보를 출판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의 오류가 발생했고, 때론 후대 사람들이 임의로 수정한 부분이 전통처럼 내려오기도 했다. 물론 곡의 큰 뼈대에 대한 변화는 없기에 이를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는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도 있다. 나 역시 베토벤 9번에 대한 수정된 부분을 저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으니깐.

 

사실, 2번 항목에 대해서는 포스팅할 계획이 없었다. 꽤나 생소한 거짓 높은 음자리표에 대한 소개를 하는 것으로도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재미있는 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보를 쓱 훑어보던 중 내 눈을 의심케 하는 부분이 눈에 보였고, 편집자의 코멘트와 자필 악보를 비교한 뒤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베토벤 현악 4중주 15번 5악장. 이 부분을 특히 기억하는 이유는, 얼핏 쉬워 보이는 악보와는 달리 다이나믹의 변화가 꽤나 세밀하고, 까다롭게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출처: Beethoven-String Quartet No.15, Cello part(Schott Edition) @ imslp
출처: Beethoven-String Quartet No.15, Cello part(Schott Edition) @ imslp

 

근데 새로 산 악보의 다이나믹은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거꾸로, 크레셴도로 연주하도록 지시가 되어 있었다. (해당 부분은 저작권의 문제도 있으니 별도로 올리거나 하진 않겠다.) 친구에게 물어봤을 때의 반응도 비슷했다.

 

 

편집자의 코멘트는 다음과 같이 언급을 하고 있다. '92~93마디에 대해, 오리지널의 악보와는 달리 Vn2, Va, Vc(93마디만 해당)에 대해서 어떠한 이유도 없이 <가 아닌 >로 바뀌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베토벤이 직접 수정을 하였다.' 자세히 읽다 보니 뭔가 이상해서 Schott사의 세컨드 바이올린과 비올라 파트보를 확인해보니, 거기는 정상적으로 < 마킹이 되어 있었다. 추가적으로, 베토벤의 원보를 확인해보면,

 

 

출처: Beethoven-String Quartet No.15, Beethoven's manuscript @ imslp

 

첫 번째 부분은 확실히 <로 표기되어 Schott사의 악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출처: Beethoven-String Quartet No.15, Beethoven's manuscript @ imslp

 

Henle판의 코멘트대로 다이나믹이 잘못 적혀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류가 정정된 악보는 구할 수가 없어서 추가적인 확인은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한 부분을 가지고도 여러 오류들을, 심지어는 작곡가의 실수까지 발견했다는 점이 꽤 흥미롭다.

 

슬슬 포스팅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imslp에서 구한 Schott 사의 악보는 분명 문제가 있는 악보다. 거의 사용되지 않는 가짜 높은 음자리표에 대한 어떠한 수정도 가하지 않은 점, 악보에 명백한 실수가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악보를 복사해서 쓰거나 하지 마십시오. 더 좋은 악보를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악보를 사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이러한 연구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물론 돈이 더 드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한 번 구입한 악보는 오래 쓸 것이니깐요.' 이것이 내가 악보를 사는 이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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