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al Music/내맘대로공연리뷰

[20250708]알리스 사라 오트 피아노 리사이틀(@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MiTomoYo 2025. 7. 9.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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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알리스 사라 오트는, 뭐랄까 DG에서 밀어주는 아이돌 피아니스트 같은 이미지가 있었다. 말보다는 그냥 데뷔 음반(Lizst-초절기교 연습곡)과 그다음 음반(Chopin-왈츠 전곡) 커버를 업로드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사실 그 뒤로는 관심이 다소 떨어진 연주자가 되긴 했다. 그 뒤에 발매된 음반들이, 하필 차고 넘치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베토벤의 소나타(3&21번)였던지라 대단한 감흥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고, 이후로는 쇼팽, 라벨과 같이 그리 좋아하지 않는 작곡가의 곡들이 계속해서 발매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2021년에 발매된, 쇼팽의 전주곡과 근현대 작곡가의 곡을 적절히 섞은 'Echoes of Life'란 음반의 콘셉트가 독특하게 느껴져 샀던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와중에 얼마 전 Spotify에서, 최근 발매한 추천 음반으로 알리스 사라 오트가 연주한 존 필드의 녹턴이 있길래 '녹턴이면 가볍게 들어보기 좋겠군'이란 생각으로 재생을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무척 좋게 들려서, 평소라면 몇 개 듣다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음반으로 갈아타거나 졸거나 했던 것이 녹턴(물론 쇼팽이다...) 음반이었는데 한 번에 18개의 곡 전부를 다 듣고, 또 감탄할 정도였다.

 

마침 올해 내한 리사이틀을 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서 '만약 프로그램에 존 필드의 녹턴이 있다면 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 존 필드의 곡이 포함되어 있길래 예매를 하고 가게 되었다.

 

오늘 리사이틀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존 필드의 녹턴 8곡,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곡을 적절히 섞은 형태였다.

 

=====<1부>=====
John Field-녹턴 17번 C장조

Ludwig van Beethoven-피아노 소나타 19번 g단조 op.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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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Field-녹턴 1번 Eb장조, 2번 c단조, 4번 A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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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Field-녹턴 10번 E장조

Ludwig van Beethoven-피아노 소나타 30번 E장조 op.109

=====<2부>=====
John Field-녹턴 14번 G장조, 16번 C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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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Field-녹턴 9번 e단조 

Ludwig van Beethoven-피아노 소나타 14번 c#단조 op.27-2

(Encore) Arvo Part-Fur Al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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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무렵에 서울 곳곳에서 짧고 굵은 폭우가 내렸었는데, 하필 공연 시작 직전에는 예술의 전당 쪽에서 퍼부었고, 그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객석의 분위기가 다소 어수선한 상태에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가벼운 느낌의 존 필드의 녹턴 1곡과 마찬가지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는 짧고 가벼운 분위기의 19번을, 마치 하나의 곡인 것처럼 연주를 했다.

이어서 마이크를 들고 'Good Evening! 좋은 저녁입니다!'란 인사와 함께 앞서 연주한 두 곡에 대해서 짧은 설명을 해주었다. 위에서 '--'이라고 표기한 부분마다 마이크를 들고, 작곡가(특히 존 필드)에 대한 소개, 본인이 곡을 선택한 이유, 때론 곡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하면서 리사이틀을 진행했다. 다만, 모든 기억하지는 못해 잘못된 내용이 있을 수도 있다.

 

두 곡 모두 작곡가가 젊은 시절에 썼다는 점과 다소 가벼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서 선택했다고 한 것 같다. 이어서 존 필드란 작곡가에 대한 간단한 소개도 해주었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나중엔 러시아로 이주해서 활동했고, 샴페인과 코냑을 대단히 좋아해 그것이 그가 일찍 사망(56세)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 그 외에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아 편지, 일기, 주위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서만 그의 생애를 단편적으로 알 수밖에 없다는 점을 얘기했다. 

그녀 역시 존 필드에 대해서는 코로나 시기에 알게 되었는데, 스트리밍을 통해서 여러 곡을 듣던 중 존 필드의 녹턴 음반을 접하게 되었고 이 곡들이 무척 매력적이란 생각에 이 곡을 레퍼토리에 추가하고 음반도 발매하게 되었다고 했다. 

보통 '녹턴'이라고 하면 쇼팽을 떠올리곤 하는데, 존 필드가 이 장르의 창시자이며(Father of Nocturne) 쇼팽은 그 당시 4살 배기 어린이였다고도 한다. 다소 놀랐던 것은 곡만 들었을 때는 베토벤 이후에 활동했을 것 같은 존 필드가, 베토벤과 거의 동 시기에 활동했던 작곡가란 사실이었다.

 

이렇게 대중들에게 다소 생소한 존 필드의 소개를 마치고, 이어서 그의 녹턴 세 곡을 연이어 연주했다. 가볍고 발랄한 분위기의 1번, 몽환적이고 애수 어린 2번, 즉흥성이 강한 4번, 이렇게 대조되는 세 곡을 조합한 덕분에, 곡이 짧은 편임을 생각하더라도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다.

 

이어서 녹턴 10번과 소나타 30번에 대해서 간단한 소개를 했다. 본인은 베토벤이 'Structure'한 작곡가라고 생각하며, 특히 그의 30번 소나타에서는 '우주를 구축'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며, 1악장의 모호한 도입부를 거쳐 2악장(이것도 뭔가 설명을 한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3악장의 명상적인 테마와 이것들이 변주를 거친 뒤 다시 원래 테마로 돌아올 때, 우리는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녹턴의 10번의 마지막 음과 소나타 30번의 첫 음이 완전히 동일한데, 본인은 이런 디테일함을 찾는 것을 무척 재미있어한다고도 했다. 

 

인터미션 후에는 짧고 가벼운 녹턴 14번, 모호하고 변화무쌍한 녹턴 16번을 연주한 뒤, 마이크를 들고 이어서 연주할 녹턴 9번과 '월광'으로 잘 알려진 소나타 14번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우선 자기는 녹턴 9번을 연주할 때, 항상 소나타 14번을 떠올린다면서 도입부를 같이 비교해서 연주를 해주었는데 음반을 통해서는 인지하지 못했던 음악적 유사성, 왼손의 3 연음과 오른손의 비통한 멜로디를 확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이어서 베토벤이 붙이지 않은 '월광'이란 소나타 14번의 부제는 이 곡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며, 이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지오반니'에서 주인공 돈 지오반니가 기사장을 살해하는 부분에서 비슷한 형태의 음형이 등장한다면서, 여기에는 호숫가의 달빛과 같은 낭만이 아닌, '장례 행진'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2악장에서는 '완전히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두 언덕 사이를 뛰노는 한 마리 염소가 연상되고, 뒤이어 우리를 '지옥'으로 인도하는 3악장이 기다리고 있다는 설명을 붙인 뒤 연주를 이어갔다.

 

본 프로그램을 모두 마친 뒤 최근 전쟁을 비롯해 모든 것이 극단적으로 변해가지만 이를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고 그것의 수단 중 하나가 바로 '음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는데 오늘 연주만큼이나 기억에 남는 얘기를 들었고, 또 깊이 공감이 갔던 내용이었다.

또한, 연주자가 어떤 생각과 철학을 가지고 연주를 하는지 청중은 직관적으로 아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알게 모르게 음악 속에 그것이 투영되어 드러나게 된다고 생각하기에, 오늘 이 멘트를 통해서 알리스 사라 오트란 연주자에 대해서 한 층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다.

이어서 연주자는 우리 같은 청중들이 있어야지만 존재할 수 있다면서, 본인도 SNS(인스타)를 열심히 하니 감상평 같은 것을 서로 공유하거나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얘기도 했었다. 그 때문일까 커튼콜을 하는 동안 사진을 찍는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지금껏 공연이 어떻게 흘러갔는지에 대한 얘기만 열심히 적었는데, 이제 오늘 연주에 대한 부분도 언급을 해야 할 것 같다. 알리스 사라 오트의 연주는 그야말로 변화무쌍 그 자체였고 특히 음색적인 부분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멜로디나 곡의 화성적 변화에 따라서 다른 연주자가, 혹은 다른 피아노를 가지고 연주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어느 순간은 반짝거리던 음색이 한순간에 무겁게 변하기도 하고 때로는 더 강한 표현을 위해 발까지 구르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녹턴 음반에서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긴 한데, 리뷰를 쓰면서 몇 개의 트랙을 다시 재생해 봤지만 오늘 공연장에서 들었던 다채로움은 느낄 수가 없었다.

페달을 통한 잔향을 활용해서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지만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깝고, 또 지금껏 들었던 연주에서는 잔향을 통해 음악이 만들어지는 효과를 쉽게 체감하기도 어려웠었는데, 오늘만큼은 여러 부분(특히 녹턴에서 곡이 마무리 되거나 할 때)에서 이를 느낄 수가 있었다.

 

베토벤의 소나타는 다소 호오가 갈릴만한 연주였다고 생각한다. 만약 모범적인(이를테면 부흐빈더나 브렌델 같은)베토벤 소나타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았을 것 같다. 일단 템포의 폭이 상당히 커서 빠른 악장은 더 빠르게, 느린 악장은 더 느리게 연주를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은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이 공존했다. 이를테면 소나타 19번 1악장의 단순하면서도 애수에 찬 분위기, 30번의 1악장에서 아련함이 느껴지는 감성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린 점이 아쉬웠다. 반면, 30번의 3악장에서는 정말 느리게 시작해 변주가 진행될수록 점점 템포가 빨라져 분위기가 고조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대단히 효과적으로 느껴져서 만족스러웠다. 소나타 14번 1악장에서는 간혹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음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게 나름 재미있게 들렸던 것 같다.

 

그 외에도 연주를 하면서 관객석을 쳐다보거나 하면서 관객의 반응을 보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이것이 앞서 언급한 '소통'을 하는 모습을 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다른 리사이틀에서는 쉽게 보지 못했던 장면이었다.

소나타 14번 3악장에서는 다소의 미스터치가 나긴 했는데, 클라이맥스 부근에서 연주를 마치고 잠깐 쉼표가 있는 부분에서 왼손을 터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이후 앙코르 곡을 연주하기 전, 다소 무리를 한 것 같아서 가벼운(?) 앙코르를 연주하겠다고도 한 것을 봤을 때 컨디션이 아주 좋지는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알음알음 알려진 것처럼 다발성 경화증으로 투병을 하고 있는 만큼, 너무 무리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아, 9번 녹턴의 초반부에서 반음계 음표가 3개에서 점진적으로 증가해 곡이 발전해 나가는 부분이 있는데, 이게 또 뭔가 기억에 남는 포인트였다.

마지막으로 앙코르. 원래도 아르보 패르트의 곡을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와... 진짜 넋을 놓고 들었다. 홀린 듯 연주를 듣다 보니 어느새 곡이 끝나 있었다.

 

기대 이상으로 멋진 연주를 듣고, 또 알리스 사라 오트란 연주자에 대해서 다시금 알게된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올해 말에는 아이슬란드의 작곡가 '요한 요한슨'의 작품을 녹음한 음반이 발매된다고 하는데, 이 역시 기대가 된다. 오늘 연주를 통해서 보면 왠지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끝나고 혹시 사인회가 있을까봐 음반을 한 장 챙겨갔는데, 역시나 있다고 해서 이렇게 받았다. 사인 위치, 나름 고심 끝에 결정했는데 좋은 선택인 것 같다.

 

찐 여담)녹턴 12번에서 피아노의 줄을 손으로 잡는 방법으로 피아노에서 오래된 종소리를 들려주는 부분이 정말 좋았고, 실황에서 듣는다면 어떨까 궁금했는데 이번 공연에는 없었다... 아쉽. 그리고 10일에 신영 체임버 홀에서 'Meet the Artist Series'도 있다는데, 이건 근무 일정 때문에 갈 수가 없네 ㅠㅠㅠㅠ 원래 녹턴은 살롱에서 연주할 목적으로 작곡된 거라 찐으로 감상도 가능하고 인터뷰도 들어보고 싶고 했는데 뚀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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