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al Music/내맘대로공연리뷰

[20260113]크리스티안 짐머만 피아노 리사이틀-Prelude @ 롯데 콘서트홀①

MiTomoYo 2026. 1. 14. 02:38
728x90

 
2024년의 첫 공연 관람을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리사이틀(https://electromito.tistory.com/877)로 시작했었는데 올해도 지메르만의 리사이틀로 포문을 열었다. 작년 12월 초, 일본에서 시작된 이번 리사이틀 투어는 바흐, 쇼팽 등이 시도한 24개의 조성[각주:1]를 모두 다루는 '프렐류드' 콘셉트로, 특이하게 공연마다 프로그램 구성도 달라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이번 투어를 위해 총 63곡을 준비했다고 한다.) 
일본에서의 투어가 끝난 만큼 어떤 곡들이 연주되었는지 목록이 돌고 있기도 하지만, 리사이틀 프로그램은 당일에 공지되는 것 같다. 속칭, 안드라스 쉬프 오마카세 리사이틀이라고도 불리는, 현장에서 직접 연주할 곡을 알려주는 것과는 다르긴 하나, 국내에서 진행하는 여러 번의 리사이틀(대전 1회, 서울 3회, 부산 1회, 대구 1회)중 프로그램 리스트를 보고 마음에 드는 공연을 하나 다녀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서울에서 진행되는 3번의 공연 중 가장 괜찮은 좌석이 남아있던 오늘 공연을 선택해서 다녀오게 되었다.
 
오늘 공연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고, A4용지에 인쇄한 오늘의 프로그램 리스트를 가져갈 수도 있었다. 
<Der Wohltemperierte Flügel>
=====<1부>=====
ㅇ C장조/a단조(임시표 없음)
- Roman Statkowski-전주곡 1번 C장조 op.37-1
- Johann Sebastian Bach-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중 전주곡 C장조 BWV.846
- Alexander Scriabin-전주곡 제2번 a단조 op.11-2
ㅇ A♭장조/f단조(♭: 4개)
- Frederic Chopin-전주곡 17번 A장조 op.28-17
- Grazyna Bacewicz-전주곡과 푸가 f단조(피아노 소나타 2번 중)
ㅇ D♭장조/b♭단조(♭: 5개)
- Frederic Chopin-전주곡 15번 D장조 op.28-15
- Frederic Chopin-전주곡 16번 b단조 op.28-16
ㅇ E♭장조/c단조(♭: 3개)
Claude Debussy-전주곡집 1권 중 11번 E장조 '요정의 춤'
Karol Szymanowski-전주곡 7번 c단조 op.1-7
ㅇ A장조/f♯단조(♯: 3개)
- Frederic Chopin-전주곡 7번 A장조 op.28-7
- Alexander Scriabin-전주곡 8번 f단조 op.11-8
F♯장조/E♭단조 (♯: 6개)
Robert Schumann-로망스 2번 F♯장조 op.28-2
- George Gershwin-전주곡 3번 E♭단조
=====<2부>=====
ㅇ F장조/d단조(♭: 1개)
- Claude Debussy-전주곡집 2권 중 6번 F장조 '괴짜장군'
- Karol Szymanowski-전주곡 2번 d단조 op.1-2
ㅇ B♭장조/g단조(♭: 2개)
- Johann Sebastian Bach-파르티타 1번 B장조 중 '프렐류드'
- Gabriel Faure-전주곡 3번 g단조 op.103-3
ㅇ D장조/b단조( ♯: 2개 )
Sergei Rachmaninoff- 전주곡 4번 D장조 op.23-4
- Cesar Franck- 전주곡, 푸가 그리고 변주곡 op.18 중 '전주곡 b단조
ㅇ G장조/e단조(♯: 1개)
- Claude Debussy-전주곡집 1권 중 12번 G장조 '민스트렐'
- Frederic Chopin-전주곡 4번 e단조 op.28-4
B장조/g♯단조 (♯: 5개)
- Frederic Chopin-전주곡 11번 op.28-11
- Sergei Rachmaninoff -전주곡 12번 g♯단조 op.32-12
ㅇ E장조/c♯단조 (♯: 4개)
Nikolai Kapustin-전주곡 9번 E장조 op.53-9
- Sergei Rachmaninoff-전주곡 2번 c♯단조 op.3-2 '종소리'
=====<앙코르>=====
- Claude Debussy-아라베스크 1번 E장조
====================
 
공연 중 촬영 및 녹음에 굉장히 민감해하는 지메르만이어서 그런지 입장을 위해 검표를 하면서 한 번, 공연장 안에서 어셔들이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연 시작 안내방송이 나올 때 한 번, 총 세 번 공연장 내에서는 어떠한 촬영과 녹음도 금지된다는 안내를 했다.
안내방송이 나올 때는 '지메르만이 관객 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라고 하여 촬영과 녹음을 금지하는 이유에 대해서 조금 더 상세하게 얘기를 해줬는데, 대략(정확하진 않음)'모든 공연은 작곡가와 연주자 간의 긴밀한 소통이며 이번 프로그램은 특히 연주자의 사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공연장에서의 연주가 SNS 등을 통해 공유되는 것에 대해서 배신감을 느낄 것이며 오늘의 연주는 오롯이 기억 속에 고이 담아두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다소 늦게 도착한 관객을 배려한 것일까? 안내 방송도, 공연 시작도 예정 시간인 19시 30분보다 늦게 진행이 되었다. 왠지 지난 리사이틀보다 더욱 '피아노의 도인'의 포스를 뿜으며 등장한 지메르만은 로만 스타트코프스키의 전주곡 C장조로 오늘 리사이틀의 포문을 열었다. 명확한 장조의 조성이 순간적으로 흐트러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가벼운 곡이었다.
이어서 연주된 바흐의 평균율 곡집 1권의 1번 C장조, 지메르만의 레퍼토리가 주로 낭만 시대 이후의 것들이라 그가 연주하는 바흐는 어떨지 무척 궁금했다. 여리게 시작해서 곡이 진행됨에 따라 서서히 다이내믹을 크게 가져가는 것도 그렇고, 소리의 잔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낭만적인, 너무나 낭만적인' 해석이었다. 와.. 근데 정말, 정말 아름다웠다.
공연 초입부터 강펀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고, 그 여운이 너무 길게 남아 익숙하지 않은 스크리아빈의 곡이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두 곡을 마치고 악보를 넘기는 동안 관객들의 기침이 공연장을 가득 메우고, 그 소리에 머쓱해진 사람들의 웃음이 간간이 섞이기도 했는데, 본인은 괜찮으니 상관없다는 제스처를 보여주기도 했다. 오늘 공연의 아쉬운 점이기도 한데, 연주는 끝났지만 아직 피아노의 잔향이 채 가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침으로 인해 그 여운을 전부 지워버리곤 했다. 날씨의 영향도 있고 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쇼팽의 전주곡 17번. 쇼팽의 곡답게 유려한 멜로디 사이로 지속적으로 강조되는 중심 화성의 음이 '조성감'을 확실히 드러내는 것 같았다. 이어서 연주된 그라지나 바체비치의 곡. 오늘 공연의 또 하나의 강펀치였다. 장조의 아름다운 화성으로 시작하던 곡이, 조금씩 불안감에 침식되어 뒤틀리다 어둠과 공포에 지배되는 과정이 소름 돋을 정도였다. 후기~현대 사이의 곡들이 만들어내는 화성들을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곡만큼은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들어보지 않을까 싶다. 
뒤이어 연주한 쇼팽의 전주곡 15번, '빗방울'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곡이지만, 여기서도 지메르만은 선율미를 살짝 희생한 대신 '조성감'을 강조하는 듯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쇼팽을 그다지 즐겨 듣는 편은 아닌지라, 이런 연주가 소위 '정석'적인 해석인지까지는 잘 모르겠다만, 이 곡을 감상할 때의 새로운 포인트를 알려준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연주 중 하나일 것 같다. 다만 뒤이어 연주한 짧고 재빠른 16번 전주곡은, 그냥 어수선하게 지나가버린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다.
1부의 마지막으로 연주한 곡도 무척 재미있게 들었다. 연주 중에는 일부러 프로그램이 적힌 종이를 안 봤는데, 거쉬인의 곡이었다. 거쉬인과 지메르만, 왠지 내겐 좀 안 어울리는 조합이란 느낌도 드는데 찾아보니 과거에도 연주한 이력이 있어서 신기하게 느껴졌다. 
 
1부의 구성이 각 곡이 전부 분절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면, 2부는 모든 곡이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마치 하나의 곡을 듣는 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지메르만의 연주도 (물론 1부도 상당히 훌륭했지만) 2부에서 더 빛을 냈던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부 때는 곡이 하나씩 바뀔 때마다 마음속으로 번호를 매겨가며 인상적인 곡과, 포인트를 하나씩 매치시키곤 했었는데, 2부 때는 5~6번 이후부터는 그마저도 어려울 만큼 음악에 더 몰입했던 것 같다.
 
2부의 첫 곡인 드뷔시의 '괴짜장군'에서부터 행군을 연상케 하는 리듬 사이로 뜬금 유머가 곧 시마노프스키의 어두움으로, 프랑크의 낭만적인 음울함이 가볍고 유쾌한 드뷔시의 '민스트렐'로 변화하더니, 다시 쇼팽의 e단조의 어두움으로 빠져들게 하는 등,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곡의 분위기를 따라가는 재미도 있었다. 카푸스틴의 전주곡도 무척 재미있게 들었던 곡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파트는 곡의 종결부였는데, 재즈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대중적인 스타일의 곡이 진행되다가 ’엥? 곡이 이렇게 끝난다고?‘란 생각이 들 정도로 느닷없이 끝나는 것이 재미있었다. 블로그 포스팅을 하면서 이 곡을 몇 번 들어봤는데, 지메르만 같은 뜬금없는 마무리를 짓는 연주는 없는 것 같아서 더 특이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오늘 연주의 압권은 마지막 곡인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 '종소리'로 이 곡 하나만으로도 지메르만의 피아노 연주의 핵심을 압축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메르만의 연주에서는 화성적 진행[각주:2]에서도 '선율이 흐르고 있다.'를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선율적 진행[각주:3]에서 '화성이 명확하게 정리되어' 들린다. 그러면서도 곡의 '기승전결'이 드러나도록 곡 전반에 걸쳐서 빌드업을 해나간다. 이 곡에서는 한 예술가의 내재된 불안감, 투쟁, 그리고 처절한 패배와 같은 감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러한 지메르만의 연주 스타일 때문에, 지난 리사이틀 때도 그렇고 상대적으로 평범하게 들리는(연주하기 쉽단 의미는 아니다. 오해는 금물)쇼팽의 곡들보다도 내게는 생소하고 어려운 근~현대 작곡가의 작품들이 훨씬 쉽고 흥미롭게 느껴지게 된다. 
 
앙코르는 딱 한 곡, '드뷔시'의 아라베스크 1번 만을 선보였고 '더 이상의 앙코르도, 커튼콜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악보를 집어 들고, 피아노를 닫는 것으로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오늘 공연은, 지메르만이라는 연주자에 대한 기대치(아주 높음)를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시간적, 경제적 여유만 있었더라면 다른 날짜 공연들도 예매하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아쉽게도 그럴 수가 없다는 게...ㅠ) 2026년에도, 좋은 연주들을 많이 들을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1. 장조 12개, 단조 12개 [본문으로]
  2. 전반부 [본문으로]
  3. 중반부 [본문으로]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