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al Music/내맘대로공연리뷰

[20250808]예술의 전당 국제음악제-스티븐 이설리스 첼로 리사이틀 with 코니 시

MiTomoYo 2025. 8. 9.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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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예술의 전당 음악당의 3개의 연주회장(콘서트홀, IBK홀, 리사이틀홀)에서 진행이 되는데, 그중에서 '스티븐 이설리스 첼로 리사이틀 with 코니 시'가 단연코 내 관심을 끌어서 가게 되었다. 보통은 듀오 리사이틀을 하게 되면 반주자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하기 마련이지만 이번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몇 년 전 구입해서 요새도 종종 듣는 'Music from PROUST'S SALONS' 음반에서 반주를 맡은 코니 시도 함께 연주를 하기 때문이다. 

 

오늘 공연은 러시아를 테마로 한 첼로 레퍼토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1부>=====
Dmitri Shostakovich-첼로 소나타 d단조 op.40

Dmitri Kabalevsky-첼로 소나타 Bb장조 op.71
=====<2부>=====
Julius Isserlis-발라드 a단조

Sergei Rachmaninoff-첼로 소나타 g단조 op.19

<encore>

Alexander Scriabin-로망스(Arr. Steven Isser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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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즐겨 듣지 않는 쇼스타코비치이지만 그래도 첼로 소나타만큼은 좋아하는 편이다.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독기는 옅은 반면, 왠지 20세기 초중반 프랑스 실내악에서 들을 법한 느낌 때문에 큰 거부감이 없이 들을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사실 오늘 프로그램 곡 중에서 '유일하게 아는' 곡이기도 했고 말이다.

 

음울한 느낌의 피아노 반주에 이어 시작되는 첼로의 첫 소절부터 '아 오늘 공연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팍 하고 들었다. 일단, 내 자리에서는 첼로와 피아노와의 음량 밸런스가 좋았다. 지금껏 콘서트 홀에서 들었던 여러 첼로 리사이틀은, 피아노가 첼로의 소리를 묻어버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설리스가 내는 첼로의 음색이 이전에 들었던 다른 연주자들의 것과는 확실히 달랐고, 그것이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다. 요새 대부분의 첼리스트가 사용하는 금속 현이 아닌, 거트 현을 주로 사용한다는 인터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었는데 다른 현은 모르겠으나, A 현(가장 고음)만큼은 거트 현이 가지고 있는 둥그렇고 부드러우면서도 약간은 거친 듯한 음색이 확연히 느껴졌다. 반면 저음역은 풍성하면서도 단단하고 강렬한 음색을 들을 수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도돌이표를 지키는 것을 좋아하기에 1악장의 반복을 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이설리스의 연주를 들을 시간이 다소 줄어든 것에 대한 투정(?)이라고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쇼스타코비치 첼로 소나타 1악장의 매력은 어찌 보면 단순하고 나지막이 시작해서, 조금씩 분위기를 고조시켜 클라이맥스에서는 절규에 가까운 연주를 외치다가 서서히 사그라들어버리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와... 정말 넋을 놓고 들었다. 특히 백미는 클라이맥스 부분! 종종 발을 구르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격정적인 코니 시의 반주와 함께 비명을 지르는 듯한 이설리스의 연주가 강렬한 시너지를 냈다.

 

2악장은 강박적일 정도로 반복되는 음형이 등장하는 주부와 하모닉스 글리산도를 이용한 트리오의 대조가 재미있게 느껴지는 악장이다. 주부의 경우, 이러한 '강박감'을 이용한 긴장을 피아노 쪽에서 이끌어간다고 생각하는데, 코니 시의 연주는 이 느낌을 살리면서도 첼로의 존재감을 확실히 남겨놓은 그 절묘한 지점을 잘 살렸던 것 같았다.

트리오에서 처음 등장하는 하모닉스 글리산도는 크게, 다시 등장하는 하모닉스 글리산도는 작게 연주했는데, 이러한 해석은 여러 음반을 통해서는 들어본 적 없는 것이다 보니 재미있게 느껴졌다. 사실 처음 하모닉스 글리산도에서 앞에서 연주했던 다이내믹 그대로 이어지는 것을 듣고 '좀 과한 것 같은데 실수인가?' 싶은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3악장. 쇼스타코비치를 즐겨 듣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느린 악장을 들으면 질식할 것만 같은 갑갑한 기분을 느끼곤 하기 때문이다. 갑갑하고 공포스러웠던 스탈린 치하의 소련 사회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란 생각을 들게 만들기도 한다. 왁자지껄한 느낌이 곡 전반에 걸쳐서 등장하는 4악장도 재미있게 들었다.

 

이어서 연주한 카발레프스키의 첼로 소나타는 오늘 공연을 통해서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고, 20세기 러시아 작곡가와 친하지 않은 내게는 마냥 쉽지는 않았지만, 나름 매력적인 부분도 여럿 느껴지는 곡이었다. 나지막한 분위기의 1악장 도입부와 3악장의 종결부를 제외하면 곡 전반에 걸쳐서 격렬한 속주를 비롯해 강렬한 테크닉을 선보이는 부분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등장하는 곡이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생각나서 찾아서 들어볼 것 같은 곡이었다.

여담으로 락스타를 연상케 하는 이설리스의 헤어 스타일과 (위에서도 언급한) 종종 발을 구를 정도로 격정적인 연주를 하는 코니 시의 연주가 곡의 분위기를 한층 잘 살린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2부의 첫 곡은 스티븐 이설리스의 할아버지, 율리우스 이설리스가 작곡한 발라드란 곡으로 그 이름답게 낭만적인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곡이었다. 다른 곡들을 연주할 때와는 다르게 종종 미소를 짓기도 하던 모습을 보면서 '사랑하는 가족의 곡을 청중들 앞에서 연주하면서 느끼는 기분은 어떨까?', '정말로 이 곡에 대해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구나'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에 후기를 쓰면서 찾아보니, 어렸을 때 그의 누나와 이 곡을 연주하던 중에 이설리스의 아버지께서 "네 할아버지가 지금 이 장면을 본다면 하늘을 나는 기분일 거다."(출처: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08077374i)란 말씀을 하셨단 일화를 보니, 그가 이 곡을 연주하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는지 이해가 갔다. 

공연장에서 들었던 것을 끝으로 이 곡을 다시 들어볼 기회가 없을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율리우스 이설리스의 작품을 녹음한 음반이 있었다!(https://open.spotify.com/track/5JvoXrxHfnB2fvvv3ncHg6?si=11569e728aff4cff) 피아니스트는 다르지만 첼로는 스티븐 이설리스가 맡았다. 공연장에서 느꼈던 감동만큼은 아니더라도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곡으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주위에 이 곡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는데 나는 몇 번을 들어도 도무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두 곡 중 하나이다.(다른 한 곡은 쇼팽의 첼로 소나타다.)  그래도, 공연장에서 직접 들으면 그래도 뭔가 하나씩 감상 포인트는 얻어가는 느낌이다. 여전히 1악장과 4악장은 모르겠지만 격렬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2악장, 장-단조가 계속해서 바뀌어가며 낭만적인 분위기를 한껏 풍기는 3악장은 꽤 매력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조성이 바뀌는 순간을 음색의 변화로 확실하게 표현을 해주고 넘어가는 부분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 곡에서 뿐만 아니라, 추후에 연습할 때 이런 조성적 변화가 있는 부분은 한 번 느낌을 다르게 변화시켜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4악장에서 연주할 때 클라이맥스에서 이설리스와 코니 시 모두 같은 시점에 동일한 방향으로 헤드뱅잉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콤비의 모습이 이런 거구나... 를 새삼 느낄 수가 있었다.

 

앙코르로는 그가 직접 편곡한 알렉산더 스크라이빈의 로망스를 연주했는데 잔잔하게 깔리는 피아노 반주 위에 이설리스의 멋진 연주가 곁들여진, 멋진 마무리였다고 생각한다.

 

아,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는데, 스티븐 이설리스 역시 연주할 때 비브라토를 과하게 사용하지 않는 편이었다. 대신 넣을 때는 '어? 트릴을 연주하는 건가?'싶을 정도까지 폭넓은 비브라토를 들려주기도 했다. 오늘 공연 내내 그의 연주가 다채롭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러한 그의 연주 스타일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싶다.

 

여담으로, 그가 쓴 책(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안내서)을 읽어보면 은근하게 느껴지는 도른자의 향기(이런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다만...)가 있는데 그가 연주하는 모습과 마지막 커튼콜 때 인사를 하면서 첼로도 '꾸벅!'하고 인사를 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책에서 본 그의 유쾌한 성격이 진짜구나! 를 느낄 수가 있었다.

 

 

혹시 사인회가 있을까 봐 위에서도 언급한 음반을 출근 전에 챙겨갔었는데, 다행히 공연 끝나고 사인회가 있어서 이렇게 사인을 받았다. 내지에 스티븐 이설리스와 코니 시가 연주하는 사진이 담긴 페이지가 있어서 '여기가 딱이다!' 싶어서 이렇게 받았다.(이설리스의 사인이 잘 안 보이는 건 살짝 아쉽지만...) 

사인을 받기 위해 이 페이지를 보여줬는데 스티븐 이설리스와 코니 시 두 분 모두 "아니! 이 사진 언제 찍은 거지? 나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란 반응을 보이면서 즐겁게 사인을 해주셨고, 나도 감사의 인사로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음반이에요"라고 했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기는 했지만 기대 이상의 멋진 연주를 들은 하루였다. 찾아보니 한국을 자주 찾는 편은 아닌 것 같기에 이번에 그의 연주를 직접 들을 기회를 잡아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자주 한국에 와주셨으면 정말 좋겠는데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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