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2]얍 판 츠베덴과 김봄소리②(@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오랜만에 오케스트라 공연. 오늘 공연과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지만 필립 헤레베헤와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의 b단조 미사 공연을 가려고 나름 좋은 자리를 예매까지 해두었는데, 하필 그날 저녁에 회사 업무가 잡히는 바람에 취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거기에 해당 업무가 갑작스럽게 일정 변경이 된 탓에 수수료를 떼이고 환불을 받았다. 망할...) 몇 개월 전부터 예매하고 기다렸던 공연이기에 무척 아쉬웠다.
츠베덴. 이전 두 번의 공연을 통해서 깨달은 사실은 나는 츠베덴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서울시향의 공연도 츠베덴의 지휘는 피해서(?) 가곤 했는데, 오늘은 김봄소리가 협연을 한다고 해서 예매를 하게 되었다. 사실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딱히 갈 생각이 없었던 공연이었는데...
얼마 전에 발매했던 브루흐/코른골트 바이올린 협주곡을, 단순히 레퍼토리가 마음에 들어서 샀을 뿐인데 이렇게 이벤트에 당첨이 되었고(따로 응모도 안 했는데 예약 음반 구매자는 자동 응모였다고 한다.) 마침 그때 별다른 스케줄도 없어서,
이렇게 다녀오고 사인까지 예쁘게 받아왔다. 연주회도, 청음회도 아닌 팬미팅 행사여서 따로 블로그에 후기까지는 올리진 않았지만 여러 비하인드 스토리도 듣고 짧은 소품도 눈앞에서 듣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지라, 서울시향과 협연할 때 공연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이렇게 다녀오게 되었다.
오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고,
=====<1부>=====
신동훈-그의 유령 같은 고독 위에서
Felix Mendelssohn-Bartholdy-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64(바이올린: 김봄소리)
(Encore. Fritz Kreisler-아름다운 로즈마린 (Arr. for Solo Violin by Gabriele Campagna)
=====<2부>=====
Sergei Rachmaninoff-교향곡 2번 e단조 o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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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는 서울시향의 상임 지휘자, 얍 판 츠베덴이 맡았다.
첫 곡으로 연주한 신동훈의 '그의 유령 같은 고독 위에서'는 '많은 독창적이고 사랑스러운 것들이 사라졌다.'(예이츠의 시 '1919' 중에서)란 시구와 알반 베르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3개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곡이란 정보를 공연 직전 프로그램 북을 읽으면서 알았다. 정말 다행히도 알반 베르크의 이 곡에 대해서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었던지라, 나름 어떤 느낌의 곡일지 각오를 하고 감상에 임했고, 다행히 감상을 하는데 몇 군데 기억에 남는 포인트들을 잘 캐치할 수 있었다.
알반 베르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3개의 작품'은 전주곡-춤곡-행진곡 이렇게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사실 나는 몇 번을 들어봐도 춤곡과 행진곡에서 이를 쉽게 찾아내질 못하겠다만...) 오늘 연주한 '그의 유령 같은 고독 위에서'에서도 중간에 3/4 계열의 리듬의 춤곡과, 스네어 드럼을 시작으로 같은 리듬이 반복되는 행진곡 풍의 음악이 분명히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는... 사실 쉽게 다가오는 곡은 아니었다. 이전 포스팅에서 몇 번 언급한 것처럼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악기가 내는 음파가 세밀하게 합쳐지며 음색이 다채롭게 변화하는 스타일의 현대음악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의 유령 같은 고독 위에서'는 이와는 거리가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개인적인 오늘의 메인(?) 프로그램, 김봄소리의 협연으로 연주하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연주. 전체적인 감상평부터 말하자면, 츠베덴이 지향하는 음악과 김봄소리가 생각하는 음악이 여러 부분에서 다른 것 같았고 이로 인해 앙상블이 어긋나거나 하는 지점이 여럿 느껴졌다.
1악장 초입에서부터 이런 생각이 바로 들었는데, 바이올린 독주로 시작되는 1 주제에서 김봄소리는 평이한 템포에, 감정선을 살리기 위해 약간의 루바토도 구사하였는데, 츠베덴은 '이런 루바토는 용납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듯 일관된 템포를 유지하며 협연자와 미묘하게 엇나가는 듯하다가 이어서 같은 멜로디를 재현하는 오케스트라 총주에서는 지금껏 쌓였던 에너지를 분출하듯 빠른 템포로 달려 나가서 두 음악 사이에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후로는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연주가 나타나진 않았지만 이 곡을 '노래'하고 싶은 김봄소리와 일관된 템포를 유지하고 싶은 츠베덴 간에 음악적 조율이 아직은 잘 되지 않은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글쎄... 팬심이 섞여서 다소 편향된 의견 제시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김봄소리의 연주가 '특이하다!'싶을 정도로 극단적인 루바토를 구사했다거나 하진 않았기에, 이 정도라면 지휘자가 독주자에게 맞춰주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사실 협주곡에서 앙상블이 조금씩 엇나가거나 하는 건 어느 정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공연 후기에서도 이를 딱히 언급하기보단 들으면서 좋았던 부분만 언급하고 넘어가려고 하는 편이지만, 오늘 공연에서는 이러한 엇나감이 높은 빈도로 김봄소리의 실수를 유발하는 바람에 더 각인이 돼 어린것 같아서 아쉽다.
위에서 너무 안 좋은 얘기만 했는데, 들으면서 좋았던 부분도 짚어야 할 것 같다. 다른 것보다도 김봄소리의 연주는 정말 '노래'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곳곳에서 받았다. 어떤 부분은,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듯한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다른 곡들에 비해서 멜로디가 유려하게 흘러가는 편임을 감안하더라도, 악기 연주를 통해서 '노래'를 떠올리게 만든 적이 그리 많지 않아 무척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발매한 음반들의 수록곡들을 보면 기교보단 멜로디가 더 중점이 되는 곡들이 더 많은 편이긴 했다. 본인의 강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이를 잘 살리는 덕분에 최근 독주자로서 괜찮은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앙코르로는 'Gabriele Campagne'가 바이올린 독주용으로 편곡한 크라이슬러의 '아름다운 로즈마린'을 연주했다. 여담으로 이 곡에 대한 얘기를 팬미팅 때 얘기해 주셨는데, 브루흐/코른골트 협주곡 음반의 반주를 맡은 '밤베르크 심포니'의 단원인 'Gabriele Campagne'가 김봄소리를 위해 편곡을 해서 선물해 준 곡이라고 한다. 아마 앞으로도 앙코르 곡으로 이 곡을 들을 일이 자주 있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들었을 때, 원곡의 분위기를 잘 살리면서도 원래 피아노가 담당해야 할 화성적인 요소를 기교적으로 화려하게, 하지만 과하지 않게 반영한 좋은 편곡의 예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2부에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과연 츠베덴의 음악 스타일이, 이 곡과 잘 맞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연주 직전까지 굉장히 많이 들긴 했다. 그리고 역시나 츠베덴의 라흐마니노프는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포인트가 있음은 이해를 했지만, 여전히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연주였다.
츠베덴의 연주는 지금껏 세 번의 연주 모두 현악기, 그중에서도 가장 멜로디를 이끌어 나는 퍼스트 바이올린에 무게 중심이 쏠려 있었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이전 공연의 두 교향곡(브루크너 교향곡 8번, 브람스 교향곡 2번)에 비해서 오늘의 곡은 멜로디 라인의 비중이 큰 만큼, 이런 부분은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또 한 가지 츠베덴의 또 한 가지 좋은 점을 발견했는데, 오케스트라가 포효하는 와중에도 각 악기군의 밸런스를 잘 잡는 편이란 것이었다. 보통 이런 경우 음량이 큰 금관악기와 타악기가 다른 악기의 소리를 죄다 잡아먹는 경우를 듣곤 하는데, 오늘 공연에서만큼은 진짜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제외하고는 각 악기 군의 소리를 꽤나 선명하게 들을 수 있어서 이는 꽤나 만족스럽게 다가온 편이었다.
마지막으로 오늘 연주가 잘 될지 가장 의문이 들었던 것이, 바로 츠베덴이 어지간히 목관악기 컨트롤을 못한다는 것을 지난 연주회를 통해서 들었기 때문이었다. 뭐 어떤 곡이던 중요하지 않은 악기군이 있겠냐만은, 이 곡의 경우(단적인 예로 3악장의 클라리넷 빅솔로가 있듯) 목관악기가 곡 전반에 걸쳐서 중요한 포인트를 담당하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곡을 잘 소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훨씬 크게 들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오늘 연주는, 목관악기가 잘 활약을 해줬던 것 같았다. 다만 츠베덴의 목관 다루는 능력이 좋아졌다기보단, 이건 서울시향 목관 단원 분들의 개인기를 활용해서 '해줘 연주!'를 해준 것 같은 의구심이 더 강하게 들긴 했지만...
하지만 오늘 연주가 불만족스러웠던 이유는, 츠베덴의 음악에서는 다이내믹 측면에서 오직 '강함'만이 존재한단 생각이 계속해서 들 정도로 완급 조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이 내겐 위에서 언급했던 모든 좋았던 점을 다 덮을 정도로 안좋게 느껴졌다. 곡 전반에 걸쳐서 오케스트라가 크게 내지르는 소리를 계속해서 듣고 있노라니 나중에는 과장하지 않고 정말 귀가 아플 정도였다.
내가 아는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은 조용하게 진행되기도, 점진적으로 음량을 쌓아나가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다 한 번에 터뜨리기도 하는, 굉장히 넓은 다이나믹 폭을 가지고 있는 극적인 곡인데 음악 전반에 걸쳐서, 내가 느끼기에는 이미 충분히 크게 연주하고 있음에도 '크게!!!' '크게!!!'를 지시하는 츠베덴의 요구는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음악 해석에서는 딱 한 부분, 근데 정말 이상하고 이해가 안되는 지점이 있어서 이 부분도 언급하고 넘어가볼까 한다. 바로 2악장에서 푸가토가 등장하는 트리오 부분이다. 달리다못해 폭주하다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빠른 템포로 푸가토를 개시하였는데, '와... 이걸 이렇게 빠르기 몰아 붙인다고? 근데 서울시향 단원들이 이 템포를 잘 따라온다고?'란 생각을 하던 와중에 마치 '아 지금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이제 제어가 안될 것 같아..'란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템포가 확 죽어서, 여러 음반에서 들었던 것과 비슷한 수준의 빠르기로 이후 트리오가 진행되었다. 개시 템포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괴상하긴 했지만, 이걸 끝까지 유지했으면 츠베덴만의 독특한 접근법이라고 이해할 수라도 있을텐데, 정말 의도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여하튼 오늘 공연은, 분명 이전의 츠베덴의 연주에서는 알지 못했던 장점을 일부 발견할 수 있었던 점도 있었지만 여전히 내 성향과는 맞지 않는 음악을 들려준다는 사실만을 알려주었다. 앞으로도 츠베덴이 지휘하는 공연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기피하게 되지 않을까 싶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