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 다시금 슈만 교향곡들이 끌려서 급하게 예매를 하려고 하니 괜찮은 좌석이나 싼 좌석은 다 나가, 패스할까 하다가 그래도 미련이 생겨서 그나마 괜찮은 좌석이 있고 일정도 부담이 없는 두 번째 공연을 선택해서 다녀오게 되었다. 벌써 두 번째 서울시향 공연.
=====<1부>=====
Hector Berlioz-오페라 '트로이인' 中 "왕실 사냥과 폭풍우"
Frederic Chopin-피아노 협주곡 1번 e단조 op.11(피아노: 니콜라이 루간스키)
--<encore>--
Sergei Rachmaninoff -전주곡 12번 g♯단조 op.32-12
=====<2부>=====
Robert Schumann-교향곡 2번 C장조 o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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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는 뤼드비크 모를로가 맡았다. 처음 들어보는 지휘자였는데 2019년에도 서울시향과 합을 맞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서곡으로 연주한 베를리오즈의 '왕실 사냥과 폭풍우'는 오페라 트로이인의 4막에 등장하는 간주곡이라고 한다. 처음 접하는 지휘자와 생소한 서곡. 오히려 이런 조합이 지휘자의 스타일을 파악하기에 더 용이한 것 같다.
독특한 관현악 편성을 지향했던 베를리오즈답게 팀파니 주자 세 명을 중앙과 좌우에 배치한 것이 일단 눈에 띄었다. '환상 교향곡'에서 들을 수 있을법한 화성이나 관현악법을 사용한 것이 특징인데, 악상의 전개가 조금 더 정신없이 진행된다는 점, 그리고 리스트의 '전주곡' 중반부의 모티브를 들을 수 있었단 것이 기억에 남는 곡이었다.
곡의 극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해 금관과 타악기를 전면에 내세워 화끈한 연주를 선보여도 어울릴 법한 곡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전반적으로 금관악기를 줄이고 내성부를 더 돋보이는 스타일인 듯했다. 어쩌면 자리가 1층 오른쪽 뒤편이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지만 상당히 재미있는 곳이었다.
이어서 니콜라이 루간스키와 함께하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이름은 상당히 많이 들었던 피아니스트인데 음반을 통해서도 그의 연주를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오늘 공연을 통해서 알게 된 루간스키의 피아노 스타일은, 평론가 David Hurwitz의 표현을 빌리자면 확실한 'Chord Guy' 스타일이었다. 그가 치는 음들 중 '뭉개진다.'는 생각이 단 한 번도 들지 않을 정도로 또렷하게 들렸다. 대신 음악이 긴 호흡으로 이어진다는 느낌은 잘 들지는 않았다.
이게 1악장에서는 오케스트라의 단조로운 연주와 역시너지를 일으켜, 내게는 그리 좋게 들리지가 않았다. 분명 피아노 소리는 감탄이 나올 만큼 좋은데 듣는 내내 지루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우스갯소리로 '오케스트라가 필요 없다.'는 소리까지 듣는 곡이라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였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앙상블이 미묘하게 엇나가는 일도 자주 발생했던 것 같아서(내가 잘못 들었을 수도 있다만...) 리허설을 거의 안 해보고 무대에 오른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2악장은 의외로 괜찮게 들렸다. 감정이 절제된 스타일 덕분에 늘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3악장으로 넘어가기 전 불안감을 한껏 머금은 피아노의 짧은 독주 부분에서 들었던 반짝이는 음색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빠르고 밝은 분위기의 3악장은 깔끔하게 들리는 그의 연주 스타일과 상당히 잘 어울렸고 말이다.
앙코르로는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을 연주해 줬는데 쇼팽의 협주곡보다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쪽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깔끔하게 정돈된 연주였다.
슈만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는 동안 썼다는 슈만의 교향곡 2번은, 정신과 의사이기도 했던 지휘자 주세페 시노폴리가 빈 필를 지휘해서 녹음한 음반에서 이 곡을 슈만의 정신병과 연계시켜 분석한 글을 수록했을 정도로 1 이 곡은 슈만이 작곡 당시에 처한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곡이다. 그리고 오늘 뤼드비크 마를로의 해석은 이를 극한으로 드러낸 해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곡을 좋아해서 꽤 많이 들었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와... 이 곡이 이렇게 어지러울 정도로 변화무쌍한 곡이었나?'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1악장의 무난한 서주에 이어서 본격적으로 곡이 시작되고 난 뒤부터 진행되는 프레이즈들, 특히 악기들 간에 서로 주고받는 프레이즈들을 전부 분리되게 들리게끔 처리해, 그냥 들었을 때도 변화가 심하단 느낌을 받았던 부분들에서 음악이 해체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 정도였다. 말로만 설명하기가 힘들어서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을 악보와 함께 소개를 좀 해보자면...

서로 주고받으며 프레이즈가 이어지는 부분을 확실하게 구분 짓고(빨간색), 그 와중에 16분 음표(주황색)를 확실히 강조하여 음악에 혼돈감을 조금 더 부여한다거나,

상승하는 긴 프레이즈에서는 크레셴도를(빨간색), 거기에 저음부의 16분 음표를 강조(주황색)하여 에너지를 쌓는 듯하다가, 하강하는 16분 음표 프레이즈(파란색)에서는 데크레센도를 주면서 급격한 감정 기복을 표현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식이었다.
다른 곡에서라면 이렇게까지 음악이 극단적으로 짧은 단위로 분절된다면 지휘자의 멜로디 만드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을 것 같지만, 슈만의 불안정한 심리가 투영된 곡을 극한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하면 나름 설득력 있는 접근법일지도? 란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로 인해 음악 안에서 에너지가 응축하여 폭발하는, 극적인 느낌은 없었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게다가 곡 전반에 걸쳐서 금관악기의 다이내믹을 상당히 제한하여 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2악장의 경우는 1악장만큼 독특한 해석은 아니었다. 빠른 템포에 16분 음표로 계속해서 정신없이(심지어 프레이즈가 정박에 떨어지지도 않는다.) 연주해야 하는지라, 곡의 특성상 1악장과 같은 변화를 주면 앙상블이 와르르 무너질 가능성이 높은 악장이서 그런 것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곡 중간에(아마 첫 번째 트리오 이후 반복된 테마에서였던 것 같은데...) 현악기와 관악기 간에 박자가 순간 틀어지는 것을 들었던 것 같았다. 대신 주부와 트리오들 간에 템포, 특히 2번째 트리오의 템포를 상당히 느리게 설정하는 방식으로 대조를 주었다.
3악장은 서정적인 멜로디에 주로 초점이 맞춰서 음악을 들었는데, 오늘 연주에서는 화성을 담당하는 성부를 조금 더 강조하여 곡을 연주하였다. 그러다 보니 곡이 진행될수록, 명확했던 조성이 점점 모호해지면서, 어느 순간 '내가 듣는 것이 장조인지 단조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이 곡을 꽤 자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팜플랫에 실린 지휘자의 인터뷰에 '느린 3악장을 연주할 때 엄청난 행복과 깊은 슬픔을 함께 느낀다.'는 대목을 읽었는데, 오늘 들은 3악장에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확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4악장. 지금껏 들었던 많은 음반들도 그렇고, 이 곡의 피날레는 역시 '고난의 극복과 승리'란 도식에 맞게 에너지 넘치는 연주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오늘 연주는 마지막마저 달랐다.
앞서 계속해서 언급했듯 금관악기가 크게 활약할 수 있는 악장임에도 불구하고 다이내믹을 극도로 제한했다. 곡 전반에 걸쳐서 등장하는 3 연음 리듬을 부는 호른은 그 흔적만 남아, 정말 주의 깊게 들어야 그 흔적을 겨우 찾아낼 수 있을 정도였고 마지막 팡파르마저 절제되어 '승리'를 외친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마치, 지금 외치는 승리는 잠깐일 뿐이며 결국 고통은 다시 찾아오고 패배(정확히는 8년 후 라인강에 투신하여 정신병원에서 2년을 지내다가 사망했다는 것을)한다는 것을 예견하는 듯했다. 그래서 듣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익숙한 곡에서 이렇게까지 생소함을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다. 대만족이라고까지는 하긴 어렵겠지만 깔끔하게 연주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도 괜찮을 수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고, (그리고 포스팅을 하는 동안 잠깐 들었던 루간스키의 동일 곡 음반은, 오늘 공연에서 들었던 것보다 훨씬 괜찮았다.) 슈만의 불안한 심리를 나타낸다고 생각한 이 곡을, 아예 '슈만의 정신분열증의 예언적 성격'의 극단으로 밀어붙인 듯한 연주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연주를 또 접하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게 아쉬울 뿐...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오늘 연주가 생각날 듯하다.
- 그 내용이 무척 궁금해서 일본 아마존에서 해당 음반을 구입했는데, 기대했던 자세한 분석은 없어서 다소 김이 새 버렸다. 요약하자면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받는 그의 오케스트레이션과 지나친 부점 리듬 등 그의 곡에서 보이는 특성은 불안정한 그의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며, 2악장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16분 음표들이나 3악장에서의 여러 악절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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